집 근처 공원에 나뒹구는 음료수 깡통이나 과자 봉지를 보고는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누가 보든 말든 일일이 주워 쓰레기통에 집어넣어야 직성이 풀린다. 아파트 1층에 널브러진 구청 홍보물이나 판촉물도 예외일 수 없다. 지하철의 분홍색 임신부 배려석에 거리낌 없이 앉는 젊은 여성들을 보는 일은 정말 힘들다. 임신부일 수 있겠으나 내 ‘뛰어난 촉’으로는 전혀 그런 것 같지 않다. 얼굴 두껍기는 젊은 남성들도 매한가지다. 털썩 주저앉아 바로 눈 감아 버리는 중년 아저씨는 마음이 편할까. 약자 배려의 사회적 약속인 만큼 지켜야지 않겠느냐고 한마디하고 싶지만 마음뿐이다. 그저 ‘레이저’ 두 방쯤 날리는 게 그만이다.
설거지 당번 날엔 식기뿐 아니라 가스레인지 얼룩까지 닦아 내지 않으면 꺼림칙하다. 담배 재떨이가 멀쩡히 있건만 꽁초를 제멋대로 바닥에 내던지고, 거기에 가래침까지 내뱉는 젊은 사람들은 레이저가 세 방감이렷다. 넉넉하고 멋진 어른이 될 줄 알았는데 웬걸, 나도 어느새 꼰대가?. 세상살이에 익숙해지다 보면 누구나 꼰대가 될 수 있다는 합리화로 위안 삼을 뿐이다.
박건승 논설위원
설거지 당번 날엔 식기뿐 아니라 가스레인지 얼룩까지 닦아 내지 않으면 꺼림칙하다. 담배 재떨이가 멀쩡히 있건만 꽁초를 제멋대로 바닥에 내던지고, 거기에 가래침까지 내뱉는 젊은 사람들은 레이저가 세 방감이렷다. 넉넉하고 멋진 어른이 될 줄 알았는데 웬걸, 나도 어느새 꼰대가?. 세상살이에 익숙해지다 보면 누구나 꼰대가 될 수 있다는 합리화로 위안 삼을 뿐이다.
박건승 논설위원
2017-05-26 3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