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돌아가신 분으로부터 전갈이 왔다. 수년 전 아까운 나이에 고인이 된 분의 유족들이 고인의 SNS를 없애지 않고 관리하고 있어 생일을 알려 주는 메일이 도착한 것이다.
고인의 SNS에 들어가 보았다. 500명이 넘는 친구들도 그대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곳은 어때요? 잘 지내고 있소?” 고인에게 보내는 친구의 안부 인사부터 여러 글이 올라 있다.
“○○ 아빠 보고 싶어요. 어머니가 하늘나라에 가셨어요.” “당신의 마음 같은 맑은 하늘 바라보며 같이 손잡고 교회 뜰을 걷고 싶어요.” 부인이 고인에게 쓴 글이다. 고인이 아니라 마치 살아 있는 듯하다. 자식들의 결혼 소식과 손자, 손녀들이 자라는 모습도 있다. “천국에서도 바쁘네요.” 한 지인은 이런 재치 있는 글도 써 놓았다.
내 휴대전화기에는 고인이 된 지인들의 전화번호가 그대로 남아 있다. 물론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는다. 그래도 지우지는 않는다. 가끔 전화번호를 넘겨 보면서 그렇게 친하지는 않았어도 이 세상에 없는 그들을 떠올리곤 한다. 일찍 갈 줄 알았으면 살아 있을 때 더 친하게 지내려 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 본다.
손성진 논설실장 sonsj@seoul.co.kr
고인의 SNS에 들어가 보았다. 500명이 넘는 친구들도 그대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곳은 어때요? 잘 지내고 있소?” 고인에게 보내는 친구의 안부 인사부터 여러 글이 올라 있다.
“○○ 아빠 보고 싶어요. 어머니가 하늘나라에 가셨어요.” “당신의 마음 같은 맑은 하늘 바라보며 같이 손잡고 교회 뜰을 걷고 싶어요.” 부인이 고인에게 쓴 글이다. 고인이 아니라 마치 살아 있는 듯하다. 자식들의 결혼 소식과 손자, 손녀들이 자라는 모습도 있다. “천국에서도 바쁘네요.” 한 지인은 이런 재치 있는 글도 써 놓았다.
내 휴대전화기에는 고인이 된 지인들의 전화번호가 그대로 남아 있다. 물론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는다. 그래도 지우지는 않는다. 가끔 전화번호를 넘겨 보면서 그렇게 친하지는 않았어도 이 세상에 없는 그들을 떠올리곤 한다. 일찍 갈 줄 알았으면 살아 있을 때 더 친하게 지내려 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 본다.
손성진 논설실장 sonsj@seoul.co.kr
2016-12-10 2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