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이메일 속에서 눈에 띄는 제목이 있다. ‘양심’이다. 미국 제28대 윌슨 대통령의 에피소드를 다뤘다. 대통령에게 한 비서관이 찾아왔다. 그는 대통령에게 잠시 업무를 접어 두고 기분 전환을 좀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다. 대통령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 말했다. “내 상관이 허락하지 않으실 걸세.” 그는 의아해 물었다. “상관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러자 대통령이 답했다. “그렇다네. 내 상관은 바로 내 양심일세. 양심상 임무 수행에 매진할 수밖에 없기에 자네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네.”
느낌이 크다. 양심, 자기 행위에 대해 옳고 그름,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이다. 혼자가 아닌 ‘함께 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어떤 길이 옳은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면 잠깐 하던 일을 멈추고, 조용히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세요. 그러면 자신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길로 인도해 줄 것입니다.’
누군가 묻는 듯싶다. “당신의 양심은 잘 있습니까?”, “양심, 잘 지키고 계시나요?” 누군가는 말한다. “양심은 스스로 돌아봐 부끄럽지 않다는 자각을 갑옷 삼아 아무것도 두렵게 하지 않는 좋은 친구”라고. 병신년도 가고 있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느낌이 크다. 양심, 자기 행위에 대해 옳고 그름,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이다. 혼자가 아닌 ‘함께 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어떤 길이 옳은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면 잠깐 하던 일을 멈추고, 조용히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세요. 그러면 자신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길로 인도해 줄 것입니다.’
누군가 묻는 듯싶다. “당신의 양심은 잘 있습니까?”, “양심, 잘 지키고 계시나요?” 누군가는 말한다. “양심은 스스로 돌아봐 부끄럽지 않다는 자각을 갑옷 삼아 아무것도 두렵게 하지 않는 좋은 친구”라고. 병신년도 가고 있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2016-12-06 3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