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Out] 달라지지 않은 ‘토건 공화국’/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

[In&Out] 달라지지 않은 ‘토건 공화국’/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

입력 2018-09-16 22:26
수정 2018-09-16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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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도가 들썩거리고 있다. 공항 건설 때문이다. 계획 단계부터 논란이다. 경제적 타당성뿐 아니라 환경 생태에 대한 훼손 우려 탓이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환경 이슈로 떠올랐다. 전략환경평가가 진행 중이다. 국토교통부는 강행할 태세이지만 환경부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국립공원으로서 흑산도가 멸종위기동물의 주된 서식지여서 그렇다.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
흑산도공항은 국토부 말고도 추진에 애착을 갖는 정부부처가 있다. 바로 총리실이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전남지사 시절부터 흑산도공항을 적극 추진했다. 총리가 되고 나서 제대로 추진하는가 했는데, 환경부가 제동을 걸고 있다. 그래서인지 김은경 환경부 장관은 이런저런 환경 현안 때마다 총리에게 지적을 받는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흑산도공항을 매개로 총리와 환경부의 불화설까지 이야기한다.

흑산도는 섬이다. 배편 말고 비행기가 시간이나 접근성에서 용이할 수 있다. 하지만 1개 읍면까지 공항을 만들어야 하느냐는 논란은 남는다. 더욱이 자연공원법과 자연환경보전법을 포함해 여러 환경 법규에 저촉되는 사항들도 적지 않다. 환경부가 법대로 타당성을 따져서 검토하면 흑산도는 영원히 천혜의 ‘자연 보고’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결정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1000억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해 읍면에 공항이 들어설 수도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정치인들도 개발과 토건에선 자유한국당을 뺨친다. ‘토건족’의 망령은 정권이 바뀌어도 그대로다. 돈을 정말 제대로 써야 할 곳은 지천이지만 그럼에도 토건에 골몰하고 있다. 예전엔 도로와 댐, 지방공항 건설이 유행처럼 번졌다. ‘토건 공화국’의 최대 상징인 도로 건설은 그나마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더이상 건설할 곳이 없어서다. 고속도로는 국토 면적 대비 세계적인 보급률을 보이고 있다. 4차선 국도도 마찬가지다. 도로가 마땅치 않다 보니 이젠 철도로 ‘토건 바이러스’가 옮겨가고 있다. 평창동계올림픽은 토건 잔치판이었다. 강원도가 온통 공사판이었다. 도로와 철도는 관리할 기관이라도 있지만 경기장은 서로 외면해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강원도는 ‘양육의 책임을 외면하는 부모’처럼 관리가 어렵다고 토로한다. 중앙정부가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예상을 못 한 건 아니지만 올림픽이라는 ‘잔치판’에 도취해 이를 간과한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기획재정부의 책임이 크다.

토건 공화국의 배후에는 기재부가 있다. 적자 사업도 균형 발전과 국제 경기, 관광 활성화라는 이유로 예산을 투입했다. 예산타당성 제도가 기재부 관료들의 정치적 보험 수단으로 악용되는 셈이다. 문제는 건설 후 관리단계에서 ‘나 몰라라’ 하는 태도다. 토건 망령의 씨앗을 뿌리는 예산타당성 제도에 수술이 필요해 보인다. 투명하고 책임 있는 구조로 운영이 바뀌어야 한다. 자기 주머니라면 ‘거품 예산’을 마구 보내주지는 않을 것이다.

2018-09-17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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