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4일 서울고등법원은 개인투자자가 도이치은행 및 증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1심을 뒤집고 원고 패소 판결을 선고했다. 지난 2월에도 비슷한 소송을 제기한 기관투자가가 항소심에서 패소한 점을 감안하면 최소한 2심에서는 법원이 모두 도이치 측의 손을 들어 준 셈이다.
논란이 된 소송은 2010년 11월 11일 발생한 ‘옵션 쇼크 사태’가 발단이 됐다. 당시 도이치은행은 도이치증권을 통해 장 마감 10분 전 2조 4400억원어치 주식을 대량 처분했고, 이로 인해 주가가 폭락하면서 투자자들은 큰 손실을 입었다. 반면 도이치 측은 사전에 매입한 풋옵션으로 448억원의 부당 이득을 챙겼다.
문제를 인식한 금융위원회는 2011년 5월 도이치증권에 대한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다. 그로부터 4년 뒤 서울중앙지법 1심 재판부는 도이치증권 임원들에게 실형을, 법인에는 벌금을 각각 선고했다. 도이치 측의 대량 매도 행위가 명백한 시세 조종 행위라는 것이 법원에 의해 인정된 것이다. 피해자들이 손해배상 소송에 나서는 것은 당연했다.
이어진 민사 소송에서 도이치 측은 바로 ‘4년’을 문제 삼았다. 도이치증권은 사건이 발생한 2010년 11월 11일, 늦어도 검찰의 기소 시점인 2011년 8월 19일을 투자자들이 손해를 인지한 시점으로 보고 민법상 손해배상 청구기간 3년을 적용해 자신들은 손해배상을 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펼쳤다.
민법 766조 1항은 ‘불법 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권은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간 이를 행사하지 아니하면 시효로 인하여 소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1심 재판부는 형사 판결이 나온 2016년 1월부터 3년이 기산돼 아직 소멸시효가 끝나지 않았다고 봤다. “전문투자가가 아닌 원고들은 민·형사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시세 조종 행위의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는 판사의 지적에 투자자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항소심 법원은 원고들이 늦어도 금융위의 영업정지 처분이 확정된 2011년 5월에는 피고의 불법 행위로 인한 손해와 위법성을 인식했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금융당국의 처분에 대한 언론 보도가 있은 지 3년 후 소송이 제기했으니 피고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항소심 결론은 금융범죄에 대한 소멸시효 기산점을 판단하는 데 있어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항소심이 앞세운 논리대로 소멸시효 기산점을 앞당긴다면 금융범죄 피해자들은 사법기관에 의해 회사의 잘못이 인정되기 전 벌떡 일어나 소송을 제기해야만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금융범죄에 대한 금융당국 발표, 검찰 기소, 법원 판결로 이어지는 기본 과정이 채 마무리되기도 전에 시간과 비용, 패소 위험을 무릅쓰고 소송에 나설 피해자가 얼마나 될까. 특히 이번 사건은 주범으로 지목된 도이치은행 홍콩지점 관계자가 소환에 응하지 않아 검찰조차 수사에 애를 먹었다. 갈수록 범행 수법이 교묘하고 복잡해 1심 판결에만 수년이 걸리는 최근 금융범죄 결과를 개인이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법원도 투자자들이 소멸시효에 걸리지 않기 위해 상대방의 책임이 명확하지도 않은 상태로 ‘묻지마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자본시장법에서 각종 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시효 또는 제척기간을 규정한 취지는 유가증권 거래로 인한 분쟁을 빨리 끝냄으로써 시장 안정을 도모하는 데 있다. 하지만 민법상 시효기산점인 위법성 인식 시점까지 불합리하게 앞당기는 것은 법 취지에 맞지 않다. 향후 대법원 판결에 투자자와 시장의 눈과 귀가 쏠려 있다.
이성우 변호사
문제를 인식한 금융위원회는 2011년 5월 도이치증권에 대한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다. 그로부터 4년 뒤 서울중앙지법 1심 재판부는 도이치증권 임원들에게 실형을, 법인에는 벌금을 각각 선고했다. 도이치 측의 대량 매도 행위가 명백한 시세 조종 행위라는 것이 법원에 의해 인정된 것이다. 피해자들이 손해배상 소송에 나서는 것은 당연했다.
이어진 민사 소송에서 도이치 측은 바로 ‘4년’을 문제 삼았다. 도이치증권은 사건이 발생한 2010년 11월 11일, 늦어도 검찰의 기소 시점인 2011년 8월 19일을 투자자들이 손해를 인지한 시점으로 보고 민법상 손해배상 청구기간 3년을 적용해 자신들은 손해배상을 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펼쳤다.
민법 766조 1항은 ‘불법 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권은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간 이를 행사하지 아니하면 시효로 인하여 소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1심 재판부는 형사 판결이 나온 2016년 1월부터 3년이 기산돼 아직 소멸시효가 끝나지 않았다고 봤다. “전문투자가가 아닌 원고들은 민·형사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시세 조종 행위의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는 판사의 지적에 투자자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항소심 법원은 원고들이 늦어도 금융위의 영업정지 처분이 확정된 2011년 5월에는 피고의 불법 행위로 인한 손해와 위법성을 인식했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금융당국의 처분에 대한 언론 보도가 있은 지 3년 후 소송이 제기했으니 피고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항소심 결론은 금융범죄에 대한 소멸시효 기산점을 판단하는 데 있어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항소심이 앞세운 논리대로 소멸시효 기산점을 앞당긴다면 금융범죄 피해자들은 사법기관에 의해 회사의 잘못이 인정되기 전 벌떡 일어나 소송을 제기해야만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금융범죄에 대한 금융당국 발표, 검찰 기소, 법원 판결로 이어지는 기본 과정이 채 마무리되기도 전에 시간과 비용, 패소 위험을 무릅쓰고 소송에 나설 피해자가 얼마나 될까. 특히 이번 사건은 주범으로 지목된 도이치은행 홍콩지점 관계자가 소환에 응하지 않아 검찰조차 수사에 애를 먹었다. 갈수록 범행 수법이 교묘하고 복잡해 1심 판결에만 수년이 걸리는 최근 금융범죄 결과를 개인이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법원도 투자자들이 소멸시효에 걸리지 않기 위해 상대방의 책임이 명확하지도 않은 상태로 ‘묻지마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자본시장법에서 각종 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시효 또는 제척기간을 규정한 취지는 유가증권 거래로 인한 분쟁을 빨리 끝냄으로써 시장 안정을 도모하는 데 있다. 하지만 민법상 시효기산점인 위법성 인식 시점까지 불합리하게 앞당기는 것은 법 취지에 맞지 않다. 향후 대법원 판결에 투자자와 시장의 눈과 귀가 쏠려 있다.
2018-06-25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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