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Out] 좋은 농산물이 나오기 위한 세가지 조건/오세득 셰프·고려직업전문학교 교수

[In&Out] 좋은 농산물이 나오기 위한 세가지 조건/오세득 셰프·고려직업전문학교 교수

입력 2017-04-27 21:02
수정 2017-04-27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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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득 셰프·고려직업전문학교 교수
오세득 셰프·고려직업전문학교 교수
“어떻게 하면 음식을 맛있게 만들 수 있나요?”

요리사들이 자주 받는 질문 중의 하나다.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맛있는 음식의 시작은 좋은 식재료를 찾는 일에서부터 출발한다. 외국의 요리학교에서 공부할 때 요리사들이 지역에서 공급되는 신선한 식재료를 연구하고 조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식재료의 중요성을 크게 느꼈다.

오너 셰프로서 레스토랑을 연 이후에는 한국의 제철 채소와 해산물, 육류, 장류 등을 전공인 프랑스 요리에 접목하기 시작했다. 좋은 식재료를 구하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지역 농산물들을 직접 살펴보기도 했다. 7년 전부터 제주도에서 영농조합원으로서 작게나마 농사에도 참여하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 농산물의 우수성과 소중함을 몸소 깨닫게 됐다. 그러나 우리 농산물이 좋은 품질에 비해 제대로 값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아 가끔 안타까울 때가 있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 대목이다.

국산 농산물이 식재료로서 제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농산물을 직거래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야 한다. 최근 로컬푸드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지만 농가와 셰프 간 직거래 교류가 더 늘었으면 좋겠다. 예컨대 셰프들이 ‘이런 사이즈와 모양으로 만들어 주면 쓰기 편하다’고 전달하면 농가는 해당하는 식재료 사양에 맞게 맞춤형 생산을 해주는 것이다. 고려닭과 청리닭 등은 우리나라에서 나고 자란 토종닭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구할 수 없는 우리만의 특색 있는 닭고기다. 직거래를 통해 이런 소규모 고품질 식재료들이 더 많이 공급된다면 셰프들의 다양한 프리미엄 요리를 보다 쉽게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판매 시스템을 시도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 가령 상품성이 떨어지는 채소나 과일도 버리지 말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팔 수 있는 길을 만드는 것이다. 영국의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는 못생긴 채소와 과일의 소비를 촉진하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농산물 가격 폭락을 막기 위해 대형 레스토랑과 연계하는 방법도 있다. 몇년 전 양파 파동 때처럼 갑자기 공급량이 늘어나면 식자재를 대량으로 소비하는 대형 레스토랑에서 양파 메뉴를 개발해 소비를 늘리는 것이다. 원상태 그대로의 채소가 아니라 볶은 양파, 볶은 당근 등 한 차례 가공을 거쳐 파는 것도 많은 식당들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

바람이 있다면 소비자들의 인식도 조금씩 바뀌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못생긴 무나 당근은 상품성이 없어 대부분 수확한 밭에서 버려진다. 그러나 깍두기를 담그고 볶음밥에 넣는 재료로 쓰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오히려 약을 쳐서 키운 것들이 겉모양은 예쁘지만 우리 몸에는 좋지 않다. 고기도 마찬가지다. 소비자 대부분이 소고기는 등심과 안심만, 돼지고기는 삼겹살과 목살 부위만 찾는다. 외국에서는 육류의 부위별 가격이 적정한 차이를 유지하지만 우리나라는 특정 부위에 대한 선호도가 너무 뚜렷해 어떤 부위는 지나치게 비싼 편이다. 거꾸로 소비자들이 찾지 않는 특정 부위는 가격이 너무 낮아지기도 한다. 베트남에서 돼지 목살을 주문하니 어깨살 부분까지 함께 파는 것을 봤다. 특정 부위의 쏠림 현상 때문에 도축 단계부터 붙여서 거래된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를 국내에서도 적용해 보면 어떨까 싶다. 정부나 관련 기관들이 연구해 보면 좋겠다.

우리 농산물의 가치를 다시 평가해야 할 때다. 농산물이 가치를 인정받아야 우리 땅에서 좋은 품질의 다양한 농산물이 계속 나올 수 있다. 여기에는 생산자의 노력뿐 아니라 소비자의 인식 변화 그리고 합리적인 유통과 판매 시스템이 필요하다. 좋은 농산물의 생산은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시작이자 활기찬 농촌,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기본이라고 믿는다.

2017-04-28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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