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우 한국방송통신대 행정학과 교수·전 한국인사행정학회장
반면 우리나라에서 통상 교섭을 담당하는 공무원의 평균 재직기간은 15개월에 불과하다. 정부 전체 과장급 이상 평균 재직기간(16개월)보다도 적다. 계급제를 근간으로 하는 정부 인사체계에서 순환보직에 따른 인사관리는 피할 수 없다 하더라도, 한 직위에 근무하는 기간이 지나치게 짧다는 점은 개선이 필요하다. 실제로 정부 부처 대부분의 국장들은 4~5년에 3개의 보직을, 실장은 3~4년간 2~3개의 보직을 거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2014년에 전보된 고위공무원 가운데 전 직위에서 1년 미만 근무한 사람은 47.0%, 2년 미만은 39.5%인데 비해, 2년 이상 근무한 사람은 14.5%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나마 특정 보직은 승진 후 퇴직을 위한 공무원을 배려(?)하는 자리로 오랜 기간 유지되다 보니 전문성과는 관계없이 보직이 관리되기도 한다. 또 우수한 역량을 가진 이들이 몇 개월 만에 부처의 본부나 더 나은 자리로 옮겨가는 징검다리용 보직으로 순환보직 관행이 활용되기도 한다. 임기가 보장된 개방형이나 공모직위를 부처 인사관리를 수월하게 하기 위해 활용하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러한 보직 관리 관행은 업무 연속성을 단절시키고 비효율을 야기한다. 보직 수행기간이 짧아지면 업무 성과 평가나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단기과제를 선호하고,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설익은 정책을 입안할 확률도 높다. ‘오보청’이라는 비난을 받았던 기상청의 경우는 순환보직제의 폐해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글로벌 경쟁력 향상과 경제 재도약이 중요한 현시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공무원은 여러 분야를 거친 ‘제너럴리스트’보다 한 분야에 특화된 ‘스페셜리스트’라 할 수 있다. 웬디 커틀러 같은 ‘통상 전문공무원’, 평생 날씨 보도만 해 온 ‘김동완 기상캐스터’ 같은 이들이 절실하다고 하겠다.
최근 인사혁신처가 전문직 공무원을 도입해 ‘평생 한 우물만 파는 공직 내 전문가’를 육성하겠다는 소식은 희망적이다. 그동안 개방형 직위 확대, 필수 보직기간 강화 등 채용과 보직관리 등에서 공직 전문성을 높이려는 다양한 시도가 있었지만, 그 효과가 미미하고 미봉책에 그쳤던 게 사실이다. 이런 가운데 이번 전문직 공무원 도입 소식은 한 분야에 20년 이상 특화된 전문가를 확보하고 양성했어야 하는 공직에서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앞으로 빅데이터를 활용한 공무집행이 보편화하면 지금처럼 많은 공무원이 필요 없게 되겠지만 업무와 관련한 공무원의 전문성에 대한 가치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이러한 미래 상황에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공무원 각자가 업무와 관련한 전문성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전문성이 부족한 공무원의 존재 가치는 기계에 비해 낮게 책정될 것이며 결과적으로 일자리를 빼앗기게 될 것이다. 더욱이 새 세상을 열어 갈 새로운 제안이나 사회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방해하며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오히려 규제하려고 덤벼든다면 그야말로 국가적 재앙이 아닐 수 없다.
공무원(특히 고위공무원)의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인사혁신처가 여러 제도를 도입, 운영하는 것은 타당한 일이다. 웬디 커틀러처럼 상대국 대표를 뛰어넘는 세계 최고의 통상 전문가, 한 우물만 파는 기상 전문가를 기대해 본다.
2016-10-19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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