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시설물 안전 점검과 경험적 감각/윤홍렬 서울시 시설안전과 안전점검팀장

[기고] 시설물 안전 점검과 경험적 감각/윤홍렬 서울시 시설안전과 안전점검팀장

입력 2021-09-14 09:15
수정 2021-09-14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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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전문 분야에서 경험이란 매우 중요하다. 특히 건설 분야에서는 책상머리에서 배운 지식보다는 현장에서 손발로 만지고 걸어 보면서 익힌 지식이 중요한 판단의 근거가 된다.

독일의 어느 토목 엔지니어가 최근 건립된 콘크리트 옹벽을 점검할 때였다. 그는 완공된 옹벽이 안전한 지를 확인해야 했다. 물론 계측 결과 분석과 도면 검토뿐 아니라 시공 상황에 대한 상세한 설명도 들었다. 그 정도면 기술자로서 필요한 정보는 다 얻었다.

그러나 그가 최종적으로 안전 여부를 판단할 때가 되자, 옹벽에 가만히 손바닥을 댄 후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 행동은 그곳의 기운과 힘을 느껴 보는 듯했다. 그러고는 손을 떼면서 이 구조물은 안전하다고 최종 결론을 내렸다.

상세한 계측치, 설계 도면 그리고 시공 상황을 파악했지만 마지막 판단은 기술자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감각에 의존했던 것이다. 어쩌면 이는 경험과 초월적 감각을 숭배하는 과장된 일화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만큼 기술자의 경험과 감각은 중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서울시에는 ‘어사대’라는 조직이 있다. 이 조직원들은 지난 수십 년간 공사 현장에서 소장, 안전 관리자 등으로 근무했던 사람들이다. 6개 반으로 편성된 이들은 건설 현장을 매일같이 방문해 안전 수칙을 제대로 지키는지, 안전시설을 규정대로 설치했는지를 점검하고 미비된 사항에 대해서 시정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이들을 공사장 안전 점검에 투입하는 것은 오랜 경험을 현장에 반영해 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민선 자치 단체장이 선출되고부터는 지자체의 행정 비중이 공약 사업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으나, 안전 점검과 같은 법정 업무의 중요성은 결코 경시될 수 없다.

●국가안전대진단은 전문가의 경험을 필요로 한다

세월호의 비극을 잊지 말자는 취지로 2015년부터 매년 2~4월까지 2개월 동안 시행되던 국가안전대진단을 올해는 코로나19의 여파로 8~11월 중 1개월간 지자체의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내실 있게 실시하도록 결정 났다.

이에 따라 서울시와 25개 자치구는 추석 명절 다중이용시설 점검과 연계해 이달부터 다음달까지 국가안전대진단을 실시한다. 이번에도 민간 전문가와 합동으로 점검하게 되는데, 참여하는 전문가들에게 바라는 것은 그들의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한 경험적 판단이다. 그것은 국가안전대진단이 장비를 이용한 정밀 점검이 아닌 육안 점검을 주로 실시하기 때문이다.

이번 국가안전대진단은 위험하고 노후화된, 그리고 과거에 안전사고가 발생했던 시설물을 중점적으로 점검한다. 정부와 자치단체뿐만 아니라 시설물 관리자의 자율적인 점검도 실시된다. 자율점검표를 이용해 일상생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미리 차단하고 안전에 대한 의식을 고취해야 할 것이다. 국가안전대진단 결과, 개선이 필요한 시설은 빠른 시일 내에 보수보강을 추진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되겠다.

코로나19 사태는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건설 현장에서도 코로나19 방역에 행정력을 집중시키고 있지만, 안전 점검을 할 때도 코로나19 방역 지침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예로부터 역병이 나돌면 수많은 민중들이 목숨을 잃고 경제 위기까지 닥치곤 했다. 예나 지금이나 위기가 닥쳤을 때 가난한 자의 설움은 더욱 크다. 우리 모두는 과거의 경험을 겸허히 받아들여 작금의 고난을 이겨 나가는 현명함을 길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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