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희 세종시장
어디에 연결도로를 건설하느냐가 지역의 이슈가 됐다. 도로 위치에 따라 동네 발전과 땅값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4개의 대안이 제시됐다. 당시 시장이던 필자는 그 결정권을 조치원 주민에게 일임했다. 주민들 스스로 고민하고 토론해 결정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취지에서였다. 주민들은 수개월간 8차례 모임을 갖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잠시 혼란과 갈등을 겪기도 했지만 주민들은 누가 봐도 조치원 발전에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안을 선택했다. 그때 주민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이때 깨달은 것이 있다. 명실상부한 지방자치가 실현되려면 중앙정부가 지방을 믿고 더 많은 권한을 위임해야 한다는 것을. 주민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을 주민 스스로 결정하고 추진하는 시민 주도·시민 참여형 민주주의를 실현하자는 것이다.
1991년 지방자치가 부활한 이후 30년 가까이 세월이 흘렀지만 진정한 ‘풀뿌리 자치’는 뿌리내리지 못했다. 여전히 중앙정부가 권한 대부분을 쥐고 있고 지방정부는 반쪽짜리 기능만 수행하고 있다. 지방정부 안에서도 단체장이나 공무원이 권한을 움켜쥐고 있고 주민들은 지방의회의원과 단체장을 뽑는 데 머물고 있다. 중앙정부는 지방정부를, 지방정부는 지역 주민을 믿지 못해 권한을 돌려주지 못하고 있다.
청춘 조치원 사업을 주도하는 주민들에게서 보듯 이제 우리 사회는 폭넓은 민주주의를 추진해도 될 만큼 시민의식이 충분히 영글었다. 주민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 동네 일은 우리가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시민들의 진정성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제 중앙정부만 바뀌면 된다.
세종특별자치시는 국가 균형발전을 염원하는 국민적 열망으로 탄생한 도시다. 균형발전 선도 도시에서 한발 더 나아가 ‘지방자치, 자치분권을 가장 잘하는 도시’로 거듭나려고 한다. 국가 균형발전을 위한 행정수도 완성을 추진하는 동시에 대한민국의 미래 100년을 준비할 수 있도록 지방분권과 주민자치 실현에도 힘을 쏟고 있다. 세종시가 21세기 대한민국을 환하게 밝히는 아름다운 꽃이 되길 기대한다.
2019-01-22 30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