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간병 파산’ 막는 다층 보장제도가 필요하다

[데스크 시각] ‘간병 파산’ 막는 다층 보장제도가 필요하다

정현용 기자
정현용 기자
입력 2024-03-14 00:42
수정 2024-03-14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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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총선 화두 ‘간병비 부담 완화’
건강보험 재정 부담 ‘15조원’ 예상
민간보험 결합한 다층적 지원 필요

간병비가 4월 총선의 화두로 떠올랐다. 여야 모두 간병비 부담 완화를 1호 노인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런 움직임을 ‘표 구걸’로 치부하기엔 상황이 너무 엄중하다. 총선을 계기로 정책 제안이 시작된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 정도다.

올해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은 19.4%인데,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런 속도라면 2050년 전체 인구의 40.1%가 노인이 된다. 더 큰 문제는 노인 상당수가 빈곤 상태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2022년 가처분소득 기준으로 65세 이상 노인의 빈곤율은 38.1%다. 가처분소득은 개인소득에서 세금을 제하고 연금소득을 합한 것으로, 소비와 저축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돈이다.

삶조차 풍요롭지 않은 노인이 간병비를 부담할 여력이 있을 리 없다. 근거리에 배우자나 자녀가 있다면 다행이다. 혼자 사는 노인 비율은 지난해 기준으로 이미 21.1%에 이르렀다. 지금 당장 정부와 사회가 나서지 않으면 조만간 거대한 ‘현대판 고려장’의 바퀴가 우리를 짓밟을 것이다.

한국은행 분석에서 개인 간병인을 고용하면 월평균 간병비가 370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65세 이상 노인가구의 중위소득(224만원)보다 150만원 가까이 많다. 중위소득은 100명을 줄세웠을 때 가운데 위치한 사람의 소득이다.

자녀 입장에서도 숨이 턱턱 막히는 금액이다. 40·50대 가구 중위소득(588만원)의 60%를 넘는다. 앞으로 노인은 계속 늘어나고 간병인 공급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당장 부담을 줄일 방법도 마땅치 않다. 정부의 지원이 없다면 앞으로 간병비 때문에 파산하는 가정이 속출할 것이다. 그렇다고 건강보험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기도 어렵다. 여야 모두 ‘간병비 급여화’를 총선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현실화하려면 큰 산을 몇 번 넘어야 한다.

요양병원 환자 5단계 분류 중 중증도가 높은 1~3단계 환자만 간병비 지원 대상에 포함시켜도 매년 15조원의 추가 재정이 필요하다. 이런 식이라면 4년 뒤 건강보험 적립금이 바닥난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로 위기에 처한 건강보험 재정을 더 빨리 고갈시키는 ‘방아쇠’가 된다는 것이다.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 아무리 좋은 총선 공약이더라도 ‘포퓰리즘’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그래서 나온 대안이 ‘다층적 간병비 제도’다. 건강보험을 중심으로 한 공적 영역과 민간보험을 중심으로 한 사적 영역, 세제 혜택을 결합시키는 방식이다. 국민연금과 개인연금, 퇴직연금이 합쳐진 ‘다층적 노후보장 제도’처럼 어느 한쪽에 부담이 쏠리지 않도록 균형을 맞춘 것이다.

미국에는 장기 간병 특약을 연금상품에 포함시킨 ‘장기요양연금’이 있다. 정부는 보험금에 대한 면세 혜택은 물론 보험료 인상을 금지해 가입을 유도한다. 또 장기요양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중도 인출할 경우 세금을 면제해 준다. 영국에서도 보험료 대비 보험금 혜택이 높은 ‘저가형 장기간병보험’을 출시해 공적 영역을 보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우리도 간병비 특약이 포함된 민간보험 상품에 집중적인 세제 혜택을 줘 가입을 유도하는 한편 보험료 인상을 억제해 공공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빈곤층에겐 건강보험 급여 보장 범위를 넓혀 주고, 민간보험 가입 여력이 있는 사람에겐 건강보험과 민간보험의 혼합 보장이 가능하도록 해 주면 된다.

여기에 개인 간병비를 세액공제 대상에 포함시켜 환자와 가족의 부담을 완화하면 금상첨화다.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간병인 상당수가 소득 노출을 꺼리기 때문에 현재는 현금영수증 등 지출 증빙을 하기가 무척 어렵다. 따라서 의료적으로 활동하는 간병인의 지위를 법으로 정하는 ‘간병인 등록제’가 선결 과제다. 보험금 누수도 엄격히 체크해야 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가능성이 있는 모든 방안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논의해야 할 때다.

정현용 플랫폼전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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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용 플랫폼전략부장
정현용 플랫폼전략부장
2024-03-14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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