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임대 분양전환의 덫… 전국서 ‘2018년 판교사태’ 재현
집값이 안 오른 곳이 없다 보니 2018년 ‘판교 공공임대 분양전환 갈등 사태’ 같은 일이 전국적으로 재현되고 있다. 내 집 마련을 꿈꾸고 공공임대에 입주한 뒤 그 아파트를 분양받으려던 세입자들이 크게 오른 분양전환 가격 때문에 포기하고 내몰리는 것이다. 특히 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빚을 내 분양전환가를 감당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하소연이 많다. 하지만 국토교통부는 법령에 근거한 분양전환가 산정인 만큼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10년 공공임대의 분양전환가 산정은 분양전환 시점의 시세를 반영한 감정평가액을 기초로 한다. 건설원가와 분양시점 감정가의 평균값으로 하는 5년 공공임대에 비해 집값 상승기엔 분양전환가가 높게 나올 수밖에 없다. 이들 단지의 감정가가 주변 시세의 70%로 나온다고 해도 전용면적 59㎡ 기준 4억원대 후반~5억원대 초반으로 분양전환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계약 당시 확정 방식으로 분양전환가를 선택했을 경우엔 1억원대 후반이었던 걸 감안하면 3배나 높은 가격이다.
이들 아파트에 거주하는 세입자들은 보증금 3500만원에 50만원의 월세(59㎡ 기준)를 내고 살고 있다. 갑자기 수억원을 마련할 만큼 자금이 넉넉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빚으로 분양전환가를 마련하는 것도 여의치 않다. 투기 지역인 세종은 집값의 40%(서민·실수요자는 50%)밖에 대출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감정가를 바탕으로 하더라도 여전히 시세보다 저렴하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주민들은 “집값을 우리가 올린 게 아니다”라며 “주변보다 싸더라도 마련할 방법이 없어 내쫓기게 될 판”이라고 반박한다. 이들 단지 변호인인 정민회 법률사무소 이음 대표변호사는 “임대사업자가 이미 그간 받은 월세로 상당한 비용을 회수했는데, 감정가를 바탕으로 분양하면 시세 상승 이익까지 챙기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런 갈등은 전국에서 나타나고 있다. 충남 천안 불당동 LH천년나무7단지 주민들은 지난달 분양전환가가 너무 비싸다며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국토부를 상대로 집단 항의에 나섰다. 경기 수원과 인천, 전남 순천, 제주 등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국토부 집계를 보면 10년 공공임대의 분양전환 물량은 전국적으로 12만 가구(2018년 12월 기준)에 달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집값이 이렇게 오르지 않았다면 오히려 감정가 기준이 저렴할 수도 있었다”며 “법령에 따라 분양전환가를 산정하고 계약까지 체결된 사안에 개입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세종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2021-05-04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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