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운드 밖 ‘지루함’과의 싸움

그라운드 밖 ‘지루함’과의 싸움

입력 2014-06-03 00:00
수정 2014-06-03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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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호 ‘이동 →훈련’ 단조로운 일정

축구팬들은 한 달 동안 이어질 ‘브라주카의 향연’을 탐닉할 생각에 들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진가를 알릴 기회가 왔노라고 잔뜩 벼르는 선수들의 마음속에는 새로운 적에 대한 두려움이 스멀스멀 일지 모른다. 조별리그나 토너먼트에서 만나는 상대 팀이나 선수가 아니다. 바로 ‘지루함’이란 적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견딥니다… 우린 태극전사니까
아무리 힘들어도 견딥니다… 우린 태극전사니까 손흥민(왼쪽)을 비롯해 구자철, 이용, 한국영이 2일 미국 마이애미의 세인트 토머스대학 축구장에서 펼쳐진 둘째날 전지훈련 중 섭씨 30도, 습도 60%의 가마솥 더위에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거친 숨을 내쉬고 있다.

마이애미 연합뉴스
지난달 31일(이하 현지시간)부터 미국 마이애미 전지훈련을 시작한 홍명보호. 매일 오후 4시 30분부터 팀 훈련을 소화하는 것 말고는 별다른 일정이 없다. 가나와의 평가전이 열리기 전까지 쭉 그렇다. 그리고 11일 브라질 포스두이구아수 베이스캠프에 입성한 뒤 14일까지 또 단조로운 일정이 반복된다. 15일 첫 경기가 열리는 쿠이아바로 이동, 또 훈련한다. 17일 러시아와 첫 경기를 마치면 다음 날 다시 이구아수 베이스캠프로 귀환, 사흘 동안 훈련한 뒤 다음 알제리전이 열리는 포르투 알레그리로 이동한다. 벨기에와 맞붙을 때까지 이런 일정이 반복되고 토너먼트에 올라가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홍 감독이 국내에서처럼 시원하게 이틀 휴가를 쏠 것 같진 않다. 외출도 쉽지 않다. 월드컵 반대 시위가 끊이지 않는 브라질에서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함부로 돌아다녔다가는 생존의 위협에 직면할 수도 있다. 그러니 마크 빌모츠 벨기에 대표팀 감독이 얘기한 대로 ‘수도원에서처럼’ 지낼 수밖에 없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 참가했던 잉글랜드 대표팀 주장 존 테리는 “미니 다트와 스누커, 풀장이 유일한 놀거리였다. 엄청나게 지루한 나날이었다”고 했고 웨인 루니는 “저녁에 남자 둘이 침대에 누워 노닥거린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한심했겠는가”라고 혀를 찼다. 2006년 독일월드컵 때 독일 대표팀은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를 들어 여자친구나 부인이 바덴바덴 캠프에서 선수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도록 했다. 이들이 엄청난 돈을 풀어 지역경제에 도움이 됐다거나 다른 나라 선수들이 엄청 부러워했다는 얘기도 다시 듣기는 어려울 것 같다.

홍 감독은 일찌감치 국내 훈련을 시작하면서 휴대전화를 압수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내밀한 얘기를 털어놓았다가 개인은 물론 대표팀 전력을 해치는 사례가 한둘이 아니어서 이제는 당연한 조치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러니 선수들은 ‘X박스’ 같은 게임기에 얼굴을 파묻을 수밖에.

그렇다고 통제만이 능사는 아니다. 빌모츠 감독은 선수들이 베이스캠프 근처 호수에서 낚시를 즐길 수 있도록 상당한 양의 송어를 풀어놓도록 요청했다. 그러나 로이 호지슨 잉글랜드 감독은 “그런 얘기 나오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그게 싫으면 아예 축구를 하지 말라”고 일갈했다. 잉글랜드 대표팀의 전설로 불리는 BBC 해설위원 개리 리네커는 “월드컵이 지루하다고? 너희들이 축구하는 일생 동안 꿈꿔온 순간이 지금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2014-06-0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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