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 방지용 테이프 벗겨내고 올림픽 치러
박인비(28·KB금융)는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출정에 앞서 제주 오라 골프장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삼다수 마스터스에 출전했다.두달 가량 대회에 출전하지 않아 무뎌진 실전 감각을 되찾기 위한 최종 리허설 격이었다.
그러나 박인비의 샷은 실망스러웠다. 저런 샷으로 어떻게 올림픽에 나갈 생각을 하느냐는 뒷말이 무성했다.
삼다수 마스터스 대회 때 박인비의 왼손 엄지손가락 부분에는 테이프가 감겨 있었다. 테이프를 감은 채 경기를 치렀다.
박인비는 왼손 엄지손가락 인대가 손상됐다. 왼손 엄지손가락은 백스윙 때 클럽 무게가 실리는 중요한 부위다. 치료가 다 끝나지 않아 백스윙 때마다 통증이 왔다.
테이프는 통증 방지책 가운데 하나였다. 테이프를 감으면 그래도 통증이 덜했다.
하지만 테이프는 미세한 스윙 감각을 방해했다.
박인비는 기계적인 스윙으로 샷을 만들어내는 선수가 아니다. 박인비의 스윙은 감각적이다.
백스윙 때 엄지손가락을 중심으로 그립에서 느끼는 감각으로 샷을 조정한다.
신기의 퍼팅 역시 감각에 주로 의존한다. 박인비는 동반 선수들조차 “어떻게 저게 들어가느냐”며 놀라는 퍼팅을 대회마다 보여주곤 한다.
이론이나 훈련으로 설명되지 않는 박인비의 퍼팅은 온전히 타고 난 감각 덕이다.
삼다수 마스터스에서 박인비는 테이프를 감은 상태로는 도저히 스윙이나 이런 천부적인 퍼팅 감각을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테이프를 감으면 샷이 안 되고, 테이프를 벗기면 손가락이 아팠다.
리우로 건너간 박인비는 통증을 견디기로 했다. 샷 감각을 선택한 것이다.
테이프를 감은 채 하던 샷과 퍼팅은 쇠몽둥이처럼 무뎠지만, 테이프를 벗겨내니 컴퓨터처럼 정교하게 살아났다.
삼다수 마스터스에서 그는 “샷에 날카로움이 없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리우에서는 달랐다
박인비는 리우로 출발하기 전부터 “통증은 거의 없어졌다”고 말했다. 리우 현지에서도 “하나도 아프지 않다”면서 “더는 통증에 대해 묻지 말라”고 했다.
박인비는 금메달을 딴 뒤에야 ‘진실’을 털어놨다.
통증은 그대로였고 샷을 할 때마다 아팠다고.
통증을 참아내며 박인비는 268번 샷과 퍼팅을 한 끝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박인비는 경기를 끝낸 뒤 “온 몸에 에너지가 다 빠져나간 느낌”이라고 말했다.
나흘 동안 고도의 압박감 속에서 샷을 할 때마다, 퍼팅 어드레스에 들어갈 때마다 느껴지는 통증을 참아낸 박인비의 초인적 인내심이 경탄스럽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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