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 그 뒤에 있었던 가족의 힘. 연합뉴스
안시현(오른쪽)은 이날 인천 베어즈베스트 청라 골프장 유럽·오스트랄아시아 코스에서 열린 한국여자오픈 골프대회에서 12년 만에 국내 대회 우승을 일군 뒤 딸을 안고 활짝 웃고 있다.
19일 인천 베어즈베스트 청라 골프장(파72)에서 열린 한국여자오픈에서 안시현(32·골든블루)이 우승하고 홍진주(33·대방건설)는 선두권을 달린 끝에 6위를 차지했다.
안시현과 홍진주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선수 가운데 둘밖에 없는 엄마 선수다.
둘밖에 없는 엄마 선수 가운데 한 명은 우승하고 또 한 명은 쟁쟁한 후배들을 제치고 톱10에 입상한 것이다.
안시현은 다섯 살 난 딸을 혼자 키우는 싱글맘이다. 홍진주는 세 살배기 아들이 있다.
홍진주의 아들은 아직 어려서 경기를 지켜볼 ‘관전 매너’를 갖추지 못해 엄마의 경기 모습은 아직 보지 않지만 자주 골프장에 모습을 드러내는 안시현의 딸은 골프장에서는 조용해야 한다는 걸 안다.
안시현의 딸은 대개 주말이면 엄마가 경기를 치르는 경기장에 온다. 딸을 맡아 키우는 어머니가 일부러 데리고 오기 때문이다.
안시현과 홍진주는 직업 골프 선수이기에 경기장은 직장이다.
이들도 보통 ‘직장맘’이나 다름없이 어린 자녀를 떼어놓고 직장으로 ‘출근’하는 일이 쉽지 않다.
게다가 이들은 보통 직장인과 달리 ‘출장’이 잦다.
안시현은 올해 10차례 대회 가운데 한번은 중국, 두번은 제주에서 치렀다. 경남 김해와 강원 춘천을 한번씩 다녀왔다.
홍진주 역시 중국, 베트남에서 각각 대회를 치렀고 제주도에서 3차례, 그리고 김해와 춘천 대회에 참가했다.
절반은 외국이나 지방이다. 안시현은 “아이한테 늘 미안하다”고 말했다.
홍진주는 제주 원정 때 아들을 데려갔다가 먼저 집으로 올려보내고 나서 경기를 치르는데 허전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둘은 월요일은 아이와 함께 보내려고 애쓴다. 다른 일정은 어지간하면 잡지 않는다. 온전히 아이와 함께 하루를 보낼 시간은 월요일 뿐이라서 그렇다.
화요일부터는 공식 연습일, 프로암, 그리고 대회가 이어진다.
엄마와 프로 골프 선수 역할을 겸하는 생활은 여간 고단하지 않지만 직업 선수로서 자부심은 이들을 지탱하는 힘이기도 하다.
둘은 초청 선수로 출전한 LPGA 투어 대회에서 우승해 미국에 진출했다가 쓴맛을 보고 국내에 복귀했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화려한 젊은 날도 있었지만 고난과 역경의 시절도 겪었다. 결혼과 출산으로 투어를 비웠다가 복귀한 점도 닮았다.
둘은 젊은 후배들에게 영감과 용기를 주는 인물이라는 점도 똑같다.
홍진주는 “어릴 때는 느낄 겨를이 없었지만 투어에서 뛰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자랑스럽다”면서 “후배들에게 이 좋은 직장을 그만 둘 생각하지 말라고 한다”고 말했다. 홍진주는 “(어려움이 있어도) 용기를 잃지 말라는 메세지를 주고 싶다”고도 말했다.
안시현은 “후배들에게 포기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다”면서 “이번 우승으로 후배들도 용기를 얻고 결혼과 출산 후에도 선수로 뛸 수 있다는 걸 알렸다면 다행”이라고 밝혔다.
둘은 한국여자오픈 1, 2라운드에서 동반 플레이를 펼쳤다. 이틀 동안 함께 라운드를 돌면서 둘은 굘프 얘기보다 아이 얘기를 더 많이 했다. 이틀 동안 육아를 주제로 실컷 수다를 떨었다.
둘은 1, 2라운드를 상위권으로 마쳤다. 애 엄마끼리 통하는 뭔가가 마음을 편하게 해준 결과였던 모양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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