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급 선수 불참 속출에 ‘야구 꼴 날라’ 걱정
“초창기 정상급 불참에도 자리 잡은 테니스처럼 안착할 것”올림픽 출전이 확실한 조던 스피스와 불참 가능성을 시사한 로리 매킬로이.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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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을 계기로 전 세계에 골프 인기를 확산하려던 주요 골프 관련 단체 인사들은 세계랭킹 3위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가 “지카 바이러스를 주시하겠다”고 말하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매킬로이가 올림픽 불참 가능성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골프는 112년 만에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됐다. 올림픽 정식 종목에 복귀했다고 표현하지만, 역사를 보면 사실상 새로 채택된 것이나 다름없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그리고 유럽프로골프투어 등 골프 경기 단체는 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을 계기로 더 많은 사람이 골프를 즐기고, 골프 관련 산업이 커질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골프의 올림픽 종목 채택을 특히 반긴 것은 미국이다. 미국은 골프 인구가 날로 줄고 있다. 컴퓨터 게임과 익스트림 스포츠에 빠진 젊은이들이 골프에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골프 관련 산업은 침체일로다.
골프계는 올림픽에서 일석이조를 노린다. 미국 젊은이들의 관심을 골프로 돌리고, 골프 산업이 아직 성숙하지 않은 나라에 골프 붐이 일어나길 기대한다.
PGA투어는 타이 보토 부사장을 올림픽 골프를 관장하는 국제골프연맹(IGF)에 파견하는 등 올림픽에서 골프가 성공적으로 치러지도록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다.
미국을 벗어나 세계화에 적극적인 LPGA 투어의 마이크 완 커미셔너도 올림픽에 골프가 정식 종목이 되면서 더 많은 나라에서 골프가 인기 종목이 되리라는 기대감을 수시로 드러냈다.
하지만 이런 기대가 충족되려면 지명도 높은 스타급 선수들이 올림픽에 출전해야 한다. 스타 선수들의 눈부신 플레이가 펼쳐져야 골프의 매력을 세계 구석구석 알릴 수 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 마이클 조던을 비롯한 미국프로농구(NBA) 슈퍼스타가 ‘드림팀’을 구성해 대거 나선 것이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 농구 붐을 일으킨 계기가 됐다.
반면 세계 최고의 선수가 모인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는 올림픽에 선수를 내주지 않았다. 결국 야구는 올림픽에서 퇴출당했다.
PGA투어를 비롯한 골프계는 골프가 올림픽에서 농구가 걸었던 꽃길이 아니라 야구가 빠진 진창길에 접어들까 노심초사다.
비제이 싱(피지), 루이 우스트히즌, 샬 슈워츨(이상 남아공), 애덤 스콧, 마크 리슈먼(이상 호주) 등 유명 남자 선수들이 잇따라 올림픽 불참을 선언하면서 나온 걱정이다. 리슈먼을 뺀 4명은 메이저대회 챔피언이다.
골프계는 그래도 리우데자네이루에 가겠다는 선수가 가지 않겠다는 선수보다 훨씬 많고 지명도도 높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분위기였다.
세계랭킹 1∼3위 제이슨 데이(호주), 조던 스피스(미국), 매킬로이는 지금까지 “올림픽에 꼭 간다”는 태도였다. 리키 파울러(미국), 마르틴 카이머(독일), 저스틴 로즈(영국), 헨릭 스텐손(스웨덴) 등 정상권 선수들도 올림픽에 출전하겠다는 뜻을 여러차례 밝혔다.
톰 핀첨 커미셔너는 “문제는 있지만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골프는 성공적으로 치러질 것”이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매킬로이의 ‘변심’에 분위기 변화가 감지됐다.
매킬로이는 스콧과 우스트히즌, 슈워츨이 올림픽 출전을 거부하자 “이러다 올림픽에서 골프가 살아남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말하기도 했기에 출전 불가 가능성을 내비친 게 더 충격적이다.
올해 마스터스 챔피언이자 세계랭킹 9위 대니 월렛(영국)마저 “올림픽에 출전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하자 골프가 야구 꼴이 되지 않겠느냐는 우려는 더 커졌다.
골프는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과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만 정식 종목 자격을 보장받았을 뿐이다. 2024년 올림픽 때 정식 종목으로 살아남을지는 불투명하다.
CBS 칼럼니스트 카일 포터는 “매킬로이가 만약 올림픽에 출전하지 않는다면 골프는 다시는 올림픽 종목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썼다.
매킬로이는 지카 바이러스에 대한 걱정을 거론했다. 윌렛 역시 지카 바이러스 때문에 못 갈 수 있다고 밝혔다. 리슈먼도 아내의 건강이 나빠 지카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브라질에 가기 어렵다고 말했다.
PGA투어, 미국골프협회(USGA), LPGA 투어, 미국프로골프협회(PGA of America), IGF 등 골프 관련 단체들은 선수들에게 지카 바이러스에 대한 걱정을 덜어주려고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
플레이어스챔피언십 때 PGA투어 전속 의료진은 선수와 1대1 면담을 했다. 지카 바이러스에 대한 최신 정보를 상세하게 설명했다.
IGF 앤서니 스캔런 사무총장은 “여성이 특히 지카 바이러스에 취약하다고 해서 여자 선수들에게는 각별히 신경을 쓴다”고 밝혔다. LPGA투어 완 커미셔너 역시 “내게 직접 말한 선수는 없지만 아마 다들 걱정하고 있을 것”이라면서 “우리는 정확한 정보를 수시로 배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카 바이러스는 핑계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많다.
올림픽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선수들이 지카 바이러스를 출전 거부의 명분으로 삼는다는 얘기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올림픽 출전에 따른 이익이 없다는 사실이다.
스콧은 “나는 매주 투어 대회에서 조국의 명예를 드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메이저대회를 비롯한 굵직한 투어 대회 우승이 올림픽 메달보다 국위 선양에 못할 게 없다는 주장이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100만 달러가 넘는 상금과 명예가 주어지는 메이저대회와 비교해서 올림픽 메달이 그다지 매력적이지가 않다는 건 정상급 선수들이면 다 느낀다.
대표팀 유니폼이 주는 명예를 위해 돈을 받지 않고 경기에 나서는 것도 라이더컵과 프레지던츠컵이면 충분하다는 게 이들 정상급 선수들의 생각이다.
올림픽을 전후해 너무 빡빡한 투어 일정도 문제다. 매주 쉬지 않고 돌아가는 투어 대회는 올림픽 출전 티켓 경쟁 탓에 더 빡빡해졌다.
스콧이나 우스트히즌은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올림픽 출전을 일정에 넣으면 쉬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불만이다.
한국 골프 대표팀 코치를 맡은 최경주는 “선수들에게 보상이 충분하지 않다”면서 “투어 선수에게는 올림픽 출전이 일방적인 희생일 뿐이라는 생각이 강하다”고 말했다.
정상급 선수들이 일부 빠진다고 해서 올림픽에서 골프가 실패할 것이라는 예상은 섣부르다는 반론도 있다.
테니스가 64년 만에 올림픽 종목에 복귀한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이반 렌들(체코), 보리스 베커(독일), 지미 코너스(미국)가 출전하지 않았다. 피트 샘프러스(미국)는 단 한 번도 올림픽에 출전하지 않았다.
R&A 사무총장을 지낸 뒤 지금은 IGF 회장을 맡은 피터 도슨은 “지금은 정상급 테니스 선수들이 올림픽에 출전해 메달을 따려고 안간힘을 쓴다”고 말했다. 앞으로 골프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그는 낙관했다.
112년 만에 올림픽에 등장한 골프가 야구의 전철을 밟을지, 농구나 테니스처럼 성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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