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CLA 신경과학 인지편향 연구
NFL 공격형 선수 10~19번 선호
같은 신체조건에 등번호만 변화
낮은 번호일수록 날렵하게 느껴
운동능력 판단에 ‘숫자’ 변수 인식
‘학습된 성질’ 편향적 사고에 영향
신경과학자들은 똑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는 똑같은 크기의 이미지에 운동복의 숫자만 바꿔 가면서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는지에 대한 실험을 했다(위). 실험 결과 숫자에 따른 운동 능력에 대한 편견을 가진 것으로 확인됐다. 인지편향 또는 확증편향은 사람이나 사회집단에 관한 판단과 결정,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타인에 대한 선입견도 기존 지식이나 상식을 바탕으로 한 인지편향 때문에 생긴다(아래).
UCLA·픽사베이 제공
UCLA·픽사베이 제공
이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지지하는 자료에는 주목하는 반면 의견에 반대되는 자료는 무시하는 경향이 크다. 인지심리학에서는 이를 확증편향 또는 인지편향이라고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대(UCLA) 신경과학과 연구팀은 인지편향에 관한 재미있는 사례를 찾아내 미 공공과학도서관에서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플로스 원’ 9월 7일자에 발표했다.
미국의 스포츠 전문 케이블채널 ESPN은 2019년 미식축구 와이드 리시버의 등번호를 조사했다. 미식축구에서 와이드 리시버는 쿼터백이 던져 주는 공을 받아 터치다운으로 연결하는 선수로 축구로 따지면 스트라이커 같은 역할이다. 그 결과 대부분의 와이드 리시버가 10~19번 사이의 등번호를 선호하며 그 이유는 낮은 번호가 높은 번호보다 더 빠르고 날렵한 느낌을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미국 내셔널풋볼리그(NFL) 규정상 와이드 리시버는 80~89번 사이의 등번호를 달았지만 2004년 낮은 등번호를 선택할 수 있도록 허용됐다. 2019년 기준 80% 이상의 와이드 리시버가 10~19번 사이의 등번호를 붙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에도 선수들이 낮은 등번호를 선호한다는 사실이 확인된 적은 많지만 신경과학적으로 그 이유에 관해 분석한 연구는 없었다.
연구팀은 미식축구 선수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신체 조건이 똑같은 사람들이 등번호 10~19번을 단 유니폼을 입은 사진과 80~89번 유니폼을 입은 사진을 보여 주고 날렵하고 빨라 보이는 사람을 선택하도록 했다. 그 결과 ESPN의 조사처럼 10~19번을 달고 있는 선수들이 날렵해 보인다는 답이 압도적이었다.
연구팀은 신체 조건과 피부색, 유니폼 색깔은 달리하고 같은 자세를 취한 선수들의 이미지(이모티콘)를 보여 준 뒤 날렵해 보이는 이미지를 선택하는 온라인 실험을 했다. 대신 연구팀은 똑같은 이미지에 등번호만 높은 숫자, 낮은 숫자로 바꿔 가면서 노출했다.
그 결과 등번호가 10~19번인 선수가 신체 조건, 피부색, 유니폼 색깔과 관계없이 등번호가 80~89번인 선수보다 더 재빨라 보인다고 인식했다.
이에 연구팀은 숫자 8이 1보다 넓어 유니폼에서 차지하는 공간이 더 크기 때문에 선수가 더 크고 둔해 보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다른 실험을 했다. 17과 71, 18과 81, 19와 91 등 같은 숫자를 사용하되 어떤 숫자가 먼저 오는지에만 변화를 주고 판단하도록 했다. 이 실험에서도 참가자들은 숫자가 낮은 선수들이 훨씬 날렵해 보인다고 답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 결과 신체 조건이나 운동 능력을 판단할 때 뇌가 기존에 숫자와 물체 크기 속성 사이에 학습된 성질에 의존한다고 설명했다. 즉 숫자가 큰 것이 물체 크기 속성도 더 크다고 인식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연구를 이끈 라단 샴스 UCLA 교수(인지신경과학)는 “이번 연구 결과는 인지편향이 사람이나 사회집단에 관한 판단과 결정,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 준다”며 “어떤 집단이 부정적 특성과 자주 연관되면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간에 그 같은 편향적 사고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2023-09-07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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