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SF 발전 늦은 것은 ‘과학소설-공상과학소설’ 용어 논쟁 때문”

“한국 SF 발전 늦은 것은 ‘과학소설-공상과학소설’ 용어 논쟁 때문”

유용하 기자
유용하 기자
입력 2023-05-23 11:20
수정 2023-05-23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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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12월호 ‘학생과학’에는 ‘남대문 상공에 원자폭탄이 떨어진다면’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원자폭탄의 공포는 전 인류에 트라우마로 남아 이후에도 계속 상상으로 재현돼 과학소설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국립중앙도서관/소명출판 제공
1966년 12월호 ‘학생과학’에는 ‘남대문 상공에 원자폭탄이 떨어진다면’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원자폭탄의 공포는 전 인류에 트라우마로 남아 이후에도 계속 상상으로 재현돼 과학소설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국립중앙도서관/소명출판 제공
“문단의 리얼리즘 전통이 강한 국내에서 SF는 정착하기 쉽지 않았다. 또 1960년대 이후 ‘과학소설과 공상과학소설’ 용어를 둘러싼 대립과 논쟁의 틈바구니에서 SF의 발달이 지연됐다.”

최애순 계명대 교수는 최근 내놓은 ‘한국 과학소설사’(소명출판)라는 학술서에서 이렇게 밝혔다. ‘한국 SF의 엉뚱한 상상의 계보’는 지난해 발간한 ‘공상과학의 재발견’이라는 학술서의 쌍둥이이다. 최 교수는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까지 흔히 장르문학으로 부르는 영역의 계보를 추적하는 작업을 오랫동안 하는 학자이다. 2011년에는 식민지 조선에서 탐정소설사를 추적한 ‘조선의 탐정을 탐정하다’라는 연구 학술서를 내놓기도 했다. 순수문학이 아닌 추리소설이나 SF 같은 장르문학에 관심을 갖는 이유에 대해 최 교수는 “장르문학과 본격문학의 경계, 대중 장르의 초창기 유입과 정착 과정, 한국적 장르나 코드의 발달을 살펴보면 그 시대의 사회문화사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1907년 쥘 베른의 ‘해저여행기담’ 번역으로 한국 과학소설의 역사는 시작됐으며 이후 한국 SF의 시효로 알려져 있으며 똥으로 식량을 만든다는 상상력을 발휘한 김동인의 1929년작 ‘K박사의 연구’를 탄생시켰고 1930년대 잡지 ‘과학조선’ 창간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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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가 과학소설에 공상이 더해진 공상과학소설, 아동청소년이나 읽는 장르로 취급받아 한국 SF 발전이 더뎠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한낙원 같은 과학소설가가 SF 명맥을 이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소명출판 제공
SF가 과학소설에 공상이 더해진 공상과학소설, 아동청소년이나 읽는 장르로 취급받아 한국 SF 발전이 더뎠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한낙원 같은 과학소설가가 SF 명맥을 이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소명출판 제공
그러나 195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과학소설은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상상력이 더 많이 포함된 아동청소년 과학소설을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몰아붙이는 본격문학과의 대립 논쟁에 빠지면서 SF의 수난 시대가 시작됐다. 과학소설이 공상이 더해진 아동청소년문학으로 취급받는 중에도 명맥이 끊기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한낙원, 오민영 같은 과학소설가와 청소년 잡지 ‘학원’과 청소년 전문 과학잡지 ‘학생과학’ 덕분이라는 평가이다.

2020년대 한국 SF 전성시대로 넘어오기 직전 1990~2010년대에는 SF에서도 하위 장르인 대체 역사소설이 빈자리를 메우고 당당한 하나의 장르로 성장했다. 이는 1987년 문학과지성사를 통해 발표된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가 시발점이다. 복거일은 본격 문단과 대중문학 과학소설의 교집합을 대체역사에서 찾은 것이라고 최 교수는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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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009 로스트 메모리즈’(2002)는 복거일의 대체역사 소설 ‘비명을 찾아서’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 의사에 의해 저격당하지 않고 살았다는 가상의 역사를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대체역사 소설은 SF의 하위 장르이지만 한국에서는 1990~2010년대까지 유행을 했다.  다음영화 제공
영화 ‘2009 로스트 메모리즈’(2002)는 복거일의 대체역사 소설 ‘비명을 찾아서’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 의사에 의해 저격당하지 않고 살았다는 가상의 역사를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대체역사 소설은 SF의 하위 장르이지만 한국에서는 1990~2010년대까지 유행을 했다.

다음영화 제공
한편 최 교수는 2010년대까지도 SF가 대중에게 관심을 얻지 못한 것은 등장인물들이 우리 곁에서 만날 수 있는 이웃이 아닌 낯설고 생소해서 불편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또 디스토피아든 유토피아든 미래를 다루는 SF에서 정작 미래 세대인 아동청소년을 만나기 쉽지 않다는 점도 한국 SF의 아쉬운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2020년대 전후로 등장한 김초엽, 천선란, 정세랑, 김준녕 등을 중심으로 아동청소년 인물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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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근대한국학총서로 발간된 최애순 교수의 ‘한국 과학소설사’(소명출판)
연세근대한국학총서로 발간된 최애순 교수의 ‘한국 과학소설사’(소명출판)
최 교수는 SF가 연구자나 마니아들만 읽는 장르라는 선입견을 넘어서 더 널리 읽히기 위해서는 ‘재미’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외국 SF는 미래 세계를 상상하는 데 주력하며 가벼워져 즐기고 있다면 한국 SF는 즐기기보다 문제의식이나 미래 사회 대안을 찾는데 지나치게 집중하고 있다”라며 “한국 SF가 미래 세대에 관심을 기울이고 문제의식의 무게를 재미와 유희 쪽으로 살짝 기울일 준비가 돼 있다면 미래 확장적 K-SF로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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