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전 국가유공자 이건우씨가 수원보훈원 내 자신의 거주지에서 TV를 시청하는 모습. 명종원기자
“30여년 전 가족들과 생이별 하고는 줄곧 혼자였지…. 그나마 보훈원에 들어오면서 취미도 생기고 사람답게 삽니다.”
15일 경기 수원시 장안구 소재 보훈원에서 만난 이건우(80·사진)씨의 이번 추석 연휴는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이던 수년 전의 명절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가족이 없어 홀몸인 그는 매년 ‘조용한’ 명절을 보내고 있다. 손주들로 북적이는 여느 가족들을 보면 내심 부럽지만, 과거 가족들을 제 손으로 떠나보냈던 그는 스스로 ‘과분한 욕심’이라 여긴다.
그는 10년 전 전국에서 유일한 보훈가족 거주시설인 수원보훈원에 들어오면서 그나마 사람들과 섞여 살고 있다는 데 위안 삼고 있다. TV와 컴퓨터, 침대 하나씩 놓으면 꽉차는 열평남짓 단칸방은 어느 새 그의 안식처가 됐다.
이씨는 20대 대학시절 학비를 벌기 위해 1967년 베트남 전쟁에 맹호부대 소속으로 참전했다가 약 1년 만인 1968년 총상을 입고 귀국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관통상 외 부상 정도가 크지 않았지만, 고엽제 후유증으로 심장질환에 걸려 2012년 국가유공자(전상군경 6급 2항)로 인정됐다.
생계를 위해 전쟁에 나설만큼 치열한 젊은 시절을 보냈지만 현재 이씨는 부양 받을 가족이 없는 ‘무의탁’ 보훈가족이다.
24세 청년이던 이씨는 전쟁에서 부상으로 급하게 귀국한 뒤 허겁지겁 학교를 마치고, 번듯한 대형 건설사에 취직했다고 한다.
1970년대 중동 건설붐이 일며 회사와 함께 성장한 이씨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중산층의 풍요를 느꼈다. 늦깎이 나이였지만, 35세엔 사랑하는 아내와 결혼도 해 이듬해 아들을 낳았다.
수원보훈원 내에 있는 서우회 작업실에서 촬영한 이건우씨 모습. 명종원 기자
끝없이 ‘승승장구’ 할 것 같았던 인생에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말부터였다. 20년가량 샐러리맨으로 살아온 그는 개인사업에 도전했지만, 크게 실패해 그동안 모아온 재산을 모두 날렸다.
재산을 모두 잃은 처지에 처자식만은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자식에게 밥한끼도 먹이기 쉽지 않았던 그는 급기야 미국에 살던 친척에게 아내와 아들을 맡기기로 마음먹는다. 그렇게 1989년의 어느 날, 이씨는 열살짜리 아들과 아내와 이별했다. 결혼 생활 11년 만의 일이다.
악착같이 일해 가족을 다시 데려오겠다며 그가 향한 곳은 건설붐이 일던 사우디아라비아였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얼마 일하지 못하고 정리해고를 맞아 가족과는 그야말로 ‘생이별’을 하게 됐다. 설상가상으로 그 무렵 부모 모두 돌아가시면서 50대에 접어든 이씨 곁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30여년째 홀로 살고 있는 이씨는 지난 5월 생사조차 알 수 없는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과 죄스러움을 담아낸 편지를 써뒀다.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으로 시작하는 편지에는 아들에 대한 미안함과 지난 날의 후회가 가득했다. 이제 이씨에게는 가족 얼굴을 한번이라도 보는 게 한평생의 꿈으로 남아버렸다.
그래도 요새는 제법 ‘사람답게’ 산다고 이씨는 헛헛하게 말했다. 이씨는 “재산도 없고 가족도 없는 나를 국가유공자라고 보훈원에서 받아줘 이제는 나름 취미활동도 하면서 여생을 지낸다”고 했다.
그는 보훈원 내 서예 동호회인 ‘보훈서우회’ 회장을 10년째 맡고 있다. 매년 보훈의 달인 6월이면 지역에서 10여명의 회원들과 서예 전시도 연다. “매일 아침 일어나 2~3시간씩 서예 연습하는 게 유일한 낙”이라며 “힘 닿을 때까지 계속 해나가고 싶다”는 게 이씨의 바람이다.
수원보훈원은 부양의무자와 거주지가 없는 보훈가족에게 무상으로 거주공간을 제공하는 전국 유일의 ‘보훈 쉼터’이다. 이날 현재 보훈원 양로시설의 경우 정원 126실 중 105실(83%)이 차있고, 아파트형 복지타운에는 452세대(8평형 240, 13평형 212) 중 344세대(76%)가 차있어 여유분이 있다.
보훈원 관계자는 “양로시설의 경우 국가유공자 본인 및 유족이면서 부양의무자가 없는 분이면 들어올 수 있고 복지타운은 무주택자 성인인 유공자라면 들어올 수 있다”며 “마땅한 거주지가 없어 도움이 절실한 국가유공자분이라면 보훈원을 찾으시면 된다”고 말했다.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