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범죄 날로 흉포화” 이 말은 사실일까…30년간 기사 봤더니 [소년범-죄의 기록]

“소년범죄 날로 흉포화” 이 말은 사실일까…30년간 기사 봤더니 [소년범-죄의 기록]

입력 2020-11-01 15:46
수정 2020-11-01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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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평범한 소년은 어떻게 범죄자가 됐나

※ 서울신문의 ‘소년범-죄의 기록’ 기획기사는 소년범들의 이야기를 풀어낸 [인터랙티브형 기사]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거나 URL에 복사해 붙여 넣어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seoul.co.kr/SpecialEdition/youngOffender/
일러스트 김용오
일러스트 김용오
“소년범들의 범죄가 날로 흉포해지고 있다. 어쩌다가 10대 청소년들의 성행이 이 지경에까지 왔는가.” (1990년 1월 신문 사설)

소년범죄는 언론이 선호하는 단골 메뉴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잔혹하거나 충격적인 범죄에서 10대가 가해자로 드러나면 언론은 너나없이 소년범죄가 갈수록 흉포화·지능화된다고 지적했다.

통계가 보여주는 현실은 다르다. 소년 범죄자 수는 매년 급감하고 있다. 통계청과 대검찰청에 따르면 소년사범은 2010년 10만 4998명이었지만, 2018년 기준 6만 6142명(14~18세)으로 37.0% 줄었다. 2018년 전체 범죄자(173만 8000명) 가운데 소년범은 3.8%에 불과하다. 이 비율 역시 10년째 3~5%대에 머물고 있다. 청소년 인구가 줄고 있음을 감안하더라도 소년범죄가 더 심각해졌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뜻이다.

서울신문은 통계만으로 알기 어려운 범죄의 흐름을 살피기 위해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이은주 교수 연구팀과 함께 1990년부터 올해까지 소년범죄를 다룬 언론 기사 1만 1864건의 제목(헤드라인)을 분석했다. 소년범죄 보도 기사를 양적·질적으로 분석하는 첫 시도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에서 ‘소년’, ‘10대’, ‘범죄’, ‘검거’, ‘재판’ 등 검색어로 나온 헤드라인을 취합하고, 빈도수가 두드러진 단어를 추렸다. 그 결과 소년범죄는 시대에 따라 질적으로 다른 양상을 보였다. 폭행은 끊임없이 발생하지만, 전자기기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발달에 따라 현장을 생중계 한다거나, 과거 횡행했던 빈집털이 대신 온라인 중고거래 사기가 급증한 식이다.
어른들이 ‘악마’라 부르는, 소년범이라는 가면 뒤 숨겨진 진짜 아이들의 모습은 무엇일까. 서울신문은 이들의 진짜 얼굴을 들여다 봤다. 사진은 6호 보호처분 시설인 나사로 청소년의 집 협조를 받았다. 오장환 기자 5zzang@seoul.co.kr
어른들이 ‘악마’라 부르는, 소년범이라는 가면 뒤 숨겨진 진짜 아이들의 모습은 무엇일까. 서울신문은 이들의 진짜 얼굴을 들여다 봤다. 사진은 6호 보호처분 시설인 나사로 청소년의 집 협조를 받았다. 오장환 기자 5zzang@seoul.co.kr
‘집단’으로 ‘절도’하는 소년범시대를 초월한 공통점은 있었다. ‘집단’, ‘금품’, ‘절도’, ‘오토바이’, ‘차량’ 등의 단어는 모든 시기에 두드러졌다. 이 중 ‘집단’은 성인과 구분되는 소년범죄의 가장 특이한 속성이다. 대검 통계에 따르면 2018년도 소년범죄자 중 공범이 있는 비율은 41.7%로 같은 해 전체 범죄자의 공범률(5.7%)과 비교해 7배 이상 높았다.

통계청 ‘2019 한국의 사회동향’은 “청소년 형법범죄자는 공범과 함께 범죄를 저지른 경우가 많아서 국민이 느끼기에 거칠고 사납게, 흉포화되어간다고 느끼는 것 같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금품’, ‘오토바이’ 등은 소년범죄의 절반을 차지하는 절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키워드다. 언론에 많이 노출돼 국민적 공분을 사는 건 자극적인 강력 사건이지만, 실제 대부분 소년범죄는 재산범죄에 집중돼 있다.

소년범죄의 특징적 양상은 10년 주기를 두고 바뀌는 경향이 확인됐다. 1990년대는 ‘본드흡입’과 ‘환각’, ‘조직 폭력배’, ‘폭주족’ 등이 사회 문제로 드러났다면 2000년대 들어 ‘인터넷’, ‘판매’, ‘채팅’, ‘게임’ 등에 기반을 둔 범죄 기사가 늘었다. 2010년대 이후 눈에 띄는 건 ‘성매매’, ‘스마트폰’, ‘만남’ 등의 단어다.

지존파 등 각종 폭력 단체가 활개를 치던 1990년대에는 소년범죄에서도 조직 폭력이 눈에 띈다. 유명한 몇몇 조직에 중고등학생이 끼면서 청소년이 성인 범죄를 모방하고, 조직 강령까지 만들어 후배들을 교육한다는 기사가 많았다.
1994년 검거된 지존파. 서울신문 DB
1994년 검거된 지존파. 서울신문 DB
인터넷 발달 영향 사이버 범죄 늘어인터넷이 대중화된 2000년대 들어서는 ‘화이트 바이러스’, ‘까마귀’ 등 컴퓨터 바이러스를 만들어 유포한 10대 해커가 잇따라 붙잡히는 등 사이버범죄가 두드러졌다. 2007년에는 체벌카페(서로 때려줄 사람을 모집하는 음란 온라인 카페)나 사이버 앵벌이 사기단이 등장하기도 했다.

폭탄이나 석궁 만드는 법, 열쇠 없이 차 시동 거는 법을 온라인에 검색해 범죄수법을 습득하는 예도 있었다. 온라인 기반 소년 범죄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범죄가 어른들의 눈이 닿지 않는 SNS에서 은밀히 이뤄지고, ‘폭행 인증’ 영상이 유흥거리가 돼 2·3차 가해로 번지는 경우도 많다.

인터넷과 각종 채팅 애플리케이션의 발달은 마약 구매·복용에도 영향을 미쳤다. 1990년 형사정책연구원의 청소년 약물복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당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 건 본드 흡입(87.4%)과 가스 흡입(56.1%)이었다. 온라인 마약 거래가 수월해진 지금은 대마쿠키, 대마젤리 등 신종 마약류 복용이 늘고 있다. 지난해 검찰이 적발한 마약류 사범은 역대 최다인 1만 6044명이었는데, 이 중 청소년은 239명이었다. 불법 도박이나 중고거래 사기도 온라인 접근성이 개선되면서 생긴 변화다.
2017년 부산 여중생 성폭행 사건. 서울신문 DB
2017년 부산 여중생 성폭행 사건. 서울신문 DB
2010년대 소년범죄의 특징은 성매매, 성폭행 등 성 관련 범죄다. 성폭행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최근 몇 년간 전체 소년범죄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져 언론 보도에도 영향을 줬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을 소년만의 문제로 축소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 사회 전반에서 성범죄 발생 빈도가 늘고, 수법이 진화하는 흐름 속에서 소년범죄도 이와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유진 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소년범죄는 시대를 막론하고 있었고 요즘 특별히 심해졌다고 보기 어려운데도 스마트폰을 통해 사건이 대중에게 확산하면서 범죄도 늘어났다는 오해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오히려 최근 높아지는 소년범의 재범률에 주목해 현재 보호처분 제도가 이들을 제대로 교화하고 있는지부터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진선민 기자 jsm@seoul.co.kr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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