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은 김 위원장이 전날 평양 서장회관에서 진행된 고인의 발인식을 지켜보며 “우리 당의 참된 충신, 견실한 혁명가, 저명한 정치활동가를 잃은 크나큰 상실의 아픔을 금치 못했다”고 전했다.
직접 ‘국가장의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고인의 국장(國葬)을 지휘한 김 위원장은 발인식에 이어 신미리애국열사릉에서 거행한 영결식에도 참석해 고인이 잠든 관 위에 손수 흙을 얹었다.
김 위원장은 “김기남 동지와 같은 혁명의 원로들이 있어 역사의 풍파 속에서도 주체혁명 위업을 줄기차게 전진시켜올 수 있었다”며 “노혁명가가 지녔던 고결한 풍모는 충성과 애국으로 빛나는 삶의 본보기”라고 말했다.
조선인민군 명예의장대가 늘어선 채 진행한 영결식에서는 고인을 기리며 조총 180발이 발사됐고, 고인이 당에 60여년간 몸담으며 세운 업적을 기리는 애도사를 리일환 당 중앙위원회 비서가 낭독했다.
발인식과 영결식에는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덕훈 내각총리, 조용원 당 조직비서, 리병철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등 당 고위급 인사들과 간부들이 대거 참석했다.
장지로 이동할 때는 고인의 대형 영정 사진을 지붕에 실은 벤츠 차량이 운구행렬을 선두에서 이끌었고, 벤츠 S클래스를 개조한 리무진 장의차와 버스가 그 뒤를 따랐다.
조선중앙통신은 운구행렬이 시내를 지나갈 때 주민들이 인도에 일렬로 서서 묵념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도 발행했다.
노환과 다장기기능부전으로 병상에서 치료받아오다 숨진 고인은 1956년 당 중앙위원회에 처음 발을 들인 이래로 60여년에 걸쳐 노동당 사상 건설과 영도력 강화에 힘썼다.
김일성종합대학 학부장, 노동신문 책임주필 등을 역임하고 당 선전선동부 부장에 이어 선전 담당 비서를 지내 나치 독일의 선전장관이었던 요제프 괴벨스에 비견되며, 김씨 일가의 3대 세습 정당성 확보와 우상화에 앞장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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