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 정착한 탈북외교관들

대한민국에 정착한 탈북외교관들

서유미 기자
서유미 기자
입력 2020-10-06 23:10
수정 2020-10-07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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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체제 이후 대사급 처음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국제담당비서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국제담당비서
북한 고위급 인사의 탈북은 1990년대 초 구소련 붕괴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소련 해체로 사회주의 체제의 안정성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된 데다 식량난과 에너지난, 경제난 등이 겹친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를 보내면서 탈북이 줄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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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북한 외교관 탈북 사례
역대 북한 외교관 탈북 사례
1994년 탈북한 조명철 김일성대 박사와 3년 뒤 귀순한 황장엽 전 노동당 국제담당비서의 탈북이 대표적인 예다. 북한 최고 대학인 김일성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조 박사는 1994년 귀순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핵무기 보유 사실을 알려 파장을 일으켰다. 이후 그는 19대 국회에서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당선돼 탈북인 의원 1호로 활동했다.

황 전 비서의 탈북 소식은 한반도 주변 정세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김일성 유일통치체제의 핵심인 ‘주체사상’의 설계자이자 조선 최고인민회의 의장까지 지낸 지도급 인사가 탈북하자 국제사회의 시선이 모두 그에게 쏠렸다. 당시 그는 탈북 이유에 대해 “조국의 체제에 의분을 느껴 변혁을 도모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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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호 국민의힘 의원. 연합뉴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
연합뉴스
북한 고위급 탈북민 중에는 2016년 주영국 북한 공사로 근무하다 탈북한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과 이번에 귀순이 확인된 조성길 전 주이탈리아 북한 대사대리처럼 외교관들의 사례가 많은 편이다. 외국 생활을 오래한 탓에 북한의 실체를 잘 알고 있으며 탈북 기회도 상대적으로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외교관의 탈북을 막기 위해 자녀는 평양에 두고 부부만 출국하게 하는 등 다양한 방지 장치를 마련해 뒀지만 탈북을 근절하진 못했다.

대표적으로 1991년 고영환 주콩고 북한대사관 1등 서기관, 1996년 현성일 주잠비아 북한대사관 서기관, 1997년 장승길 주이집트 북한 대사, 2000년 홍순경 주태국 대사관 과학기술참사관 등의 탈북 사례가 있다.

이 외에도 정부가 공식 확인을 하지는 않았지만 중앙부처 고위급 인사를 비롯해 정찰총국 등 다양한 북한 기관 소속의 간부들이 다수 국내에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2020-10-07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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