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역적’ 北시장화, 비핵화 행보로 이어지나

‘불가역적’ 北시장화, 비핵화 행보로 이어지나

김태이 기자
입력 2018-04-23 16:08
수정 2018-04-23 16:08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상품·부동산·노동도 시장서 거래…“北, 무늬만 사회주의”

북한 경제의 대세로 자리 잡은 시장경제 시스템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비핵화 결심으로 이끌지 주목된다.

국제사회의 제재 속에서도 북한이 2016년 최고의 경제성장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북한식 시장경제적 조치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한국은행은 2016년도 북한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전년 대비 3.9%로 증가하며 17년 만에 최고로 성장한 것으로 분석했다. 당해년도 남한의 경제성장률 2.8%보다도 높았다.

이런 경제성장의 배경에는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 경제를 지배한 시장의 힘과 이를 부분 수용하고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으로 합법화한 김정은 정권의 노력의 산물이라는 게 북한 전문가들의 평가다.

◇ 북한 경제 지배하는 시장의 힘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시기 국가 배급체계가 완전히 붕괴하면서 급증한 장마당은 오늘날 북한 경제의 중심축인 시장의 원형이다.

북한의 시장은 단순히 먹거리와 생필품만 사고팔던 전통적 개념의 ‘장마당’에서 벗어나 ‘종합시장’이라는 이름하에 당국이 운영하는 관리소가 설치되고 단속과 자릿세 징수 등을 맡은 관리들이 배치됐다.

시장을 양성화하되 질서를 유지하고 시장 상행위에 대한 징세를 통해 국가재정을 확충하는 방향으로 가는 모양새다. 수요와 공급의 원칙이 지배하는 ‘시장경제적 공간’으로 성격이 강해지고 있다.

평양 도심의 통일거리 종합시장과 평양 인근의 평성시장, 황해남도 해주의 동해주시장, 평안북도 사리원의 구천시장, 함경북도의 회령시장 등 대규모 ‘종합시장’이 조성됐다.

국가정보원은 작년 2월 국회 정보위 보고에서 북한의 종합시장이 439개로 시장화 정도가 40% 정도 돼 헝가리, 폴란드 등의 체제전환 직전과 유사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북한의 시장화는 종합시장을 넘어 부동산과 노동력, 자본 등을 거래하는 단계로까지 진화하고 있다.

북한에서 주택은 원래 국가가 지어 주민에게 장기임대 형태로 무상으로 임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현재는 돈을 주고 사는 게 일반적이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2014년 탈북자 설문조사에서도 돈을 주고 주택을 산 경우가 66.9%로 국가에서 집을 배정받은 경우(14.3%)의 4.7배에 달했다.

주택 거래가 활성화되면서 ‘주택사용료’ 징수를 담당하던 지역 및 기업소 주택지도원들이 부동산 중개인으로 활약하며 중개료를 챙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 공공기관과 개인이 건물이나 주택을 보수할 때에는 건설노동자나 미장공 목수 등을 일당을 주고 모집하는가 하면 농촌에서도 바쁜 농사철에는 곡물을 보수로 지급하고 일꾼을 고용하는 게 일상화되면서 노동력 시장까지 만들어지고 있다.

정은이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부동산 시장의 경우 화폐유통량이 많아서 시장규모의 확대를 동반하고 아울러 소비재 시장에서 생산요소 시장으로의 발전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심지어 은행의 기본업무인 대출, 송금, 환전 등을 대행하는 사금융이 시장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다.

탈북자들에 따르면 사채를 종잣돈으로 상행위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데 사채는 연이율 50∼60%에 달하고 오토바이, 냉장고, 주택 등을 담보로 설정한다.

전국에 조직망을 갖춘 ‘돈주’(전주)들은 송금체계를 갖추고 지방의 수령에게 돈을 전달하고 수수료를 받거나 환전도 하는 등 사금융을 움직이는 북한판 재벌로 꼽힌다.

◇‘우리식 경제관리방법’ 핵심은 사회주의 기업책임관리제

김정은 위원장은 2014년 시장경제 요소를 한층 강화하고 적용범위를 확대한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의 확립’(5·30노작)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은 “국가의 계획적이며 통일적인 지도 밑에 사회주의 기업체들의 주동적이고 창발성인 활동을 보장함으로써 경제발전을 이루는 방식”으로 ‘사회주의 기업책임관리제’가 본질이다.

북한 입장을 대변하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사회주의 기업책임관리제에 대해 “기업이 독자적인 경영활동을 벌일 수 있도록 하고 사회주의 분배를 옳게 시행해 노동의욕을 높임으로써 기업에 일정한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해설했다.

이 조치에 따라 북한에서 기업과 협동농장의 잉여생산물 처분 권한이 커졌고 근로자의 실적에 따라 지급되는 인센티브 격차도 확대됐다.

기업들은 시장을 통해 원료를 사들여 생산하고 이를 다시 시장에 팔아 이윤을 확보한 뒤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지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농업분야에서는 협동농장 말단 단위를 기존 10∼15명에서 3∼5명으로 대폭 축소한 ‘포전담담제’, 사실상의 가족영농제로 이행해 농민들의 근로의욕을 고취하고 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을 분석해 보면 협동농장의 분배몫과 수매몫 비율이 종전의 5대 5에서 2대 1로 바뀌었다.

중국중앙(CC)TV는 2014년 6월 북한발 기사에서 포전담당제에서 국가에 바치고 남은 곡물·채소·과일을 농민 개인이 시장에 직접 내다 팔거나 시장가격으로 국가의 수매기구에 넘길 수 있다고 소개했다.

덩치가 큰 건설분야에서도 이익을 챙기는 시장경제방식이 작동한다.

고위층 출신 탈북자 이모 씨는 “김정은 정권이 집중하는 건설사업도 국가자금만으로 진행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며 “남한처럼 돈을 벌려는 기관·기업소나 개인들이 투자하고 시장가격으로 판매하는 것이 보편화 돼 있다”고 전했다.

그는 “재정이 부족한 북한 당국이 지분이나 수익금 배분 등 다양한 대가를 지불할 약속을 하고 투자를 받는 구조여서 이익이 남지 않으면 사업을 시작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돼 버렸다”며 “북한은 무늬만 사회주의일 뿐 수요와 공급, 이윤의 확보라는 시장경제 원리로 작동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출산'은 곧 '결혼'으로 이어져야 하는가
모델 문가비가 배우 정우성의 혼외자를 낳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회에 많은 충격을 안겼는데요. 이 두 사람은 앞으로도 결혼계획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출산’은 바로 ‘결혼’으로 이어져야한다는 공식에 대한 갑론을박도 온라인상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출산’은 곧 ‘결혼’이며 가정이 구성되어야 한다.
‘출산’이 꼭 결혼으로 이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