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불상의 실체
국립중앙박물관의 ‘한·일 국보 반가사유상의 만남’ 특별전이 지난 12일 끝났다. 국보 제78호 금동반가사유상과 나라현 주구지(中宮寺) 목조반가사유상은 이제 일본으로 자리를 옮긴다. 도쿄국립박물관의 ‘미소의 부처-두 점의 반가사유상’ 전은 오는 21일부터 2주일동안 열린다.국보 제78호 금동반가사유상(6세기 후반).
일본 주구지(中宮寺)의 목조반가사유상(7세기 후반). 금동사유상의 보관과 목조사유상의 머리 모양은 모두 우주의 대생명력을 상징하는 보주의 무한한 탄생 과정을 보여 준다.
국보 제95호 고려청자 칠보문뚜껑 향로. 강우방 원장은 ‘무량보주 향로’로 이름을 바꾸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원형 보주의 집적체가 연꽃 대좌 위에 자리잡고 있다. 무량보주를 부처로 바꾸면 곧 불상이다. 보주와 불상이 다르지 않은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아함경의 일화를 들려주었다. 부처가 죽림정사에 있을 때 임종을 앞둔 비구가 있었다. 부처가 달려오자 비구는 일어나 예배를 드리려 했고, 부처는 손을 잡아 자리에 누이고는 이렇게 말했다. “이 썩어질 몸을 보고 절해서 무얼 하겠느냐. 법(法)을 보는 자는 나를 보고 나를 보는 자는 법을 보리라.” 사실상의 불상불가론(佛像不可論)으로 해석할 수 있는 말씀이었다. 이런 가르침 때문에 불상이 만들어지자, 사람들은 부처의 말씀을 어겼다고 비난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왜 불상을 만들었을까.
강 원장은 조형예술의 본질은 보주(寶珠)에서 출발한다고 설명한다. 보주란 ‘우주에 가득찬 대(大)생명력’을 상징한다. 글자의 뜻은 ’보배로운 구슬’이지만, 원이나 공 모양은 물론 사각형이나 육면체도 있을 수 있다. 한마디로 고정된 형태가 없고 형태가 없을 수도 있다. 흔히 원이나 공 모양으로 표현한 것은 우주를 그렇게 인식한 데서 비롯됐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이 보이지 않는 ‘대생명력’을 해독하는 이론이 ‘영기화생론’이다. 우주에 충만한 신령스러운 기운(靈氣)이 생명을 생성하는 과정이다. 영기는 보이지 않지만 미술에서는 구체적인 무늬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이 영기문(靈氣文)이다. 화생은 ‘종교적인 신비한 탄생’을 의미한다. 영기문에서 만물이 탄생하고, 만물에서 다시 영기가 발산한다. 결국 보주와 영기문이란 보이지 않는 대생명력의 순환을 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미술적 장치다.
●대생명력 표현 방식, 기독교도 같아
흥미로운 것은 그리스·로마와 기독교 문명에서도 대생명력을 표현하는 방식이 거의 똑같다는 것이다. 아테네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의 주두(柱頭·Capital)와 로마 바티칸 미술관 천장에 그려진 체사레 네비아의 ‘미카엘 대천사’, 파리 노트르담 성당의 로제트창(窓)이 한결같이 영기화생을 표현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지난해 서울신문에 ‘세계의 조형예술 용(龍)으로 읽다’라는 시리즈로 10개월 남짓 이 같은 이론을 펼쳐 보였다.
무량보주(無量寶珠)도 이해해야 한다. 무량보주란 보주에서 생겨난 보주가 무한하게 확산해 우주에 가득 차는 모습을 상징한다. 고려불화의 명작인 일본 다이토쿠지(大德寺) 수월관음도에서 물방울 무늬처럼 보이는 무량보주를 확인할 수 있다. 흔히 ‘슈라바스티의 기적’이라고 알려진 조각도 석가모니가 천불화현(千佛化現)의 초능력을 보이는 장면이 아니라 부처의 모습을 한 대생명력이 무한하게 발산하는 장면이라는 것이다.
●불상, 끝없는 생명의 생성을 상징
그러니 불상의 부처는 부처가 아니고, 불상의 머리는 머리가 아니며, 불상의 의복도 의복이 아니다. 불상 대좌의 연꽃도 연꽃이 아니고, 여기저기의 당초문도 당초문이 아니다. 대생명력을 조형언어적으로 표현한 것을 사람들은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하려 드니 오류가 생긴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불상은 끝없는 생명의 생성을 상징하는 조형물이다.
강 원장은 이날 국보 제78호를 ‘일월식 사유상’이라 명명했던 과거 자신의 논문을 공식적으로 철회했다. 페르시아 사산조(朝)의 영향으로 해와 달을 장식한 것으로 보고 일월식(日月飾)이라 했지만, 보주의 무량한 발산이라는 사실을 최근에야 깨달았다는 것이다. 같은 차원에서 주구지 사유상의 두 갈래로 땋아 올려 둥글게 묶은 듯한 머리 모양도 머리가 아니라 새로운 대생명력의 발산이고, 머리카락이 어깨로 흘러내린 듯한 모습도 영기문의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강연은 사실상 반가사유상을 말하는 기회를 빌려 불상의 실체를 밝히는 자리였다고 할 수 있다. 강 원장은 결론적으로 “최초로 불상을 만든 위대한 장인은 석가모니가 아닌 법을 표현한 것이지만, 그러면서 석가모니의 가르침대로 ‘불상을 보는 것이 곧 법을 보는 것’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모든 불상의 원리가 그렇듯 반가사유상도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dcsuh@seoul.co.kr
2016-06-18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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