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이야기 40] 최종태의 성모마리아와 관세음보살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이야기 40] 최종태의 성모마리아와 관세음보살

서동철 기자
입력 2015-11-16 13:46
수정 2015-11-16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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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사 관음보살과 혜화동성당의 성모마리아
길상사 관음보살과 혜화동성당의 성모마리아
 지금 국립현대미술괄 과천관에서는 원로 조각가 최종태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83세 노(老)조각가의 인생 역정을 보여주는 200점 남짓한 작품이 두 개의 전시공간에 나뉘어 관람객을 맞고 있다.

 최종태의 화업(畵業) 60년은 ‘구도(求道)의 여정’으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우리 교회 조각을 현대 미술의 한 지류로 편입시키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인물이다. 그의 성상(聖像) 작업은 타성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던 한국 교회 조각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이정표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독실한 가톨릭 신앙을 가진 최종태의 작품은 전국 가톨릭 교회에 널리 퍼져 있다. 조금 과장하자면, 그의 작품이 없는 가톨릭 교회를 찾는 것이 오히려 빠를 지경이다. 그럼에도 최종태는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 관음보살상을 조성하는 파격을 보여주었다. 1997년 길상사 개산법회에 김수환 추기경을 초청하는 등 종교 사이의 벽을 허무는데 노력했던 법정 스님의 뜻에 화답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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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모상(국립현대미술관 사진)
구원의 모상(국립현대미술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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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과 아기 예수(국립현대미술관 사진)
요셉과 아기 예수(국립현대미술관 사진)
 가톨릭미술가협회장을 맡기도 했던 최종태는 호기심을 갖는 사람들에게 “땅에는 나라도, 종교도 따로따로 있지만 하늘로 가면 경계가 없다”고 했다. 관음상은 2000년 4월 설법전 앞에 봉안됐다. 여섯 개의 봉우리가 솟은 관을 쓰고 있는 관음보살상은 국보 제83호 삼산관반가사유상과 이미지가 비슷하다. 왼손에는 맑은 물이 담긴 정병(淨甁)을 들고 있고, 오른손은 아무 걱정 하지 말라는 뜻으로 손바닥을 펴든 시무외(施無畏)인을 짓고 있다. 이것말고는 불교미술의 전통을 따르지 않았음에도 불교적 분위기를 풍긴다.

 최종태가 길상사 관음보살상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면, 성북동 언덕에 오르기 앞서 혜화동로터리에 있는 천주교 혜화동성당을 찾아볼 일이다. 본당 계단 왼쪽에 장미넝쿨 너머로 최종태 특유의 소녀적 분위기가 풍기는 성모상이 보인다. 성모마리아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길상사 관음보살상의 상호(相好)와 쌍동이자매만큼이나 닮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종태는 “길상사 관음상의 이미지가 성모상의 연결선상에 있는 것은 심성의 참된 가치를 발견하는 불교의 견성(見性)이나,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느님의 나라가 모두 같은 울타리 안에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성모마리아가 되었건, 관음보살이 되었건 다른 것을 외향이지 본뜻은 별로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예술도 종교도 근원으로 가는 방편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최종태는 자신의 예술 인생에서 창작에 한계를 느꼈을 때 마다 삼산관사유상을 비롯한 삼국시대 불상들이 막혔던 길을 뚫어주는 역할을 했다고 회고한다. 그렇게 보면 최종태는 성모마리아의 이미지를 길상사 관음보살에 대입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삼국시대 불교조각의 이미지를 수십년동안이나 성모 조각에 응용해 자신의 작품세계를 완성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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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사람(국립현대미술관 사진)
생각하는 사람(국립현대미술관 사진)
 최종태 회고전이 흥미로운 것은 이렇듯 교회 미술가가와 불상을 만든 불모(佛母)의 경지를 두루 개척한 인물의 조각 세계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문대로 돌을 깎는 석공이 아닌 조각가로 이런 경험을 가진 사람은 최종태가 세계 역사상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회고전은 오는 29일까지 열린다.

 글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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