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호 교수가 찾은 문학의 순간] <25> ‘한국 시단의 극점’ 김언 시인
최근 김언 시인은 일곱 번째 시집 ‘백지에게’(2021)로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만의 스타일과 목소리가 어김없이 느껴지는 영락없는 ‘김언 브랜드’ 시집이다. 이번에도 그는 스스로의 스타일과 동일성을 견고하게 다지면서 자신의 사유와 언어의 연쇄적 파동이 여전히 매혹적임을 증명했다. 더불어 담백해지기까지 한 서정성이 얹혀 있어서 이 시집은 그의 스타일과 메시지가 온전하게 장착되고 심화돼 간 기념비가 되기에 족한 것 같다. 2018년 김언은 시집 두 권을 냈다. 문장 실험 성격이 강한 ‘한 문장’과 이야기성이 강한 ‘너의 알다가도 모를 마음’이다. ‘백지에게’는 이 시집들의 종합편처럼 느껴진다고 그는 말한다. “한 시기가 끝났다는 느낌을 주는 시집입니다. 그만큼 시의 다른 방향을 절실하게 고민해야 하는 과제를 남긴 시집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이제 김언은 그 세대를 대표하는 한국 시단의 극점으로 우뚝하다.일곱 번째 시집 ‘백지에게’(2021)로 올해 대산문학상을 수상한 김언 시인. 그는 단단하게 짜인 구문과 스타일을 통해 독자의 사유를 다성적으로 번져 가게 하는 특유의 에너지를 품고 있는 한국의 대표 시인이다.
김언은 1973년 부산 출생이다. 그는 초등학교를 재수했다고 했는데, 아이가 너무 작다는 이유로 입학을 거절당했다고 한다. 그는 그래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고 한다. 부모님은 생계로 바쁘셨고, 여동생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나 혼자 놀고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다. 장기도 혼자 두고, 야구도 벽과 함께 했다고 한다. 그의 말대로 자문자답의 시가 많은 것도 유년 시절에 비밀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 작은 아이는 어떻게 시단의 ‘거인’이 될 수 있었을까. “중학교 시절 교내 도서관 벽에 액자로 걸려 있던 윤동주의 ‘서시’를 우연히 보고서 잠시 다른 세계로 건너간 듯한 느낌이 들었을 때가 처음으로 시적 체험을 했던 순간인 것 같아요.”
그에게 부산은 어떤 곳이었을까. “고향이고 그래서 저의 뿌리를 이루는 곳입니다. 다만 뿌리이기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줄기와 가지처럼 더 멀리 멀어지고 싶다는 생각으로, 계속 돌아보면서 떠나오게 만드는 곳입니다.” 공사장 옆에서 인부들에게 밥과 술을 파는 곳이 부모님의 직장이자 그의 집이었다. “어렸을 때 살던 동네 이름이 사상(砂上)이었어요. 모래 위에 세워졌다는 이름 탓인지 아주 오래전 기억인데도 모래와 먼지부터 떠올라요.”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거기서 모래바람을 따라 흘러 다니던 유년의 기억은 지금도 시인에게 어떤 아스라한 고독과 허무를 연기처럼 선사한다. 그는 어느 글에서 ‘체인스모커’임을 고백한 적이 있는데, 아닌 게 아니라 담배 연기는 그에게 수많은 서정적 비유와 서사적 계기를 주었던 것 같다. “담배 연기는 제 글의 토대와 꼭대기를 동시에 점령하고 있어요. 결코 쓰지 못했을 글, 피어오르지도 못했을 생각이 연기에 실려 있던 순간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렇게 고독과 운무 속에서 막막한 글쓰기의 공중을 건너올 수 있었을 것이다.
김언 시인이 지난해 프로젝트 그룹 ‘에코앤더머신’과 함께한 행사에서 시를 낭독하고 있다.
그는 부산대 공대를 다녔지만 스스로 맞지 않는 곳이라고 느끼고 국문과에 학사 편입해 졸업했다. 그러던 중 1998년 겨울 ‘시와 사상’으로 등단했다. 첫 시집 ‘숨쉬는 무덤’은 2003년 1월에 나왔는데 그의 삶이 꼭 30년을 채우던 어느 날이었다. 그해 여름부터 7개월간은 김해의 김참 시인 아파트에서 머물렀는데, 동갑내기 ‘참과 언’은 그렇게 서른 살 무렵 ‘진짜 말’을 함께 가다듬었을 것이다. 다시 부산으로 돌아와 비평 전문지 ‘오늘의 문예비평’ 편집장을 지낸 김언은 거기서 한국문학보다는 외국문학에 더 끌리는 체험을 했다고 한다. 2005년 두 번째 시집 ‘거인’을 냈고, 2008년 서울에 정착한 후에 명지대 대학원 문예창작과에서 공부를 시작했고, 이듬해 세 번째 시집 ‘소설을 쓰자’를 냈다. 소설을 쓰자고? 시는 안 쓰고?
그는 어느 자리에서 “시는 ‘시가 아니었던 것이 시가 돼 가는 역사’이고 ‘시였던 것이 시가 아니 돼 가는 역사’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1인칭 양식이라고 규정되던 시를 넘어서는 ‘바깥의 언어’를 꿈꾸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첫 시집의 “내가 기억하는 것만 기억하는 말들이 있고/기억보다 앞질러서 가는 말들이 있고”(‘말들’), 두 번째 시집의 “다른 문장일 것”(‘시집’)이라는 표현으로 보아도 그는 “있어도 상관없고 없어도 상관없는 중요한 문장을 쓸 것”(‘소설을 쓰자’)을 상상하고 실현해간 시인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다른 문장’의 욕망이 ‘소설을 쓰자’는 비유적 청유형을 만들어 낸 것이다.
김 시인이 지난여름 기형도문학관에서 시 창작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8월 한국문학번역원이 마련한 교차언어 낭독회 ‘역:시’를 마치고 함께한 박하나(왼쪽부터), 이르마 시안자 힐 아네스 번역가, 김 시인, 시집서점 위트앤시니컬 대표 유희경 시인.
김언의 시는 미세한 변주가 있기는 하지만 비교적 일관성이 있다는 평가를 많이 받는다. 변화를 줄 생각이 없느냐고 묻자 “변하고 싶다. 내 시에 대해 누구보다 먼저 제가 염증을 느끼고 있다. 관성 때문에 쉽지는 않겠지만, 변하지 않으면 계속 쓸 수 없을 거라는 위기감이 든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제 오십을 바라보는 이 중견시인은 아래 세대들의 시를 어떤 느낌으로 읽고 있을까. “미학적 감수성이든 윤리적 감수성이든 감수성이 달라졌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새로운 감수성에는 일단 눈과 귀를 최대한 열어 놓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는 좋은 시를 만들어 내는 솜씨에 탄복하면서도 염려하는 시선도 함께 가지고 있다. 기술적으로 너무 빨리 좋은 시에 도달한 시보다는 서투르더라도 숙성의 단계를 충분히 거치고 있는 듯한 시를 더 반가워한다고 선배 세대로서의 조언을 잊지 않는다.
이제 우리가 서정 장르라고 굳세게 믿었던 ‘시’도 많이 바뀌어 가는 것 같다. 시를 쓰고 읽고 유통하는 방식은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까. “흔하디흔한 공산품, 가령 인공지능이 만들어 내는 시의 길과 상품적 가치와 무관한 무형문화재의 길, 이 둘 중 하나가 되거나 아니면 둘 다가 될 수도 있겠다는 짐작을 합니다.” 그의 말에는 꼼꼼함과 재미남이 넘쳐 흐른다. 시집만 읽은 사람은 잘 모를 것 같다. 하기는 “남자들끼리도 긴 전화 통화가 가능한 것은 형이 말을 참 재미있게 잘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정재학 시인의 증언이 있기도 하다.
지난달 서울 종로 독립서점 ‘더북소사이어티’에서 열린 ‘종로, 시로 소문난다’ 행사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김언(왼쪽부터) 시인, 이수명 시인, 임경용 더북소사이어티 대표.
20년 넘게 인연을 이어 온 김 시인과 친구들. 서울 약수동에서 자주 모여 자칭 ‘약수파’로 불린다. 왼쪽부터 정재학, 이재훈, 이현승, 김언, 오은 시인.
한국 시를 충실하게 읽어 온 독자라면 최근 김언이 꽤 다작의 양상을 보여 주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김언의 시는 여전히 의미론적 환원을 한사코 거절하는 난해성을 함축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단단하게 짜인 구문과 스타일을 통해 독자의 사유를 다성적으로 번져 가게 하는 특유의 에너지를 품고 있는 한국의 대표 시인이다. 단호한 변화를 제일의 목표로 삼고 있다는 그를 마주하면서, 나는 소소한 일상과 내면 고백이 점증한 이번 시집이 그 변화의 시점이 될 것이라고 천천히 생각해 본다. 서정적 순간성을 여러 곳에서 비쳐 준 이번 시집을 넘어 그가 “백지에서 나오는 말들. 백지에서 나와 백지로 돌아가기를 거부하는 말들. 도무지 백지가 될 수 없는 말들”을 하염없이 새겨 가기를 마음 깊이 바란다. 첫눈 예보가 서울 창공을 올려다보게 한 어느 초겨울 날이었다.
문학평론가·한양대 교수
2021-12-2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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