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필리핀 언론인 마리아 레사
올해 노벨평화상을 받은 필리핀 언론인 마리아 레사가 9일(현지시간) 필리핀 타기그의 한 식당에서 인터뷰하며 웃고 있다. 타기그 AP 연합뉴스
이런 측면에서 올해 노벨평화상을 받은 마리아 레사(58)는 여러 면에서 ‘독특한’ 수상자다. 올해 수상자 중 유일한 여성이고, 자국 필리핀에서 최초로 노벨상을 받은 인물이며, 언론인으로서는 80여년 만이라서다.
필리핀 언론인 마리아 레사가 2019년 사이버 명예훼손 혐의로 체포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나며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질문받고 있다. 마닐라 AP 연합뉴스
레사는 필리핀에 돌아온 이후 언론인으로서 ‘테러와의 싸움’에 천착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시아 지역의 테러 단체는 비교적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 때였다. 레사는 1990년대 CNN의 마닐라 지국장을 맡은 데 이어 자카르타 지국장을 역임했는데, 1998년 인도네시아 폭동, 1999년 동티모르 사태, 2002년 자카르타 주재 필리핀 대사 관저 폭발 등 주요 사건을 다뤘다.
마리아 레사가 2016년 필리핀 말라카낭 궁전에서 베니그노 아키노 3세 전 필리핀 대통령을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 위키피디아 캡쳐
테러집단과 싸우던 레사의 전투는 2012년 온라인 탐사보도 전문매체 ‘래플러’(Rappler)를 공동 설립하며 새로운 길을 걷게 된다. 래플러는 2016년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의 당선 이후 그를 집중 비판하면서 저항 언론의 상징이 됐다. 두테르테는 정권을 잡은 직후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는데, 대대적인 마약 범죄 소탕 과정에서 수천명이 사망했다.
두테르테 정권 비판 후 박해 “살해·강간 위협은 일상”
필리핀 온라인 탐사보도 매체 래플러의 공동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언론인 마리아 레사가 2019년 3월 체포됐다가 보석으로 석방되며 경찰에 둘러싸인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레사는 래플러의 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로서 두테르테의 끊임없는 탄압을 견뎌야 했다. 사기와 탈세, 뇌물 혐의로 기소됐고 2019년 2월에는 사이버 명예훼손 혐의로 체포됐다. 그가 체포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난 것만 10번에 달한다.
2015년 로드리고 두테르테 당시 필리핀 다바오 시장을 인터뷰하는 마리아 레사. 래플러 홈페이지 캡쳐
이처럼 권위주의 정권에 맞선 레사는 2018년 미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올해의 인물로 뽑혔으며, 제70회 세계신문협회가 시상한 황금펜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페북은 민주주의 저해…적극 조치 나서야”
노벨평화상 수상 소식에 필리핀 자택서 미소짓는 마리아 레사
필리핀의 온라인 탐사보도 매체 ‘래플러’(Rappler)의 공동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마리아 레사가 8일(현지시간) 2021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직후 메트로 마닐라 타기그시 자택에서 미소짓고 있다. AP 연합뉴스
그는 “소셜미디어는 무기가 된다. 미국 이전에 필리핀이 그 길을 걸었다”며 “온라인 폭력은 실제 세계의 폭력으로 이어진다”고 말한 바 있다. 노벨상 수상 이후에는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페이스북이 혐오표현과 허위정보 차단에 실패했고, 팩트에 반하는 편향성을 지니고 있다”며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는 레사 자신이 온라인에서 각종 협박과 폭력 위협에 시달려왔기 때문이다. 그는 2016년 이후 두테르테의 지지자들로부터 끊임없이 공격받았다. 국제언론인센터(ICFJ)가 최근 발간한 빅데이터 사례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16~2021년 레사에 대한 소셜미디어 공격이 급증했는데, 이는 결국 실제 위협으로 번졌다.
국제언론인센터(ICFJ)가 마리아 레사에 대한 소셜미디어 공격을 분석한 빅데이터 사례 연구 보고서 일부. 레사에 대해 가장 많이 사용된 100개의 욕설 용어를 추상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용어 크기는 발생 빈도를 반영한다.ICFJ 제공
미 싱크탱크인 우드로윌슨센터 소속 가짜뉴스 연구자인 니나 잰코위치는 워싱턴포스트(WP)에 기고한 칼럼에서 “레사의 수상은 페이스북의 실패에 대한 고발 성격이 짙다”고 평하기도 했다. 잰코위치는 “래플러 창립 초기 레사가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에게 ‘필리핀 국민의 97%가 페이스북을 사용한다’며 엄청난 영향력에 대해 설명하자, 저커버그는 나머지 3%에 대한 관심과 시장 점유율에만 관심을 보였다”는 일화를 덧붙였다. 실제 최근 페이스북은 가짜뉴스 등을 제대로 거르지 않고 있다는 직원의 내부 고발 이후 큰 곤욕을 치르고 있다.
올해 노벨상 여성은 딱 1명…“언론 역할 일깨웠다”
마리아 레사. 노벨위원회 제공
노벨위원회가 이번에 레사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위한 용감한 싸움을 벌였다”며 “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가 점점 더 불리한 조건에 직면하고 있는 세상에서 이러한 이상을 옹호하는 모든 언론인을 대표한다”고 언급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노벨위원회가 저널리즘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언론인들에만 평화상을 수여한 건 1935년 이후 처음이다. 당시 독일 언론인 카를 폰 오시에츠키는 독일이 1차 세계대전 뒤 비밀리에 재무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한 공로로 평화상을 받았다.
2018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올해의 인물’로 뽑힌 마리아 레사. 타임지 제공
이번 수상 이후에도 레사는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의 중요성을 거론하며 “사실(facts)이 없는 세계는 진실과 신뢰가 없는 세계를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래플러는 매일 폐간 가능성을 안고 살아가지만, 북극성을 앞에 두고 사실을 수호하면 권력에 책임을 지게 할 수 있다”고 하는가 하면 소셜미디어의 책임에 대해서도 거듭 경고했다. 레사는 소셜미디어가 “정보 생태계에서 폭발하는 원자폭탄과 같다”며 “2차 세계대전 뒤에 그랬듯 세계가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단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리아 레사는 누구·Maria Angelita Ressa |
1963 필리핀 마닐라 출생 1986 프린스턴대 졸업 1986 필리핀 귀국 1987 다큐멘터리 탐사 프로그램 전문 프로브 프로덕션 설립 1987~1995 마닐라 CNN 지국장 1995~2005 자카르타 CNN 지국장 2003 책 ‘테러의 씨앗’(Seeds of Terror) 출판 2005 필리핀 최대 미디어 기업 ABS-SBN 뉴스 운영 2012 탐사보도 전문 매체 ‘래플러’(Rappler) 설립 2013 책 ‘빈라덴에서 페이스북까지’(From Bin Laden to Facebook) 출판 2018 타임 ‘올해의 인물’ 선정 2021 필리핀인 최초 노벨평화상 수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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