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⑨ 대학도시 롤모델 英옥스퍼드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⑨ 대학도시 롤모델 英옥스퍼드

입력 2010-12-27 00:00
수정 2010-12-27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옥스퍼드大 ‘올인 정책’ 버리니 市가 살았다

영국 런던 히스로 공항에서 북서쪽으로 80㎞. 언덕으로 이어진 넓은 초록색 숲을 따라 고속도로를 한 시간가량 달리자 옥스퍼드가 나타났다. 옥스퍼드는 자전거와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오가는 대학생들이 많이 보인다는 것을 제외하면 오래된 영국의 중소도시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도시 안쪽으로 들어서자 가정집을 개조한 기숙사들과 오래된 학교 건물들이 이어졌다. ‘영국의 자존심’이자 엘리트들의 대학도시 옥스퍼드에는 ‘첨단’ 대신 ‘고요함’이 가득했다.

이미지 확대
옥스퍼드시 톰 타워에서 내려다 본 옥스퍼드대 전경.
옥스퍼드시 톰 타워에서 내려다 본 옥스퍼드대 전경.
옥스퍼드는 케임브리지와 함께 흔히 ‘옥스브리지’로 불리지만 두 도시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옥스퍼드는 대학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존재하는 소도시인 케임브리지와 달리, 산업과 관광 등이 공존하는 인구 15만명의 완벽한 도시 형태를 갖추고 있다. 케임브리지대가 과학과 경제에 치중하는 반면, 옥스퍼드대는 인문사회와 이공계를 아우르며 좀 더 폭넓은 종합대학에 가깝다.

옥스퍼드대는 1200년대 초중반, 파리에 유학을 다녀온 수도사들이 하나 둘 모여들면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1249년 ‘컬리지’라는 단과대학 형태가 정착되면서 이 해가 옥스퍼드의 개교 원년으로 역사에 기록됐다. 시내를 중심으로 곳곳에 퍼져 있는 옥스퍼드 건물들은 대부분 역사의 흔적을 담고 있다. 수많은 시인과 정치가, 과학자들이 이곳에서 젊음의 꿈을 불살랐고 이들은 나중에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원동력이 됐다. 지금까지 30여명의 영국 총리가 이곳에서 배출됐다. 옥스퍼드대 학생들의 엘리트 의식은 대단하다. 대학 관계자는 “한국, 일본, 중국과 인도, 동남아, 남미 등지로 학생 구성이 다양해지면서 오래 전의 귀족의식은 희박해졌지만 교수와 학생 모두 세계 최고의 대학에 다닌다는 자부심으로 가득하다.”면서 “품위 규정이나 학업 관리 등은 다른 어떤 대학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미지 확대
아이러니하게도 옥스퍼드가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옥스퍼드대에 대한 지나친 의존을 벗어나면서부터다. 옥스퍼드대는 옥스퍼드만이 아닌 영국을 대표하는 대학이다. 정부는 시를 거치지 않고 대학을 직접 지원하고 관리한다. 기업들 역시 대학 기금 조성과 연구비 지원에만 관심이 높다. 결국 옥스퍼드대로 인해 시가 직접적으로 얻을 수 있는 수익이나 정부 지원은 없는 셈이다. 옥스퍼드시 관계자는 “옥스퍼드대 덕분에 시가 많은 혜택을 얻을 것이라고 흔히 생각하지만, 오히려 시가 사용해야 할 예산까지 대학건물 증축과 주택 정책 등에 쏟아부을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면서 “시를 구성하는 나머지 1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대학만 바라볼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시정부와 시의회는 1970년대 후반부터 옥스퍼드 내 다른 대학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당시 옥스퍼드에는 옥스퍼드대의 그늘에 가려 있었지만 이공계에 강점을 가진 옥스퍼드 브룩스대와 중하위권 대학인 매드트리 대학 등이 열악한 재정 속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옥스퍼드 브룩스대에는 기숙사 등 주택정책과 적극적인 홍보예산이 배정됐고, 기업들의 연구비 유치를 위해 시정부가 적극적으로 발벗고 나섰다. 불과 20년이 지나지 않아 옥스퍼드 브룩스대는 영국에서 손꼽이는 신흥 명문대로 발전했고, 그 결과물은 시 예산 확보로 이어졌다. 섬유와 화학공학 등에서 옥스퍼드 브룩스대의 성과가 두드러지면서 각종 기업들이 연구비 지원뿐 아니라 옥스퍼드 근교에 연구소를 설립하고 직원을 파견하기 시작했다. 런던과 가까운 지리적 이점으로 인구도 급격히 늘었다. 엘리트 중의 엘리트만 갈 수 있는 지역이라는 한계 때문에 옥스퍼드에 관심을 갖지 않던 학부모와 학생들도 옥스퍼드를 수많은 선택지 중의 하나로 고려하게 되면서 오히려 관광객과 방문자가 늘어나는 효과도 거뒀다. 이와 함께 시는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은 아시아권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시의 관광자원화도 진행했다. 옥스퍼드대를 구성하는 40여개 칼리지는 대부분 수백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적들이다. 크라이스트 교회와 톰 타워 등은 옥스퍼드대를 찾은 관광객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영국을 대표하는 명물로 자리잡았다.

옥스퍼드성의 경우에는 철마다 그림자 귀신축제 등 이벤트를 개최하면서 영국 내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1990년대 이후에는 옥스퍼드대의 이름을 내세운 어학연수 코스가 시 재정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어학연수생들을 대상으로 홈스테이를 운영하고 있는 에마 블링크는 “옥스퍼드 지역의 어학연수비나 홈스테이 비용이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히 높은 데도 불구하고, 옥스퍼드 칼리지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순서를 기다려야 할 정도”라며 “대학의 브랜드가치가 결국 도시 구성원들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글 사진 옥스퍼드 박건형순회특파원 kitsch@seoul.co.kr
2010-12-27 26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