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소방관 생존 리포트] <3> 발병 원인 없는 역학조사보고서
김영국 소방장이 지난달 7일 인천 자택에서 암 발병 전 찍은 가족 사진과 동료 소방관들이 완쾌를 기원하며 만든 응원패를 들어 보이고 있다. 지난해 9월 국내 혈관육종암 투병 소방관 가운데 생존 중 첫 공상 승인이 된 김 소방장은 현재 재발해 병마와 싸우고 있다. 같은 혈관육종암으로 2014년 6월 사망 후 5년 만인 2019년 9월 공상 승인이 된 김범석 소방장 이후 두 번째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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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청이 시민·기업의 기부금을 받아 지원한 공상입증을 위한 역학조사보고서에는 그의 혈관육종암이 업무와 연관성이 높다는 소견이 붙어 있다.
김영국 소방관 제공
김영국 소방관 제공
22일 서울신문이 입수한 김 소방장 역학조사보고서에 따르면 혈관육종암 발병은 화재 현장과 관련이 있다. 김 소방장은 지난 10년간 2528회의 구조 활동과 983회 화재 출동을 했다. 그의 발병 원인으로 염화비닐(VC)이 지목되는 이유다.
VC는 국제암연구소(IARC)가 지정한 1급 발암물질이지만 국내 대부분 주택에서 발견된다. 건축 자재인 플라스틱 배관이나 창틀 소재인 PVC가 탈 경우 발생한다. 정경숙 원주세브란스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소방관들은 화재 현장에서 어떤 물질이 타는지 그 성분을 알기 어렵다”면서도 “염화비닐과 혈관육종암은 의학적으론 상관관계가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 소방관의 연간 VC노출량은 공식적으로 산출된 수치가 아예 없다. 전문가들은 국내 소방관의 경우 연간 VC 노출량이 865ppm을 넘을 것으로 추산한다. 특히 20~49세 남성 소방관의 경우 동일 연령대 일반인 대비 발병률이 7.2배나 된다.
김 소방장은 “폭발 등 위험물질의 경우 화재조사관이 사전 경고를 하지만 PVC가 타는 현장은 별다른 주의 조치가 없다”며 “특히 잔업 개념인 잔불 정리 단계에서는 빠른 진압을 위해 산소통을 착용하지 않고 방진·방독 마스크만 쓴다”고 말했다.
국내 소방관들이 쓰는 방진·방독 마스크로는 VC뿐 아니라 화재 현장에서 발생하는 포름알데히드, 석면, 벤젠 등을 완전히 차단하기 어렵다. 의학계는 이런 유독물질의 경우 사람의 내부 장기와 골수, 혈액까지 거의 모든 암 발병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본다.
김 소방장은 2017년 1월 얼굴 피부 안쪽 부위에 이물감을 느꼈지만 암인 줄 모른 채 화재진압 출동을 했다. 정 교수는 “김 소방장의 진단과 치료가 조기에 이뤄지고 추가적인 VC 노출 상황이 차단됐다면 지금보단 나아졌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희귀암 투병 소방관들의 공상 인정 범주는 여전히 좁고 인색하다. 김 소방장은 국내 혈관육종암 투병 소방관 가운데 생존 중 공상이 승인된 1호 소방관이다. 올 들어 처음으로 신장암 투병 소방관 3명도 공상 인정을 받았다.
최상현(34·가명) 소방교는 지난해 5월 뇌종양 제거를 위한 ‘개두술’(머리를 여는 수술)과 항암치료를 끝내고 지난 2일 복직했다. 그의 역학조사보고서에는 “과거 병력이나 직계가족의 암 가족력이 전혀 없다. 직업적 요인 외의 뇌종양 원인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장태원 한양대 작업환경의학과 교수의 소견이 붙어 있다. 세계 의학 연구에도 소방관의 뇌종양 발병률이 일반인 대비 30%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상현(가명) 소방교의 역학조사보고서에서도 뇌종양의 발병 원인으로 소방업무와의 관련성이 제시됐지만 정부는 의학적 상관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며 그의 공상 신청을 불승인했다.
최상현 소방관 제공
최상현 소방관 제공
지난해 한국화재소방학회 논문지에 발표된 ‘화재조사현장 호흡가스 유해물질 분석 기초연구’ 보고서를 보면 국내 화재 현장 51곳에서 7종의 유해물질이 측정됐다. 이 가운데 포름알데히드 공기 중 농도가 2ppm 이상 15분간 지속된 현장도 존재했다. 포름알데히드 농도는 0.5ppm만 넘어도 치명적이다. 이소연 국립소방연구원 연구사는 “많은 소방관들이 어떤 유해물질이 나오는지 모르는 현장에서 불을 끄고 사람을 구한다”면서 “소방관 개개인이 화재로 인해 발생하는 유해물질에 얼마나 노출되는지 확인할 집계 시스템부터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2021-08-23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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