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 범죄’ ‘미제 사건’ 이젠 없다 [달콤한 사이언스]

‘완전 범죄’ ‘미제 사건’ 이젠 없다 [달콤한 사이언스]

유용하 기자
유용하 기자
입력 2024-02-18 14:00
수정 2024-02-1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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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加 연구팀, 사체 분해 미생물 군집 발견
지역, 환경 상관없이 보편적 미생물 20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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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코난 도일이 창조한 탐정 셜록 홈스는 소설 속에서 다양한 과학적 방법으로 범죄를 해결한다. 이 때문에 홈스를 과학수사의 원조라고 보는 경우가 많다.  미국 리치먼드대 제공
아서 코난 도일이 창조한 탐정 셜록 홈스는 소설 속에서 다양한 과학적 방법으로 범죄를 해결한다. 이 때문에 홈스를 과학수사의 원조라고 보는 경우가 많다.

미국 리치먼드대 제공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지도 모를 정도로 천문학 지식 없음. 철학, 문학 지식 없음. 식물학 지식은 독성물질에만 해박. 지질학 지식은 실용적이지만 한정적. 화학 지식 전문가급. 해부학 지식 정확. 필체 분석과 향수 감별 전문가급. 담뱃재에 대한 지식 상당.”

이런 사람이 있을까 싶겠지만 1887년 ‘주홍색 연구’로 처음 대중 앞에 등장한 셜록 홈스의 특징을 동료 존 왓슨 박사가 관찰해 정리한 내용이다. 소설 ‘주홍색 연구’에서 홈스는 과학적 방법으로 피해자 사망 시간을 추정한다.

과학수사 원조라고 하는 홈스의 뒤를 잇는 것은 영국 소설가 리처드 오스틴 프리먼이 창조한 존 이블린 손다이크 박사다. 변호사이자 병리학자, 추리소설 사상 최초 전문 법의학자로 ‘휴대용 실험실’이라고 불리는 녹색 가방을 들고 범죄 현장에 나타난다. 가방 속에는 현대 과학수사대나 감식반이 갖고 다니는 것처럼 각종 현장 검증을 위한 실험장비가 들어있다. 실제로 미국과 영국 경찰에서 20세기 중반 과학수사대가 만들어진 것도 손다이크 박사가 등장하는 소설 때문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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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에게 생소했던 과학수사, 법과학 개념을 쉽게 알게 해준 미국 드라마 CSI의 한 장면  미국 CBS 제공
일반인에게 생소했던 과학수사, 법과학 개념을 쉽게 알게 해준 미국 드라마 CSI의 한 장면

미국 CBS 제공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법과학 활용 수준은 추리소설보다 뒤졌다. 1950년대를 지나면서 분자생물학을 비롯한 다양한 과학기술 발전으로 법의학, 법 물리학, 법화학, 법생물학, 법 고고학 등 법과학 수준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기증받은 36구 사체 활용
다양한 환경과 기후에서 부패 실험
사체 분해 미생물 종류와 순서 확인
이런 상황에서 미국 콜로라도 주립대 동물과학대, 테네시대 미생물학과를 중심으로 한 미국 내 27개 대학 및 연구기관과 캐나다 국립 고등연구소 공동 연구팀은 인간 사체를 분해하는 데 관여하는 미생물 군집과 종류는 지역이나 환경 조건과 관계없이 보편적이라고 18일 밝혔다. 유기물을 분해하는 미생물 상호 작용의 보존과 예측할 수 있는 순서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법의학 연구와 실제 범죄 수사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이 연구 결과는 생명 과학 분야 국제 학술지 ‘네이처 미생물학’ 2월 13일 자에 실렸다.

생태계에서 분해는 죽은 생물학적 물질을 재활용해 식물이나 토양에 연료를 공급하는 과정이다. 분해는 곰팡이, 박테리아가 주로 관여한다. 많은 연구가 있지만 인간을 포함한 동물 사체에는 쉽게 분해되는 단백질과 지질이 풍부해, 생물 지질 화학이나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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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법과학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법과학은 화학, 물리학, 생물학, 고고학, 인류학, 공학 등을 이용해 범죄 흔적을 찾아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 법과학회 제공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법과학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법과학은 화학, 물리학, 생물학, 고고학, 인류학, 공학 등을 이용해 범죄 흔적을 찾아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 법과학회 제공
연구팀은 미국 연방 형사정책연구소 지원으로 테네시대, 샘 휴스턴 주립대, 콜로라도 메사대 세 곳의 법인류학 연구실에서 기증받은 36구의 사체가 분해되는 과정을 살폈다. 연구팀은 온대, 반건조 기후를 가진 세 곳에서 각각 사계절마다 3구씩 배치해 분해 과정을 장기간 분석했다. 연구팀은 부패하는 각 시신에 대해 처음 21일 동안 시신의 피부 변화와 주변 토양 표본을 수집했다. 연구팀은 표본에서 분자 및 게놈 분석을 했다. 이를 통해 각 시신에 존재하는 미생물 군집(마이크로바이옴) 지도를 구축했다.

그 결과, 연구팀은 부패 중인 인간 사체에는 지역이나 기후, 계절에 상관없이 부패하지 않은 환경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오직 분해 시에만 나타나는 20종의 미생물 군집이 같이 나타나는 것을 발견했다. 특히, 이 미생물 군집은 특정 시점에 시계처럼 나타나며 그로 인해 모여드는 곤충들도 같은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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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류학자가 백골이 된 뼈를 맞춰 보고 있는 모습  미국 퀴니피액대 제공
법인류학자가 백골이 된 뼈를 맞춰 보고 있는 모습

미국 퀴니피액대 제공
이번 연구 결과와 AI 머닝러신 결합
정확한 사망 시간 예측 도구까지 개발
연구팀은 이번 연구 결과와 기존에 얻은 법과학 지식을 결합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머신러닝 기술로 사망 후 시간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도구를 개발했다. 부검의가 추정하는 사망 시간보다 좀 더 정확하게 예측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연구팀 관계자는 밝혔다.

연구를 이끈 제시카 매트칼프 콜로라도 주립대 교수(실험 생태학·생물정보학)는 “모든 살인 사건의 수사에서 중요한 것은 사망 시간”이라면서 “이번 연구는 유해의 사망 시간을 정확히 예측하고, 신원을 확인하며, 잠재적 용의자를 파악해 수사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매트칼프 교수는 “야외에서 발견된 사체에서는 사망 시간을 비롯해 수사의 단서가 될 만한 것을 수집하기가 어렵다”라면서 “이번 연구는 야외에서 발견된 시신에 대해서도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도와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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