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가에 예배를 강요하는 폭력이 발생해 논란이 되고있다. 유명 입시학원 대표이사가 지점 소속 원장과 강사들에게 자신이 다니는 교회 예배에 참석하라고 강요해 소송이 접수됐다고 한다. 잊혀질 만 하면 또 터지곤 하는 개신교계의 고질이 또 도진 듯 해 안타깝다.예배 강요가 발생할 때마나 숱한 질타와 자성의 물결이 넘치지만 그 때 뿐이다. 이쯤 되면 심해도 보통 심한 망각의 병이 아닐 수 없다.
왜 종교를 강요하는가. 남의 종교와 믿을 권리를 왜 침해하는 것일까. 원치않는 강요는 엄연한 폭력이다. 문제는 폭력임을 알면서도 거듭하는 맹신과 억지의 반복이다. 국내외에서 일어난 그 무조건의 반복은 이루 열거하기 힘들 정도이다. 서울 강남 봉은사 법당에서 개신교 신자들이 일으킨 이른바 ‘땅 밟기’ 사건이며 인도의 불교 성지에서 개신교 신자들이 ‘찬송 파티’를 벌여 세계인의 눈쌀을 찌푸리게 한 것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성경 내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의심없이 믿고 따라야 한다는 한국 개신교의 ‘성경무오설’이며 ‘문자주의’는 세계 기독교계에서도 소문 난 근본주의의 전형으로 꼽힌다. 그리고 그 근본의 전형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끝 없는 전도와 강요의 실천으로 이어지곤 한다. 지금도 한국인의 뇌리에 생생하게 박혀있는 분당샘물교회 봉사 팀의 아프가니스탄 납치 피살 사건도 따져보면 ‘땅끝 전도’가 부른 희생에 다름 아니다.
내 것이 아무리 좋아도 남이 싫다면 권하지 않는 게 일반의 상식이다. 하물며 목숨까지 아낌없이 버린다는 신앙의 차원에서 강요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폭력행위로 받아들여진다.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들은 같은 무슬림끼리도 자신의 교리를 전파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한다. 그런 무전도의 신앙 지역에서 ‘땅 밟기’며 ‘찬송 파티’를 벌이는 행위가 얼마나 위험하고 무자비한 일인 지는 이미 여러차례의 참사와 희생을 통해 충분히 입증된 바 있다.
‘종교는 문화다’ 세상의 많은 종교인들은 이제 이 명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화합과 공존의 공동체 만들기에 힘을 쏟고 있다.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살아내는 상생 문화로서의 종교 만들기 말이다. 내 믿음과 신앙이 아무리 좋아도 나와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외곬의 배타성은 이제 설 땅이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런데도 이 땅에선 ‘땅 밟기’같은 아집과 맹신의 전도며 강요가 계속된다. 이제 그만 멈출 때도 됐는데….
‘교회 밖에서도 구원이 있을 수 있다’는 ‘종교다원주의’의 들먹임은 이 땅의 많은 개신교인들에겐 욕으로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적어도 ‘함께 평화롭게 어울려 살자’는 인류 보편의 정신인 원융과 화합만은 훼손하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하물며 인간이 지닌 모든 윤리의 으뜸이라는 종교일진대.
김성호 선임기자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왜 종교를 강요하는가. 남의 종교와 믿을 권리를 왜 침해하는 것일까. 원치않는 강요는 엄연한 폭력이다. 문제는 폭력임을 알면서도 거듭하는 맹신과 억지의 반복이다. 국내외에서 일어난 그 무조건의 반복은 이루 열거하기 힘들 정도이다. 서울 강남 봉은사 법당에서 개신교 신자들이 일으킨 이른바 ‘땅 밟기’ 사건이며 인도의 불교 성지에서 개신교 신자들이 ‘찬송 파티’를 벌여 세계인의 눈쌀을 찌푸리게 한 것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성경 내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의심없이 믿고 따라야 한다는 한국 개신교의 ‘성경무오설’이며 ‘문자주의’는 세계 기독교계에서도 소문 난 근본주의의 전형으로 꼽힌다. 그리고 그 근본의 전형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끝 없는 전도와 강요의 실천으로 이어지곤 한다. 지금도 한국인의 뇌리에 생생하게 박혀있는 분당샘물교회 봉사 팀의 아프가니스탄 납치 피살 사건도 따져보면 ‘땅끝 전도’가 부른 희생에 다름 아니다.
내 것이 아무리 좋아도 남이 싫다면 권하지 않는 게 일반의 상식이다. 하물며 목숨까지 아낌없이 버린다는 신앙의 차원에서 강요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폭력행위로 받아들여진다.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들은 같은 무슬림끼리도 자신의 교리를 전파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한다. 그런 무전도의 신앙 지역에서 ‘땅 밟기’며 ‘찬송 파티’를 벌이는 행위가 얼마나 위험하고 무자비한 일인 지는 이미 여러차례의 참사와 희생을 통해 충분히 입증된 바 있다.
‘종교는 문화다’ 세상의 많은 종교인들은 이제 이 명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화합과 공존의 공동체 만들기에 힘을 쏟고 있다.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살아내는 상생 문화로서의 종교 만들기 말이다. 내 믿음과 신앙이 아무리 좋아도 나와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외곬의 배타성은 이제 설 땅이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런데도 이 땅에선 ‘땅 밟기’같은 아집과 맹신의 전도며 강요가 계속된다. 이제 그만 멈출 때도 됐는데….
‘교회 밖에서도 구원이 있을 수 있다’는 ‘종교다원주의’의 들먹임은 이 땅의 많은 개신교인들에겐 욕으로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적어도 ‘함께 평화롭게 어울려 살자’는 인류 보편의 정신인 원융과 화합만은 훼손하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하물며 인간이 지닌 모든 윤리의 으뜸이라는 종교일진대.
김성호 선임기자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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