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다큐 줌인] 전통소금 ‘자염’ 생산현장을 가다

[포토 다큐 줌인] 전통소금 ‘자염’ 생산현장을 가다

입력 2013-05-13 00:00
수정 2013-05-13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짠! 잊힌 그 맛이 땀 머금고 열정 끓고 끓어 50년 만에 다가왔다

햇볕에 말리기를 반복한 갯벌 흙을 잘게 부순 후 수거한다.
햇볕에 말리기를 반복한 갯벌 흙을 잘게 부순 후 수거한다.
영화 ‘식객: 김치전쟁’에서 배우 김정은은 염전을 찾아가 말한다. “최고의 소금을 원한다. 전통방식 그대로의….” 직접 갯벌에 나가 삽질을 하고, 써레질을 한다. 그리고 갯벌 흙에서 스며나온 바닷물을 장작불에 끓인다. 크고 넓적한 ‘가마솥’에서 하얀 결정체가 생겨난다. 자염(煮鹽)이다. 끓여 만든 소금이다.

아직은 낯설다. 하지만 100년 전만 해도 조상들의 유일한 소금제조법이었다. 염전에서 만드는 천일제염법은 일제강점기에 들어왔다. 전국 갯벌마다 천일염전이 생겨났다. 자연스럽게 전통자염은 사양길에 들어섰다. 그러면서 1950년대쯤 사실상 명맥이 끊겼다.

그런 전통자염이 다시 태어났다. 충남 태안군 근흥면 영농조합법인 ‘소금 굽는 사람들’에 의해서다. 법인은 50년 만에 전통자염방식을 되살렸다. 2001년의 일이다. 쉽지 않았다. 별다른 기록이 없었기 때문이다. 옛날 자염을 만들었던 어르신들을 찾아다니며 한마디 한마디 들어 전통 방식을 복원했다. 태안은 본래 품질 좋은 자염의 생산지로 이름이 높았었다.
염분이 농축된 갯벌 흙을 부직포에 닮아 가마에 매달고 있다.
염분이 농축된 갯벌 흙을 부직포에 닮아 가마에 매달고 있다.


자염(煮鹽)공장 직원들이 소금을 얻기 위해 바닷물을 끓이고 있다. 자염은 햇볕에 말린 갯벌 흙을 바닷물로 걸러 염도를 높인 다음 가마에 끓여 만든 우리나라 재래소금이다.
자염(煮鹽)공장 직원들이 소금을 얻기 위해 바닷물을 끓이고 있다. 자염은 햇볕에 말린 갯벌 흙을 바닷물로 걸러 염도를 높인 다음 가마에 끓여 만든 우리나라 재래소금이다.


10시간 정도 끓여서 생긴 소금을 모으고 있다.
10시간 정도 끓여서 생긴 소금을 모으고 있다.


전통방식을 찾는 데 힘쓴 사람 가운데 한명인 정낙추(62) 법인사장은 드넓은 갯벌로 안내하면서 “자염을 만들려면 흙, 갯벌이 가장 중요하지요”라며 자염 만드는 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모든 갯벌이 자염 생산에 적합한 것은 아니다. 모래가 20% 이하인 데다 조금 때 7~8일간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은 갯벌이라야 최적지라고 했다. 조석간만의 차가 가장 작은 ‘조금(潮)’동안에 말린 갯벌 흙은 사나흘이 지나면 소금 꽃을 피운다. 이후 조수간만의 차가 가장 큰 사리 때 소금기 가득한 흙알갱이 사이로 바닷물이 스미면서 흙의 염분이 높아진다. 정 사장은 “바로 이 갯벌 흙에 자염의 신비한 효능과 맛의 비밀이 숨어 있다”고 강조했다. 갯벌 흙에서 걸러진 바닷물을 대형 가마에 붓고 끓이기 시작한다. ‘밤잠을 떨치고 장작 여덟 짐은 태워야 소금이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정성을 들이는 작업이다. 가마에서는 수증기가 증발하면서 간장을 달이는 듯한 구수한 냄새를 풍긴다. 이어 소금이 나타난다. 괄지 않은 불로 무려 10시간이다. 바닷물이 끓는 불순물을 거품과 함께 걸러내는 일도 만만찮다. 그런 후에야 비로소 순도 높고, 염도 낮은 명품 자염이 탄생하는 것이다. 땀의 결실이다. 실제 자염은 천일염에 비해 칼슘이 1.5배, 유리아미노산이 5배나 많은 반면 염분은 상대적으로 적다. 때문에 김치를 담글 때 유산균 개체수를 증식시키는 효과가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특별한 소금인 것이다.
물기를 빼기 위해 소금을 가마에서 건져 내고 있다.
물기를 빼기 위해 소금을 가마에서 건져 내고 있다.


탈수를 마친 마른 소금을 퍼내고 있다.
탈수를 마친 마른 소금을 퍼내고 있다.


정낙추 사장이 순도 높고, 염도 낮은 자염을 들어 보이고 있다.
정낙추 사장이 순도 높고, 염도 낮은 자염을 들어 보이고 있다.


갓 만들어진 소금을 찍어 맛을 봤다. 짠맛의 ‘격조’랄까. 달랐다. 또 입자도 곱고 이물질이 전혀 섞이지 않은 까닭에 백색의 분말가루가 묻어나는 것 같다. 11년차 소금쟁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이인재(45)씨는 “같은 김치를 절여도 김치 맛이 완연히 다르다”며 “최근 자염의 뛰어난 성분과 효능이 널리 알려지면서 김장철을 중심으로 판매량이 늘 것”이라고 자랑했다. 이씨는 “과정이 까다로운 탓에 대량 생산이 어렵다”고 말했다. 살아 있는 갯벌과 바닷물, 전통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열정, 자연과 인간이 빚어낸 천연 조미료가 자염인 것이다.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묻어나는 소금이다.

글 사진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2013-05-13 18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