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랜드’ 美필라델피아 마약 거리를 가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켄싱턴 거리에서 한 여성이 주사기를 든 채 주변을 응시하고 있다. 그의 양팔에는 마약 중독으로 썩은 피부를 보호하기 위한 붕대가 감겨 있다.
일명 ‘좀비랜드’로 불리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켄싱턴 거리에서 만난 펜타닐 중독자 수전(34·가명)은 불안한 듯 퉁퉁 부은 손을 깨물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3년 전 한 술자리에서 친구의 권유로 펜타닐을 우연히 접하고 모든 것을 잃었다. 가족들이 보고 싶지만 펜타닐을 끊을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켄싱턴 거리에서 한 남성이 마약을 투약한 뒤 몸이 굳은 채 서 있다. 마약 중독으로 그의 손이 붉게 변해 있다.
거리의 한 남성과 여성이 마약에 취해 등이 굽은 채 멈춰 있다. 이들은 최소 20분 이상 같은 자세를 보였다.
일명 ‘좀비랜드’로 알려진 필라델피아 켄싱턴 거리. 거리에 있는 이들 중 상당수는 외부 지역 사람으로 마약을 구매하기 위해 이곳에 방문했다가 중독으로 떠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한 여성이 목에 주사기를 꽂은 채 마약을 투약하고 있다. 이곳 길거리에선 흔하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대낮에 거리 한복판에서 단체로 마약을 투약하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정리되지 않은 쓰레기와 오물로 거리엔 악취가 풍겼고, 깨진 유리창과 가로등이 위협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켄싱턴 마약 지대는 약 3㎞로 크게 [A], [B], [C] 구역으로 나뉜다. 주택가 내부인 [A] 구역은 갱단 주도로 성매매와 마약 거래가 이뤄지고 있어 접근이 어렵다. 사진 속 거리는 [B], [C] 구역으로 길 한편에는 중독자들이 텐트촌을 형성해 노숙 생활을 하고 있고, 건너편에선 총기를 소지한 거래상들이 각종 마약류를 판매하고 있었다.
켄싱턴 거리 100m 인근 맥퍼슨스퀘어공원 바닥 곳곳에 마약 투약에 사용된 주사기가 버려져 있다.
거리를 순찰하는 경찰을 종종 목격할 수 있었지만 이들은 눈앞에서 마약 투여 장면을 보고도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이 거리에서 300m 정도 떨어진 놀이터에서는 아이들이 뛰놀고 있었다.
마약 청정국이라 불렸던 한국도 이미 비상 상태에 접어들었다. ‘일반인도 5분이면 마약을 살 수 있다’는 말이 나올 만큼 마약은 일상에 깊이 들어와 있다. 법무부 범죄백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마약사범은 무직(31.5%), 회사원(6.2%), 노동자(4.3%), 학생(3.0%), 예술·연예 분야 종사자(0.4%)로 대다수가 일반인들이었다.
지난해 9월까지 국내에서 적발된 마약사범은 역대 처음으로 2만명을 넘어섰다. 국내 마약류 범죄 암수율이 28.57배인 것을 고려하면 지난해 기준 국내 마약 사용자는 52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은 마약 신흥국’이란 말까지 나온다.
필라델피아에서 마약 중독자들이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봉사활동을 하는 채왕규(57) 목사는 “마약은 처음부터 손을 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누가 마약을 권했을 때 단호하게 거절하는 것이 마약을 하지 않는 방법”이라면서 “한국이 켄싱턴 같은 상황을 겪지 않으려면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초기에 잘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4-05-23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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