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다큐] ‘1913 송정역 시장’…적당히 버는 청년, 아주 잘사는 시장

[포토 다큐] ‘1913 송정역 시장’…적당히 버는 청년, 아주 잘사는 시장

최해국 기자
입력 2017-09-24 17:48
수정 2017-09-25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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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장이 젊어지고 있다. 낡고 오래된 공간이 청년 상인들이 들어오면서 생기로 가득해졌다. ‘갱소년’, ‘탐관오리의 의상실’, ‘독수공방’, ‘밀밭양조장’ 등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독특한 상호만큼이나 젊은 사장들이 단연 눈에 띈다. ‘스펙’이라는 계단에서 과감히 내려와 ‘장사꾼’에 도전한 이들의 열정과 어르신들의 지혜가 어우러지며 전통시장이 새롭게 도약하고 있다.
밤늦게 장사를 마친 상인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1913송정역시장’ 골목길을 걷고 있다. 골목길은 직선으로 170m 정도라 이 끝과 저 끝이 한눈에 담긴다.
밤늦게 장사를 마친 상인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1913송정역시장’ 골목길을 걷고 있다. 골목길은 직선으로 170m 정도라 이 끝과 저 끝이 한눈에 담긴다.
●송정역시장, 104년의 시간 위에 청춘의 옷 입고 도약

광주시 ‘송정역시장’은 104년의 역사를 간직한 오래된 시장이다. 5일장으로 시작해 호남선을 이용하던 상무대 훈련병부터 학생, 주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에게 큰 인기를 누린 곳이 송정역시장이다. 병어, 꼬막, 낙지 등 남도의 대표 해산물이 가득했고, 인심도 후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주변에 하나둘씩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사양길에 접어든다. 2004년 KTX가 정차하면서 반짝했지만 추세를 바꾸기엔 역부족이었다.
한 직원이 ‘단골손님 너였으면 좋겠다’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고 있다. 송정역시장 먹태상회.
한 직원이 ‘단골손님 너였으면 좋겠다’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고 있다. 송정역시장 먹태상회.
남부시장의 ‘독수공방’. 가죽 만지는 여자가 운영하는 수제품 공방이다.
남부시장의 ‘독수공방’. 가죽 만지는 여자가 운영하는 수제품 공방이다.
쇠락하던 이곳이 지난해 4월 역이 생긴 연도를 딴 ‘1913송정역시장’으로 이름을 바꾸고 새롭게 태어났다. 이 변화에는 광주창조경제혁신센터와 현대카드가 함께했다. 이후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시장으로 변모하면서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이자 전국적인 명소로 탈바꿈했다.

“요즘 젊은이들은 우리와는 다르당께. 파는 음식도 신기허고, 간판도 특이혀. 내 입에는 모르겄는디 젊은 애기들 입에는 잘 맞다고 헌께… 허기사, 그 덕에 사람은 늘었응께 우리야 좋제~.”
남부시장 2층에 자리잡은 ‘웰컴투 청년물’ 안내도.
남부시장 2층에 자리잡은 ‘웰컴투 청년물’ 안내도.
고객이 원하는 원단의 맞춤옷을 만날 수 있는 남부시장의 ‘탐관오리의 의상실’.
고객이 원하는 원단의 맞춤옷을 만날 수 있는 남부시장의 ‘탐관오리의 의상실’.
● 맛·멋·재미로 유혹… 하루 평균 방문객 200명→4000명으로

송정역시장 변화의 중심에는 청년 상인들이 있다. 정부 지원을 받은 20~30대 청년 사장들은 발칙한 상상력을 무기로 시장 곳곳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개성 넘치는 젊은 사장들의 점포가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끄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루 평균 방문객이 200명에 불과했던 송정역시장은 요즘은 평일엔 2000명, 주말엔 4000명으로 늘었다. 기존 전통시장과는 다른 맛과 멋, 그리고 재미가 사람들의 발길을 되돌리는 원동력이 됐다.

재래시장 투어 중이라는 대학생 김준호(22)씨는 “송정역시장은 전통과 현대가 잘 어우러져 있어 작아도 구경거리가 많다”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소문난 이색 상점들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말했다.
송정역시장에서 가장 긴 줄이 서는 수제식빵 전문점 ‘또아식빵’.
송정역시장에서 가장 긴 줄이 서는 수제식빵 전문점 ‘또아식빵’.
남부시장 청년몰. “적당히 벌고 아주 잘 살자”라고 쓰여진 간판 앞에서 사진을 찍는 방문객.
남부시장 청년몰. “적당히 벌고 아주 잘 살자”라고 쓰여진 간판 앞에서 사진을 찍는 방문객.
●남부시장 살린 젊은 사장들의 패기… “행복한 삶 만들고 주변에 나누자”

전북 전주시 남부시장 청년몰에는 공통 슬로건이 있다. ‘적당히 벌고 아주 잘살자’라는 이 문구에는 젊은 사장들의 패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행복한 삶을 만들고, 이를 주변에 나누자는 뜻이란다.

‘청년몰’이라 불리는 청년 상인들의 점포는 2011년 정부의 전통시장 활성화 시범사업으로 시작됐다. 첫 사업 대상이 바로 남부시장이었다. 시장 2층 창고로 방치돼 있던 곳을 활용해 청년 장사꾼 30여명이 모여 저마다 개성 있는 가게를 운영하며, 다양한 문화행사로 전통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대형마트, 인터넷쇼핑몰 등장으로 외면받는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한 정부의 청년 상인 육성사업이 활발하다. 올해부터는 청년 상인들의 사업 성공을 위해 체험점포도 운영하고 있다. 시장을 우선 선정한 뒤 자체적으로 청년 상인을 모집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먼저 청년을 모집해 교육시킨 후 원하는 시장에 입점하도록 시장 선택권도 부여하고 있다.

김흥빈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이사장은 “청년 상인들의 젊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전통시장을 변화시키는 주체가 되고 있다”며 “청년 상인들의 우수 상품을 개발·확산시킴으로써 청년들의 일자리 창출과 전통시장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 사진 최해국 선임기자 seaworld@seoul.co.kr
2017-09-25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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