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다큐] “대학 갈끼다” 둥실 떠오른 만학도의 꿈

[포토 다큐] “대학 갈끼다” 둥실 떠오른 만학도의 꿈

도준석 기자
도준석 기자
입력 2016-10-16 17:18
수정 2016-10-16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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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산초 1학년 황분이·이명개 할머니

반짝반짝 보석처럼 빛나는 남해 바다를 앞마당으로 둔 경남 창원시 수정마을 구산초등학교에는 만학도 황분이(81), 이명개(76) 할머니가 1학년에 재학 중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초등학교 1학년이던 이 할머니는 아버지를 간병하기 위해 학교를 포기했지만 공부에 대한 열망은 항상 마음속 깊이 남아 있었다.

황분이(왼쪽), 이명개(오른쪽) 할머니가 경남 창원시 수정마을 구산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가을밤 독서행사의 일환으로 가족 소망을 적은 풍등을 날리고 있다.
황분이(왼쪽), 이명개(오른쪽) 할머니가 경남 창원시 수정마을 구산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가을밤 독서행사의 일환으로 가족 소망을 적은 풍등을 날리고 있다.


황분이 할머니가 수업을 마치고 구산음달경로당에서 치매 예방 100세 운동을 하고 있다.
황분이 할머니가 수업을 마치고 구산음달경로당에서 치매 예방 100세 운동을 하고 있다.


이명개 할머니가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구산면사무소에서 청소 일을 하고 있다.
이명개 할머니가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구산면사무소에서 청소 일을 하고 있다.


●밭일하다 학교 입학 소식 듣고 펑펑 울었지

그는 독학으로라도 공부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마침 학교에서 일하는 동생에게 교과서를 구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김옥자 교장으로부터 “차라리 학교에 입학해 공부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입학 권유를 받고 조금 늦은 올해 3월 14일 황 할머니와 함께 구산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학교 입학이 결정됐다는 소식에 밭일하다 호미를 내려놓고 펑펑 울었어요. 드디어 공부에 대한 한을 풀 수 있다는 기쁨과 진작 학교 문을 두드렸으면 지금쯤 중학교에 다녔을 거란 아쉬움이 동시에 밀려왔지요.”

이 할머니는 비록 1학년이지만 손자뻘 학생들에겐 할머니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한다. 등교하면서 만나는 학생들과 선생님들을 꼭 안아 준다. 같은 반 어린이 세수도 시켜 주고 점심시간에는 어린이들이 옷에 흘린 반찬도 닦아 준다.

무엇보다 어린이들에게 힘이 되는 건 따뜻한 인생 선배로서의 도움이다. 하루는 한 다문화가정 학생이 우두커니 교실 문 앞에 서 있는 있는 모습을 보고 “네가 태어난 곳은 한국이다. 한글을 열심히 배워 어머니 나라에 가서 한국어 선생님이 되라”고 희망을 심어 줬다. 지금 그 학생은 꿈을 이루기 위해 아주 활기차게 학교생활을 한다.

만학도에겐 공부가 어려운 걸까. 황분이, 이명개 할머니가 수업 중에 머리를 긁고 있다.
만학도에겐 공부가 어려운 걸까. 황분이, 이명개 할머니가 수업 중에 머리를 긁고 있다.


구산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서 이명개 할머니가 같은 반 동기 배건휘 어린이의 얼굴을 씻기고 있다.
구산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서 이명개 할머니가 같은 반 동기 배건휘 어린이의 얼굴을 씻기고 있다.


구산초등학교 전교생 12명이 운동장에서 체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구산초등학교 전교생 12명이 운동장에서 체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구산초등학교 1, 2학년 교실에서 1학년 황분이, 이명개, 배건휘 학생과 2학년 윤소이 학생이 김수지 담임선생님과 수업을 하고 있다.
구산초등학교 1, 2학년 교실에서 1학년 황분이, 이명개, 배건휘 학생과 2학년 윤소이 학생이 김수지 담임선생님과 수업을 하고 있다.
●학교선 친구·인생 선배… 방과 후엔 살림꾼

이 할머니는 하교 후에도 할 일이 많다. 밭에 심어 놓은 채소도 가꿔야 하고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면사무소에서 10년 넘게 청소 일도 하고 있다. 가끔은 홍합을 까는 부업도 한다. 하지만 마음엔 항상 여유가 넘쳐난다.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마음은 늘 공부에 있어 대학교까지 다닐 예정이라 이미 서울에 사는 아들에게 대학 등록금 지원을 요청해 뒀다.

황 할머니는 어느 날 버스를 잘못 탔는데 버스기사에게 한글을 모르면 버스도 타지 말라는 핀잔을 듣고 나서 한글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아직 1학년이지만 이미 버스를 타고 꽤 먼 곳까지 다닌다. 또한 거동이 불편한 87세 남편의 수발을 다 들면서도 밝은 모습으로 학교생활에 최선을 다한다. 치매 예방 및 건강을 위한 운동도 꾸준히 한다.

1학년이 3명뿐인 구산초등학교에서 두 할머니는 짝꿍이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등·하교도 같이하고 교무실에서 선생님이 만들어 주는 커피도 함께 마신다.

●진짜 공부란 세상을 이해하는 ‘그릇’ 키우는 것

문득 ‘공부는 왜 하는 걸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우리나라에서는 공부 스트레스로 자살하는 중고생도 적지 않다. 공부가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하며 학벌 위주의 현실에서 대학교만 졸업하고 공부를 게을리하는 사람도 많다. 또한 100세 시대로 접어들면서 제2의 인생을 살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진정한 공부는 머리로 하는 공부가 다가 아닌 듯하다.

“내 인생이 얼마 안 남았기에 어려운 사람들에게 농사지은 채소를 모두 나눠 주면서 살고 있어요.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서로 이해하면서 양심적으로 착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이 할머니의 말처럼 지식과 경험이 쌓이면서 세상을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그릇을 키우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공부의 의미가 아닐까.

우리나라의 교육이 하루빨리 입시 위주에서 벗어나 앞으로의 100년을 내다볼 수 있는 교육제도가 마련되길 기대해 본다.

글 사진 창원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2016-10-1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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