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중단은 죄 아닌 권리인데… 말할 수 없는 사회다

임신중단은 죄 아닌 권리인데… 말할 수 없는 사회다

입력 2020-11-29 22:22
수정 2020-12-01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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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낙태했다-모두가 알지만 하지 않은 이야기] <9·끝>있지만 말 못하는 ‘임신중단’

주변에서 흔한 일인데 말하면 죄악시
여성의 재생산권, 권리로 받아들여야
지난달 7일 정부의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이 입법예고되자 같은날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가수 이랑과 이길보라 감독이 ‘#낙태죄폐지’, ‘#나는낙태했다’ 등의 해시태그를 걸고, 자신의 임신중단 경험을 공개했다.
지난달 7일 정부의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이 입법예고되자 같은날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가수 이랑과 이길보라 감독이 ‘#낙태죄폐지’, ‘#나는낙태했다’ 등의 해시태그를 걸고, 자신의 임신중단 경험을 공개했다.
한국 사회에서 임신중단을 말하는 것은 금기였다. 죄의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임신중단 경험을 밝히며 공론화에 나섰던 이길보라 영화감독은 임신중단을 자유롭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사회에 의문을 던졌다. 그는 “모든 사람이 임신중단 경험을 말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왜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없는지에 대한 논의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길 감독은 지난달 7일 낙태가 가능한 임신 주수를 14주로 제한하는 정부 개정안이 입법예고되자 가수 이랑에 이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나는낙태했다’는 해시태그를 달고 자신의 임신중단 경험을 밝혔다. 뒤이어 많은 여성이 임신중단 경험을 고백하는 릴레이 선언에 나섰다. 이길 감독은 4년 전에도 해시태그와 같은 이름의 칼럼을 통해 임신중단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8년 전 임신중단 수술을 한 이길 감독은 수술 몇 개월 후 가까운 사람들에게 수술 경험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비슷한 일이 생긴다면 힘이 되고 싶어서였다. 그는 “나도 무척 괴로웠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만큼 괴롭지 않기를 바랐다”면서 “‘내가 당신 곁에 있겠다’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할머니도, 어머니도, 자신도 임신중단을 경험한 이길 감독은 임신중단 경험에 대해 말할 수 없는 사회가 이상하다고 했다. 그는 “다른 여성들에게 임신중단 경험을 털어놓으면 많은 이들이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고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다”면서 “임신중단은 굉장히 흔한 일인데, 여태까지 제대로 언급하지 못했다는 것 자체가 여성의 몸을 통제하려는 움직임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변화는 있다. 지난해 4월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 이후 낙태 합법화 논의가 본격화하면서 여성들이 임신중단 경험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길 감독은 “2016년에 칼럼을 썼을 때는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면서 “2020년에는 익명의 공간에서 임신중단 경험을 말하고 공유하는 많은 시도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길 감독은 현재 3세대에 걸친 임신중단 경험에서 출발해 여성의 몸과 재생산권에 대해 질문하는 영화 ‘우리의 몸’(Our Bodies)을 제작하고 있다. 그는 “내 경험을 직접 말하고 글로 쓰면서 임신중단을 죄가 아닌 ‘권리’의 영역이라고 인식하게 됐다”며 “말하기를 넘어 창작자로서 이 경험을 주도적으로 표현하고 싶다”고 말했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2020-11-3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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