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한 남친, 남편 됐지만 그날 돌아가도 같은 선택

함께한 남친, 남편 됐지만 그날 돌아가도 같은 선택

입력 2020-10-28 18:04
수정 2020-12-01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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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낙태했다-모두가 알지만 하지 않은 이야기] <5>임신·출산의 무게, 낙태를 다시 보다

결혼 생각 없어 남자친구와 낙태 결정
요양 없이 레지던스서 몸 겨우 추슬러
“낙태, 여성 생애 전체 영향 주는 경험
처벌로 통제하려는 제도 재고했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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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전 임신중절 수술을 한 민서영(가명)씨가 ‘여자에게만 책임을 전가시키는 사회가 되지 않기를’이라고 쓴 손글씨. 민씨는 “임신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다”며 낙태를 법으로 처벌하는 제도를 비판했다. 본인 제공
14년 전 임신중절 수술을 한 민서영(가명)씨가 ‘여자에게만 책임을 전가시키는 사회가 되지 않기를’이라고 쓴 손글씨. 민씨는 “임신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다”며 낙태를 법으로 처벌하는 제도를 비판했다.
본인 제공
민서영(40·가명)씨는 14년 전 임신중절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미역국을 끓여 줬던 남자친구는 지금의 남편이 됐다. 민씨 부부 사이에 아이는 없다. 그날의 기억과 무관하지 않다. 그래도 민씨는 “다시 돌아간다 해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씨는 26살 때 6년 동안 만난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던 중 피임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3주가 지나자 몸이 이상해지는 것을 느꼈다. 테스트기로 확인해 보니 두 줄(임신 양성 반응)이 떴다. 임신과 결혼 생각이 없던 민씨는 남자친구와 상의 후 아이를 지우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수술 비용은 남자친구가 마련하고, 병원은 민씨가 알아봤다. 여의사가 있는 병원을 찾아 낯선 지역을 헤맸던 기억은 떠올리고 싶지 않은 상처다. 수술 후 몸조리는 사치였다. 민씨는 “낙태도 출산과 마찬가지로 요양이 필요한데 그런 서비스를 찾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돈이 없던 민씨 커플은 적당한 레지던스를 빌려 몸을 추슬러야 했다.

민씨가 낙태를 고민했을 무렵 미혼인 직장 동료의 임신 소식을 들었다. 남자친구와 결혼 계획이 있던 동료는 임신 사실을 공개하고 직장 사람들의 축복을 받았다. 얼마 후 그 동료가 자연유산으로 태아를 잃자 따뜻한 위로가 쏟아졌다. 임신도 낙태도 숨겨야 했던 민씨의 사정과 너무 달랐다. 떠나보낸 아이를 제대로 애도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던 민씨는 4년 전 절을 찾아가 아기를 위한 제사를 지냈다.

임신과 낙태를 겪으면서 민씨는 임신 자체가 힘든 일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고 했다. 임신 초기부터 호르몬 변화 등 많은 증상이 나타났다. 민씨는 “밤에 잠을 자는데도 온몸에 피가 도는 느낌이 생생하게 들었다”고 표현했다. 그는 “임신과 출산이 내 삶을 송두리째 바꾼다는 점이 큰 무게로 느껴져 낙태를 더욱 신중하게 결정했었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14년이 지난 지금도 민씨의 낙태 사실을 모른다. 동성 친구들의 위로와 공감이 큰 힘이 됐다. 민씨는 “임신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황이기에 낙태를 해본 여성도, 하지 않은 여성도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었다”고 전했다. 그는 “낙태는 여성의 몸을 넘어 생애 전체에 영향을 주는 경험”이라면서 “처벌로써 낙태를 통제하려는 제도를 다시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2020-10-29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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