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 인사이드] 첨단기술에 사라진 독특한 병영문화
강원 화천군 육군 27사단 화생방지원대에서 외출 장병들이 위병소를 통과해 영외로 나오고 있는 모습. 군은 2011년부터 ‘개구리복’으로 불리던 구형 전투복 대신 기능성을 높인 ‘디지털무늬 전투복’을 도입했다.
화천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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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별 방상내피의 변화. 왼쪽부터 2011년 이전, 2011~2017년, 2018년부터 보급한 방상내피.
국방기술품질원 제공
국방기술품질원 제공
특히 위장색 사이 경계선이 너무 뚜렷해 경계가 모호한 ‘픽셀’ 형태의 디지털무늬를 적용한 미국, 러시아 등 군사 강국의 전투복에 비해 기능이 뒤처지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이에 따라 국방부는 2008년부터 연구를 시작해 새로 흙색, 침엽수색, 수풀색, 나무줄기색, 목탄색 등 5가지 색상을 적용한 ‘디지털무늬 전투복’을 개발하게 됩니다.
신형 전투복에는 야간 투시장비의 기술발달에 대응하기 위해 ‘적외선 산란 기술’을 적용했습니다. 야간 투시장비는 밤에도 존재하는 가시광과 일부 근적외선 대역의 미약한 빛을 증폭시켜 눈으로 볼 수 있게 합니다.
그래서 야간 작전을 하는 병사들의 생존율을 높이려면 전투복에 적외선 산란 기능을 포함시켜야 합니다. 실제로 한국군 전투복은 야간 투시장비 감지 가능 근적외선 파장영역인 1100㎚를 넘어 1260㎚까지 야간위장 성능을 확보했습니다.
군이 장병들에게 다림질을 하지 못하게 한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열을 가하면 적외선 산란 기능과 방수 기능 등 전투복의 기능성이 사라집니다. 일부 장병들은 “신형 전투복은 구김이 적어 다림질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지만, 실제로는 기능성에 초점을 맞춘 지침 때문이었던 겁니다.
이런 높은 기능성에도 불구하고 2012년 ‘사계절 전투복’이 땀 배출과 통풍이 안 돼 ‘찜통 전투복’이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현재는 사계절 전투복과 하계절 전투복을 따로 지급합니다. 정부 연구진은 현재 미군 전투복처럼 방염 기능과 내구성을 강화한 제품을 개발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겨울에 장병들이 착용하는 ‘방한복 상의 내피’(방상내피)의 변화도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방상내피를 우리는 흔히 ‘깔깔이’라고 부릅니다. 겉감과 안감 사이에 솜을 넣고 누빈 것으로, 보온성을 강화해 겨울이 오면 최고의 관심을 받는 군용 피복입니다.
2018년 국방부는 군은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퍼진 ‘깔깔이’라는 은어를 ‘방상내피’로 바꾸는 행정용어 순화 캠페인까지 벌였습니다. 하지만 큰 효과를 보진 못한 것 같습니다. 지난 수십년간 사용된 데다 입에 착 감기는 발음의 유혹을 떨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 ‘깔깔이’라는 단어는 도대체 어디에서 왔을까요.
과거 방상내피는 ‘카키색’이었는데 이 때문에 ‘칼칼이’라고 불렸다가 ‘깔깔이’로 바뀌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또 과거 방상내피 질이 좋지 않아 겉면이 이 빠진 칼날처럼 거칠다고 해 ‘칼칼이’로 불리다가 ‘깔깔이’로 바뀌었다는 설명도 있습니다.
우리 군은 광복 후 창군 과정에 미군으로부터 군복을 지원받아 입었는데, 그중에 ‘M1941 야전 재킷’과 내피가 있었습니다. 방상내피의 시초인 이 내피 안감은 ‘울 원단’을 사용해 제작됐고, 울 원단의 특성상 피부에 닿았을 때 느낌이 까칠까칠해 ‘깔깔이’로 불렸다는 설명도 있습니다. 이후 탈부착 가능한 모자와 방한내피가 포함돼 보온성을 크게 높인 미군 군복 ‘M65 파커’가 대량 보급됐는데 나일론 소재로 만들어진 이 방한내피가 본격적으로 깔깔이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방상내피는 장병들에게 인기가 많아 일부는 전역할 때 군에서 가지고 나오기도 합니다. 방상내피는 전역자 지급품 목록에 포함돼 있어 외부 반출이 가능한 제품입니다. 전역 이후에도 집에서 흔히 이용할 정도로 방상내피가 사랑받는 이유는 얇고 가벼우면서 보온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방상내피는 안감과 겉감 사이에 솜털, 우레탄폼 등을 넣어 마름모꼴의 ‘다이아몬드 무늬’가 생기도록 바느질을 하는 ‘누빔 기법’으로 제조합니다. 누빔이 된 천 중간에 공기층이 형성돼 열이 밖으로 잘 방출되지 않도록 합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국가들이 이런 방식을 이용합니다.
●2018년부터는 디지털무늬 방상내피 보급
하지만 최전방 지역의 혹한은 방상내피로도 견디기 어렵습니다. GOP(일반전초)에서 근무했던 분들이라면 몸속을 파고드는 칼바람을 기억할 겁니다.
이때는 2010년부터 보급한 ‘기능성 방상내피’를 사용합니다. 기능성 방상내피는 최대 50~60도의 온도를 내는 ‘발열체 판’을 등 부위에 넣을 수 있습니다. 6시간 동안 발열 효과가 있고 온도를 4단계로 조절할 수 있습니다. 혹독한 겨울을 나게 해줘 ‘슈깔’(슈퍼깔깔이)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과거엔 방상내피 허리에 고무줄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단추형, 지퍼형으로 차츰 개선됐습니다. 또 2011년 디지털무늬 전투복이 보급되면서 노란색 방상내피 대신 갈색 방상내피로 진화했고 솜을 더 얇게 넣어 활동성은 높이면서도 목깃을 부착하고 지퍼를 목 끝까지 올릴 수 있게 해 보온성을 강화했다고 합니다. 2018년부터는 디지털무늬 방상내피가 생산돼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해군은 자체적으로 검은색 방상내피를 사용합니다.
전투복은 또 한 번의 진화를 앞두고 있습니다. 군은 2023년 도입을 목표로 전투복, 방탄복 등 피복류 10종을 개선하는 ‘워리어 플랫폼’ 사업을 진행 중입니다.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생활하기에도 편리하고 장병 생존성도 더 높여 주는 좋은 제품을 개발해 보급하길 기대합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2020-07-03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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