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헬멧만 부러워하던 한국… ‘방탄 선진국’ 꿈 명중

미군 헬멧만 부러워하던 한국… ‘방탄 선진국’ 꿈 명중

정현용 기자
정현용 기자
입력 2020-01-30 17:34
수정 2020-01-31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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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 인사이드] 美서 권총탄 방어 헬멧 성능 입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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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장병들은 이르면 올해부터 방호능력을 대폭 개선한 신형 헬멧을 보급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은 울릉도 전개훈련에 참가한 해병대원들이 울릉도 해안에 상륙해 수색정찰을 하고 있는 모습.  해병대 제공
우리 장병들은 이르면 올해부터 방호능력을 대폭 개선한 신형 헬멧을 보급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은 울릉도 전개훈련에 참가한 해병대원들이 울릉도 해안에 상륙해 수색정찰을 하고 있는 모습.
해병대 제공
우리 정부와 군은 2003년 신형 방탄헬멧을 개발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성능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무게는 미군 헬멧의 70~80% 수준으로 매우 가벼웠습니다. 그러나 파편탄 방어 성능이 뒤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분야에 관심 있는 분들은 너도나도 “미군 헬멧 좀 보라”며 불평을 쏟아냈습니다. 그랬던 한국이 16년 만인 지난해 드디어 ‘방탄 선진국’ 꿈을 이뤘습니다.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같은 군사강국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게 됐다는 겁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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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8월 전북 전주 효성첨단소재 전주공장에서 열린 탄소섬유 신규투자 협약식 뒤 조현준 효성 회장의 설명을 들으며 아라미드 재질의 방탄헬멧 전시품을 관람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8월 전북 전주 효성첨단소재 전주공장에서 열린 탄소섬유 신규투자 협약식 뒤 조현준 효성 회장의 설명을 들으며 아라미드 재질의 방탄헬멧 전시품을 관람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볍지만 방탄성능 떨어지는 국산 헬멧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전북 전주 효성첨단소재 탄소섬유 공장에서 열린 ‘탄소섬유 신규투자 협약식’에 참석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 책임 있는 경제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핵심소재의 특정국가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문 대통령과 조현준 효성 회장 등 참석자들은 효성이 개발한 방탄헬멧과 방산장비도 둘러봤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극일’과 수소차 수소저장용기, 항공기부품, 로봇팔 등 대형 이슈에 묻혀 헬멧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제가 오늘 말씀 드릴 부분은 당시엔 묻힌 이 헬멧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2003년 개발된 방탄헬멧은 ‘초고분자량 폴리에틸렌’(UHMWPE)이라는 재질로 만들어졌습니다. 미군이 1980~1990년대에 사용하던 ‘아라미드’ 재질의 PASGT(육군 개인방호체계) 헬멧보다 가벼웠고 다소 무른 성질이 있어 방탄 효과가 높을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선진국 헬멧 성능에 턱없이 못 미치는 제품이었습니다. 말로는 “권총탄 방호가 가능하다”고 자랑했지만 검증기준이 없었고 파편탄 방호성능도 미군 헬멧에 비해 훨씬 낮았습니다. 고온, 저온 등 환경실험이 있었지만 미군처럼 까다롭진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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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헬멧은 매우 복잡한 계산과 실험을 통해 주 기능인 ‘파편 방호 성능’을 검증합니다. 보통 ‘17그레인(gr·무게단위) 파편모의탄(FSP)’이라는 실험용 파편탄으로 ‘방탄한계속도’를 측정합니다. 1그레인은 0.064799g이기 때문에 17그레인은 쉽게 말하면 ‘1.1g’입니다. 무게 1.1g인 작은 파편도 초속 530~620m의 속도로 맞으면 사망 확률이 90%에 이르기 때문에 방탄 기준으로 삼은 겁니다. 그래서 선진국들은 1.1g 파편탄이 관통할 수 있는 방탄한계속도를 ‘초속 670m 이상’으로 맞췄습니다. 그런데 2003년 개발해 현재까지 한국군이 사용하고 있는 방탄헬멧은 ‘초속 610m 이상’으로 성능이 훨씬 낮습니다.

반면 미국과 프랑스의 방탄헬멧 기준은 각각 초속 671m와 680m 이상입니다. 영국은 초속 650m 이상으로 성능이 약간 떨어지지만 한국보다는 높습니다. 대신 한국 방탄헬멧의 무게 기준은 ‘1.15㎏ 이하’로 ‘1.33~1.41㎏ 이하’인 이들 국가의 제품보다 가볍습니다. 무게만 가벼울 뿐 성능은 떨어지는 헬멧을 무려 17년 동안 사용해 왔다는 겁니다.

●헬멧 변형 7.5~18.9㎜로 준수한 성능 확인

이에 소재개발업체인 ‘효성’이 나섰습니다. 회사 연구팀은 2가지 중요한 기준을 세웠습니다. 파편탄 방호성능은 선진국 수준인 ‘초속 670m 이상’으로 높이고, 지금은 없는 ‘9㎜ 권총탄’ 방호기능을 새로 갖추기로 했습니다.

효성 연구팀은 폴리에틸렌 대신 무게는 가볍고 열에는 강한 섬유소재 ‘아라미드’를 내세웠습니다. 이른바 ‘총알 막는 섬유’로 불리며 현재 프랑스·덴마크 육군, 유엔 평화유지군이 방탄헬멧에 이 소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국방기술품질원과 효성은 지난해 ‘미국 방탄시험기관’(NTS)에 시제품 성능 검증을 의뢰했는데 놀라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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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 신형 방탄헬멧 성능비교시험에서 육사 관계자가 새로 개발한 국산헬멧(오른쪽)과 미군헬멧의 방탄 실험결과를 보여 주고 있다. 이 장비가 2003년 개발돼 현재까지 군에서 사용하고 있는 제품이다.  연합뉴스
2004년 8월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 신형 방탄헬멧 성능비교시험에서 육사 관계자가 새로 개발한 국산헬멧(오른쪽)과 미군헬멧의 방탄 실험결과를 보여 주고 있다. 이 장비가 2003년 개발돼 현재까지 군에서 사용하고 있는 제품이다.
연합뉴스
NTS는 파편탄과 권총탄 방호기능에다 고온, 저온, 바닷물 등 미군 요구조건과 똑같은 극한의 환경조건을 더했습니다. ▲71도에서 24시간 고온처리 후 30분 내 방탄시험 ▲영하 51도에서 저온처리 후 30분 내 방탄시험 ▲1m 깊이의 바닷물 속에서 3시간 침수시킨 뒤 2시간 내 방탄시험 등이 그것입니다.

실험 결과 모의파편탄의 방탄한계속도는 고온에서 초속 718m, 저온 708m, 바닷물 침수 705m로 선진국 기준인 670m보다 훨씬 높았습니다. 기본적인 상온 조건에서는 735m나 됐습니다. 파편탄의 무게를 4.1g으로 늘려서 실험해도 선진국 기준을 넘었습니다. 또 9㎜ 권총탄을 맞았을 때 최대 25.4㎜ 이상 변형이 이뤄지지 않도록 선진국 기준을 적용했습니다. 그리고 파편탄과 마찬가지로 상온, 고온, 저온, 바닷물 침수 등 4개의 조건에다 정수리, 정면, 뒷면, 왼쪽, 오른쪽 등 5개 방향에서 사격하는 방식으로 성능을 검증했습니다. 그 결과 고온 상태의 정면 발사(23.4㎜)만 기준에 근접했을 뿐 나머지 조건에서는 헬멧 변형 정도가 7.5~18.9㎜로 준수한 성능을 보였습니다. 드디어 우리 헬멧도 미국이 보증하는 권총탄 방호 능력을 갖추게 된 겁니다.
미군 방탄헬멧은 선진국 헬멧의 표본으로, 늘 군사 마니아들의 관심이 집중된다. 올해부터는 한국도 미국과 같은 방탄헬멧 선진국 대열에 합류할 전망이다. 사진은 경북 포항에서 한미연합훈련을 하는 미 해병대 대원. 국방부 제공
미군 방탄헬멧은 선진국 헬멧의 표본으로, 늘 군사 마니아들의 관심이 집중된다. 올해부터는 한국도 미국과 같은 방탄헬멧 선진국 대열에 합류할 전망이다. 사진은 경북 포항에서 한미연합훈련을 하는 미 해병대 대원.
국방부 제공
●‘하이브리드 헬멧’ 등 다양한 재료 연구

개발업체는 방탄헬멧 형상을 인체공학적으로 만드는 작업도 진행했습니다. 병사 사진으로 머리 모양 표본을 만들고 이것을 3차원 스캐너를 이용해 3차원으로 역설계하는 첨단 방식을 택했습니다.

군은 계획대로 신형 방탄헬멧 개발을 마무리하면 올해 특수전 부대를 시작으로 전방부대부터 차례로 신제품을 보급할 계획입니다. 다만 정부와 전문가들이 단순히 아라미드 소재만 연구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미군은 현재 과거 사용하던 아라미드 대신 UHMWPE 복합소재인 ‘하이브리드 헬멧’을 사용하고 있어 특정 재질의 방탄헬멧이 더 우위에 있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시점은 아닙니다. 다양한 소재를 놓고 어떤 제품이 우리 군에 적합할지 분석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다만 이번 연구를 통해 국내 기술로 만든 방탄헬멧이 선진국 기준을 크게 넘어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겁니다.

과거 미군 헬멧에 대해 찬사를 보내던 분들이 많을 겁니다. 온갖 자료를 찾아 우리 헬멧의 성능을 깎아내리기 바빴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런 고생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이미 선진국 수준의 성능을 갖췄으니까요.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2020-01-31 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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