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운 기자의 맛있는 스토리텔링<30>쑥과 달래

김경운 기자의 맛있는 스토리텔링<30>쑥과 달래

김경운 기자
입력 2016-04-11 14:33
수정 2016-04-11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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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쑥과 달래가 상큼한 봄 향기를 전한다. 겨우내 언 땅을 뚫고 나온 짙은 향과 알싸한 맛, 탁월한 약성이 따스한 봄기운에 노곤한 몸과 마음을 번쩍 깨운다. 쑥과 달래는 옛 단군신화에 등장할 정도로 한국인과 함께 해온 산나물이다.

 쑥과 달래는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라 어찌 보면 약재다. 쑥은 체내 콜레스테롤과 노폐물을 제거해 고혈압을 낮춰준다. 또 해독·살균 효과와 함께 면역 기능을 증진시킨다. 간 기능을 개선하고 노화방지에도 좋다. 달래에는 비타민C와 각종 무기질, 칼슘 등이 풍부해 피로회복 효능이 있다. 특히 칼륨 성분이 많아 짜고 매운 음식을 즐기는 우리의 체내에서 염분을 배출한다. 쑥이나 달래 모두 여성의 냉증 예방에도 효과적이다. 그 효능에 대해선 서양 의학과 한의학에 이견이 없다. 유럽의 지중해 주변에서도 예부터 쑥향을 즐겼다.

 쑥으로 만든 요리 중에서 도다리쑥국(사진)을 빼놓을 수 없다. 광어가 겨울에 살이 오르고 맛이 달다면, 광어의 사촌격인 도다리는 쑥이 나오는 봄철에 제격이다. 쌀뜨물에 무를 넣은 국물이 끓기 시작하면 도다리를 넣어 익힌 뒤 막판에 쑥과 다진 마늘 등을 넣는다. 도다리의 연한 살이 으깨지지 않고 쑥향이 살아 있어야 제맛이기 때문에 조리 순서를 지켜야 한다. 소금 또는 된장으로 간을 낸다. 맑고 시원한 국물을 후루룩 들이켜면 달큰한 도다리 맛과 향긋한 쑥향이 온몸에 퍼지며 불편한 속을 풀어줄 것이다.

 알싸한 맛과 향의 달래는 무침이나 장아찌에 잘 어울린다. 된장찌개에 넣고 끓여도 별미다. 봄철에 입맛이 없을 때 톡 쏘는 맛이 침샘을 자극한다. 한방에선 뜨거운 성질의 달래를 찬 성질의 돼지고기와 함께 먹으면 맛과 효능을 모두 얻을 수 있다고 했다. 달래에 간장과 식초, 설탕을 넣고 비빔 간장을 만들어 두면 비빔밥이나 비빔국수를 만들 때 다른 게 필요 없다.

 사실 쑥, 달래와 함께 봄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산나물 중에는 냉이도 있다. 냉이의 효능도 만만치 않다. 단백질, 무기질, 철분, 비타민 등이 풍부해 피로를 풀어준다. 또 간의 해독, 시력 개선, 고혈압, 변비, 소화액 분비 촉진, 지혈 등의 효과가 있다고 한다. 맛과 향이 짙은 냉이된장국이 입맛을 돋운다. 과연 쑥과 달래, 냉이 등 봄나물은 약재가 아닐 수 없다.

단군신화에서는 신시(神市)를 다스리는 환웅천왕에게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기를 부탁했다고 한다. 환웅은 곰과 호랑이에게 쑥과 마늘을 건네며 삼칠일(21일) 동안 햇볕을 보지 않고 지내면 뜻을 이룰 것이라고 한다. 곰은 이를 견뎌서 웅녀가 되었고, 호랑이는 참지 못하고 달아났다. 사람이 되려면 고행을 수행하라는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여기서 마늘은 우리가 아는 독한 향의 개량 마늘이 아니라 향긋한 달래였다. 달래를 뜻하는 한자어 산(蒜)을 후대에서 마늘로 해석한 것이다.

 학계 일부에서는 신화에 등장하는 곰은 중국 북동부 일대에 넓게 퍼져서 반농반목 생활을 하며 곰을 숭상하던 맥족을 뜻하는 것으로 본다. 또 신화의 호랑이는 호랑이를 토템으로 섬기는 예족을 암시한다. 즉 환웅족과 맥족의 결혼 동맹이 고조선의 성립과 한국인의 형질을 완성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쑥과 달래는 아주 오래전에는 개마고원 이남의 한반도에 자생하던 산나물이다. 건조하고 추운 기후의 북중국 땅에는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혹시 한웅족이 맥족과 예족에게 건넨 쑥과 달래는 고행을 요구하는 영물이 아닐 것이다. 쑥과 달래는 그리 먹지 못할 식재료가 아니기 때문이다. 초원에서 유목이나, 산지에서 사냥에 의존하던 맥족이나 예족에 대해 안정적인 농경을 통해 앞서 나가던 한웅족이 자신들의 식습관을 전하려 한 것은 아닐까. 따스한 봄날 도다리쑥국을 한 숟가락 떠먹고 달래무침 한 젓가락을 입에 넣으며 역사적 한 장면을 즐겁게 상상해 보자.

 

 <도다리쑥국> 시인 이용철

 

 ...왼쪽에 풍을 맞은 어머니께

 도다리쑥국을 끓여

 보약으로 드시도록

 

 아침이슬 안고

 햇볕 쬐는 어린 쑥

 광주리 옆에 놓고

 칼을 쥐었다 놨다

 호미를 들었다 놨다

 

김경운 전문기자 kkwo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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