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대와 소시지는 국수만큼이나 음식 문명사와 함께하는 먹거리다. 오래전부터 동양에선 순대를, 서양에서는 소시지를 즐겨왔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그대로 먹기 어려운 육고기의 잡육을 양념과 함께 잘게 다져 기름진 맛이 풍부한 창자 속에 넣어 만들었다. 미리 만들어 두었다가 순대는 물에 삶거나 찌고, 소시지는 훈제를 했을 뿐이다.
순대는 돼지고기 창자를 소금과 밀가루로 깨끗이 빨아 잡내를 제거한 뒤 겉과 속을 뒤집어 표면을 매끈하게 만든다. 여기에 두부, 숙주나물, 찹쌀과 각종 향신료를 곱게 다져 돼지 피와 함께 넣는다. 숙주 대신에 배추김치를 넣기도 한다. 순대를 가마솥에 찌면 기름기가 자르르 도는 표면에 안의 소에는 적당히 간이 배어들고 선지는 녹말풀처럼 차지게 엉겨 붙어 감칠맛이 그만이다. 고기의 단백질과 채소의 비타민, 찹쌀의 탄수화물, 선지의 철분까지 갖췄으니 술안주로나 피부 미용에 좋지 않을 수가 없다.
순대에 쓰이는 돼지 창자로는 작은 크기의 소창이 흔히 쓰인다. 서울이나 중부 지방에선 그 순대에 찹쌀과 당면을 주로 넣는다. 풍부한 식감은 덜하지만 깔끔한 맛을 낸다. 소창은 소화에 필요한 점액을 분비하는 곳이어서 불에 구으면 몸에 좋은 ‘곱’의 풍미를 느낄 수 있다. 이게 곱창구이다.
소창의 아래로 내려가면 더 큰 대창이 있는데, 아바이 순대 등은 비교하자면, 김밥 둘레보다 더 굵은 대창을 쓴다. 기름기가 많고 더 쫄깃해 추운 함경도에 어울릴 것이다. 대창의 길이는 보통 3m 정도로 소창의 5분의1 길이다. 그래서 대창 순대가 비싸다. 그 아래에 막창이 있는데, 껍질이 더 두껍다. 대구 등지에선 술안주로 막창 구이의 씹는 맛을 즐긴다.
북방 음식인 순대의 원형은 찹쌀과 맵쌀을 가득 넣은 아바이 순대일 것이다. 추워서 채소는 적을 수밖에 없다. 충남 병천 순대는 조선 때 한양을 향한 교통의 요충지로서 5일장이 번성하고, 1960~70년대 대규모 양돈장이 주변에 들어서면서 발달했을 것이다. 병천 순대는 소창에 채소까지 소를 풍부하게 넣고 약간 길게 잘랐다. 돼지 피도 풍부하게 넣는다.
경기 백암도 영남에서 경성으로 가던 길목인데다 근처에 도축장이 있어 역시 순대와 국밥이 발달하게 된다. 백암 순대는 특이하게 소창에 돼지 피 대신에 소피를 넣었고 채소를 많이 쓴다. 이 때문에 순대의 표면이 일단 보기에 좋게 흰색이다. 그러나 일부 식객들이 우리 3대 순대로 아바이 순대, 병천 순대, 백암 순대를 꼽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순대는 추운 북쪽에서 서서히 남쪽으로 전해진 음식이기 때문이다. 병천이나 백암의 고유 먹거리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제주는 영 다르다. 순대를 서울이나 중부 지방에서는 후춧가루를 뿌린 소금에, 호남에선 초고추장에, 또 영남에선 막장(양념 된장)에 찍어 먹는다. 비슷한 순대인데 이렇게 찍어 먹는 기호가 다르기도 쉽지 않다. 반면 제주에서는 순대 옆에 간장이 있어야 한다. 중국 만주 지역에서도 대창 아바이 순대를 양파가 들어간 간장과 함께 먹는다. 혹시 제주에 정착한 고구려인들이 순대를 간장에 찍어 먹던 관습이 지금도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고기 내장에 잡육을 넣은 순대나 소시지는 상당히 많은 나라의 전통 음식이다. 인류에게 이만한 간편식과 보양식도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고대 언어라는 실담어에도 순대를 ‘순따(suntha)’라며 ‘흰 소의 고기’라고 전한다. 순대나 소시지는 본래 소고기 소창을 피(皮)로 썼을 수도 있다. 소시지 역시 순대와 마찬가지로 고기의 소장이나 대창에 속에 양념한 잡육을 갈아 놓은 뒤 편하게 먹었던 음식이다.
우리가 아는 독일의 프랑크 소시지는 속 알갱이를 굵게 했고, 오스트리아의 비앤나 소시지는 그 속을 곱게 갈아 더 부드러운 양고기의 소창에 넣었다. 요즘 프랑크 소시지는 잡고기 케이싱(먹을 수 있는 껍데기)으로 길게 만들어 비앤나 소시지와 다른 모양이다. 우리나, 서양인이나 먹는 게 별반 다른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순대> 시인 최승호
종로5가 광장시장의 점심시간은 장관이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먹는 사람들이 줄지어 앉아 먹고 있고
남쪽에서 북쪽으로 먹는 사람들이 줄지어 앉아 먹고 있다.
먹는 건 주로 김밥 순대 빈대떡 동그랑땡 오뎅 족발 따위인데
둘둘 말아놓은 순대는 굵기가 구렁이 몸통 정도 된다.
김경운 전문기자 kkwoon@seoul.co.kr
순대에 쓰이는 돼지 창자로는 작은 크기의 소창이 흔히 쓰인다. 서울이나 중부 지방에선 그 순대에 찹쌀과 당면을 주로 넣는다. 풍부한 식감은 덜하지만 깔끔한 맛을 낸다. 소창은 소화에 필요한 점액을 분비하는 곳이어서 불에 구으면 몸에 좋은 ‘곱’의 풍미를 느낄 수 있다. 이게 곱창구이다.
소창의 아래로 내려가면 더 큰 대창이 있는데, 아바이 순대 등은 비교하자면, 김밥 둘레보다 더 굵은 대창을 쓴다. 기름기가 많고 더 쫄깃해 추운 함경도에 어울릴 것이다. 대창의 길이는 보통 3m 정도로 소창의 5분의1 길이다. 그래서 대창 순대가 비싸다. 그 아래에 막창이 있는데, 껍질이 더 두껍다. 대구 등지에선 술안주로 막창 구이의 씹는 맛을 즐긴다.
북방 음식인 순대의 원형은 찹쌀과 맵쌀을 가득 넣은 아바이 순대일 것이다. 추워서 채소는 적을 수밖에 없다. 충남 병천 순대는 조선 때 한양을 향한 교통의 요충지로서 5일장이 번성하고, 1960~70년대 대규모 양돈장이 주변에 들어서면서 발달했을 것이다. 병천 순대는 소창에 채소까지 소를 풍부하게 넣고 약간 길게 잘랐다. 돼지 피도 풍부하게 넣는다.
경기 백암도 영남에서 경성으로 가던 길목인데다 근처에 도축장이 있어 역시 순대와 국밥이 발달하게 된다. 백암 순대는 특이하게 소창에 돼지 피 대신에 소피를 넣었고 채소를 많이 쓴다. 이 때문에 순대의 표면이 일단 보기에 좋게 흰색이다. 그러나 일부 식객들이 우리 3대 순대로 아바이 순대, 병천 순대, 백암 순대를 꼽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순대는 추운 북쪽에서 서서히 남쪽으로 전해진 음식이기 때문이다. 병천이나 백암의 고유 먹거리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제주는 영 다르다. 순대를 서울이나 중부 지방에서는 후춧가루를 뿌린 소금에, 호남에선 초고추장에, 또 영남에선 막장(양념 된장)에 찍어 먹는다. 비슷한 순대인데 이렇게 찍어 먹는 기호가 다르기도 쉽지 않다. 반면 제주에서는 순대 옆에 간장이 있어야 한다. 중국 만주 지역에서도 대창 아바이 순대를 양파가 들어간 간장과 함께 먹는다. 혹시 제주에 정착한 고구려인들이 순대를 간장에 찍어 먹던 관습이 지금도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고기 내장에 잡육을 넣은 순대나 소시지는 상당히 많은 나라의 전통 음식이다. 인류에게 이만한 간편식과 보양식도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고대 언어라는 실담어에도 순대를 ‘순따(suntha)’라며 ‘흰 소의 고기’라고 전한다. 순대나 소시지는 본래 소고기 소창을 피(皮)로 썼을 수도 있다. 소시지 역시 순대와 마찬가지로 고기의 소장이나 대창에 속에 양념한 잡육을 갈아 놓은 뒤 편하게 먹었던 음식이다.
우리가 아는 독일의 프랑크 소시지는 속 알갱이를 굵게 했고, 오스트리아의 비앤나 소시지는 그 속을 곱게 갈아 더 부드러운 양고기의 소창에 넣었다. 요즘 프랑크 소시지는 잡고기 케이싱(먹을 수 있는 껍데기)으로 길게 만들어 비앤나 소시지와 다른 모양이다. 우리나, 서양인이나 먹는 게 별반 다른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순대> 시인 최승호
종로5가 광장시장의 점심시간은 장관이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먹는 사람들이 줄지어 앉아 먹고 있고
남쪽에서 북쪽으로 먹는 사람들이 줄지어 앉아 먹고 있다.
먹는 건 주로 김밥 순대 빈대떡 동그랑땡 오뎅 족발 따위인데
둘둘 말아놓은 순대는 굵기가 구렁이 몸통 정도 된다.
김경운 전문기자 kkwo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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