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치국요? 그 비릿한 것으로 국을 끓여요?”
“묵어 봐라. 맛있다.”
경상도 사투리를 몰랐다면 손님에게 반말을 한다며 그냥 나갔을 것이다.
경북 포항의 과메기문화거리에 마련된 무대에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라며 나이 든 어머니의 열창이 이어졌다. 주민이 운영하는 임시 식당에 들러 과메기를 먹을까, 구이를 먹을까 고민하다 맛있고 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는다는 말에 꽁치국에 ‘영일만쌀 막걸리’ 한 병을 시키고 자리를 잡았다.
꽁치는 수심 30m 내외의 바다에서 떼 지어 산다. 영일만을 기점으로 경북과 강원지역에서 봄과 가을에 잡히는 찬물을 좋아하는 어류다. 일본 오키나와 부근의 먼바다에서 겨울을 나고, 봄이면 동해 연안으로 몰려와 해조류나 부유물에 산란한다. 심지어 자신을 잡으려 내린 그물에 몸을 비벼 알을 낳기도 한다. 울릉도나 구룡포에서는 가마니에 구멍을 내고 해조류를 매달아 놓고 기다리다 꽁치가 알을 낳기 위해 모여들면 잡았다. 이게 전통어법인 ‘손꽁치잡이’이다. 봄에 잡히는 꽁치는 기름기가 적어 구이와 찌개용으로 좋고, 가을에 잡히는 꽁치는 기름이 많아 과메기로 이용한다.
꽁치는 아가미 근처에 침을 놓은 듯 구멍이 있어 ‘구멍(空)이 있는 어류’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다산 정약용이 쓴 ‘아언각비’(1819)에 소개된 내용이다. 아마도 공치가 된소리로 바뀌면서 꽁치가 되었으리라. 가을에 맛있는 칼처럼 생긴 어류라 해서 ‘추도어’(秋刀魚)라고도 불렸고, 불빛을 좋아해 ‘추광어’라고도 했다. 집어등을 켜고 꽁치를 모아 그물을 내렸던 것도 이런 이유다.
영일만 일대의 어촌에서는 꽁치를 바닷바람에 말려 과메기를 만든다. 특히 구룡포읍 삼정리는 과메기 마을로 유명하다. 이맘때면 으레 해안의 덕장에 과메기가 그득하다. 이 마을에서는 눈 목(目)자를 ‘미기’, ‘메기’라 한다. 과메기란 ‘관목어’, 즉 눈을 꿰어 말린 생선을 말한다.
1910년대 최창선이 쓴 ‘소천소지’라는 유머집에는 이런 내용이 소개되고 있다. 동해안에 살던 선비가 과거를 보러 가다 배가 고파 해안가 나뭇가지에 눈이 꿰어 죽어 있는 물고기를 발견했다. 이를 찢어 먹었더니 맛이 너무 좋아 과거를 보고 내려와 겨울마다 집에서 청어나 꽁치를 그렇게 말려 먹었다.
조선시대에는 과메기를 청어로 만들었다. 지금은 청어 대신 꽁치가 그 자리를 꿰찼다. 머리를 떼 내고 내장과 뼈를 제거한 후 잘 씻어 덕장에 내걸고 기다리면 된다. 눈과 비를 가리고 반으로 갈라 놓은 등이 붙지 않도록 손질하는 것이 일이다. 이런 과메기를 ‘배지기’라 부른다.
구룡포 읍내를 벗어나 호미곶에 이르는 해안가 마을의 가을은 과메기와 함께 시작된다. 구룡포시장에서는 배를 따거나 반으로 쪼개지도 않은 채 짚으로 엮어 통째 말리고 있는 꽁치과메기를 만날 수 있다. ‘통마리’다. 통마리는 내장을 제거하지 않고 세척해 굴비처럼 엮어서 말리는 것이다.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보름 정도 말려야 한다. 배지기는 사나흘이면 상품이 된다. 과메기는 온도가 중요하다. 영하 5도에서 영상 5의 기온이 유지돼야 한다. 그리고 바람이 잘 부는 곳이 좋다. 이런 조건에서 과메기가 숙성된다.
▶▶ 어떻게 먹을까
포항 호미곶에서 만난 포장마차 안주인이 과메기를 먹고 가라며 손짓을 했다. 청어과메기를 찾자 꽁치가 맛도 좋고 미용에 좋다며 권했다. 꽁치과메기를 먹고 나면 다음날 얼굴에 윤이 나고 반지르르하다는 것이다.
꽁치는 꼬리가 노랗고 몸이 밝은 빛을 띠며 빳빳하고 딱딱한 것이 신선하다. 등 푸른 생선이 그렇듯 쉽게 변하기 때문에 잡은 즉시 얼음에 보관해야 한다. 그렇기에 꽁치물회는 뱃사람들이나 먹을 수 있는 특권이자 별식이다. 머리를 자르고 내장을 꺼낸 후 살을 발라 채소를 넣고 참기름과 고추장으로 쓱쓱 비벼 먹는다. 포항물회가 여기에서 비롯됐다는 말도 있다.
그물에 머리가 박힌 채 빠져나가려 꼬리를 흔들다 상처가 난 꽁치를 ‘파치’라고 한다. 녀석들은 상품 가치는 없지만 젓갈과 젓국으로 재탄생한다. 동해안의 어민들은 김치를 담글 때 꽁치젓이 들어가야 맛이 있다고 한다. 새우젓이나 멸치젓 대신 말이다. 뒤돌아볼 줄 모르고 앞으로만 가는 꽁치의 몸부림이 우려낸 맛이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좋아하고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요리는 꽁치구이다. 비린내를 잡기 위해 매실에 담근 후 요리하면 살도 단단해져 좋다. 꽁치는 자주 뒤집으면 껍질이 벗겨지고 살도 부스러진다. 중불에 한 번 굽고 뒤집어 센불에 구워야 한다.
구룡포에서 먹은 음식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꽁치국이다. 꽁치국은 꽁치 외에 우거지를 꼭 준비해야 한다. 말린 무청 우거지를 삶아서 준비하면 좋지만 그렇지 않다면 배추를 삶아서 사용해도 괜찮다.
꽁치는 머리를 자르고 내장을 제거한 후 껍질을 벗기고 살을 칼로 다져서 준비를 해 둔다. 이때 살짝 얼려서 손질하면 좋다. 요즘에는 머리와 내장을 제거하고 뼈째 갈아서 사용하기도 한다. 우거지나 삶은 채소를 적당한 크기로 썰고 대파도 넣은 다음 물을 적당히 붓고 양념을 필요한 만큼 넣는다. 김장하고 남은 양념을 넣으면 좋다.
국물이 끓기 시작하면 다진 꽁치를 넣는다. 그리고 마늘을 다져서 넣으면 완성이다. 맛이 추어탕과 비슷하다 싶었는데, 포항에서는 ‘꽁치추어탕’이라 부르기도 한다.
생각보다 비린내가 나지 않지만 산초를 넣어서 먹는다. 막걸리 한 병을 비우기 전에 꽁치국이 바닥을 보였다. 인심 좋은 어머니가 덤으로 한 그릇을 더 주었다. 옛날에는 꽁치로 죽도 끓여 먹었다며 자랑을 덧붙였다. 김장철이다. 꽁치젓을 넣어 버무린 동해안 김치 맛, 그 맛이 궁금해진다.
글 사진 전남발전연구원 책임연구원 joonkim@jeri.re.kr
“묵어 봐라. 맛있다.”
경상도 사투리를 몰랐다면 손님에게 반말을 한다며 그냥 나갔을 것이다.
경북 포항의 과메기문화거리에 마련된 무대에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라며 나이 든 어머니의 열창이 이어졌다. 주민이 운영하는 임시 식당에 들러 과메기를 먹을까, 구이를 먹을까 고민하다 맛있고 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는다는 말에 꽁치국에 ‘영일만쌀 막걸리’ 한 병을 시키고 자리를 잡았다.
꽁치는 아가미 근처에 침을 놓은 듯 구멍이 있어 ‘구멍(空)이 있는 어류’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다산 정약용이 쓴 ‘아언각비’(1819)에 소개된 내용이다. 아마도 공치가 된소리로 바뀌면서 꽁치가 되었으리라. 가을에 맛있는 칼처럼 생긴 어류라 해서 ‘추도어’(秋刀魚)라고도 불렸고, 불빛을 좋아해 ‘추광어’라고도 했다. 집어등을 켜고 꽁치를 모아 그물을 내렸던 것도 이런 이유다.
영일만 일대의 어촌에서는 꽁치를 바닷바람에 말려 과메기를 만든다. 특히 구룡포읍 삼정리는 과메기 마을로 유명하다. 이맘때면 으레 해안의 덕장에 과메기가 그득하다. 이 마을에서는 눈 목(目)자를 ‘미기’, ‘메기’라 한다. 과메기란 ‘관목어’, 즉 눈을 꿰어 말린 생선을 말한다.
1910년대 최창선이 쓴 ‘소천소지’라는 유머집에는 이런 내용이 소개되고 있다. 동해안에 살던 선비가 과거를 보러 가다 배가 고파 해안가 나뭇가지에 눈이 꿰어 죽어 있는 물고기를 발견했다. 이를 찢어 먹었더니 맛이 너무 좋아 과거를 보고 내려와 겨울마다 집에서 청어나 꽁치를 그렇게 말려 먹었다.
조선시대에는 과메기를 청어로 만들었다. 지금은 청어 대신 꽁치가 그 자리를 꿰찼다. 머리를 떼 내고 내장과 뼈를 제거한 후 잘 씻어 덕장에 내걸고 기다리면 된다. 눈과 비를 가리고 반으로 갈라 놓은 등이 붙지 않도록 손질하는 것이 일이다. 이런 과메기를 ‘배지기’라 부른다.
구룡포 읍내를 벗어나 호미곶에 이르는 해안가 마을의 가을은 과메기와 함께 시작된다. 구룡포시장에서는 배를 따거나 반으로 쪼개지도 않은 채 짚으로 엮어 통째 말리고 있는 꽁치과메기를 만날 수 있다. ‘통마리’다. 통마리는 내장을 제거하지 않고 세척해 굴비처럼 엮어서 말리는 것이다.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보름 정도 말려야 한다. 배지기는 사나흘이면 상품이 된다. 과메기는 온도가 중요하다. 영하 5도에서 영상 5의 기온이 유지돼야 한다. 그리고 바람이 잘 부는 곳이 좋다. 이런 조건에서 과메기가 숙성된다.
▶▶ 어떻게 먹을까
꽁치는 꼬리가 노랗고 몸이 밝은 빛을 띠며 빳빳하고 딱딱한 것이 신선하다. 등 푸른 생선이 그렇듯 쉽게 변하기 때문에 잡은 즉시 얼음에 보관해야 한다. 그렇기에 꽁치물회는 뱃사람들이나 먹을 수 있는 특권이자 별식이다. 머리를 자르고 내장을 꺼낸 후 살을 발라 채소를 넣고 참기름과 고추장으로 쓱쓱 비벼 먹는다. 포항물회가 여기에서 비롯됐다는 말도 있다.
그물에 머리가 박힌 채 빠져나가려 꼬리를 흔들다 상처가 난 꽁치를 ‘파치’라고 한다. 녀석들은 상품 가치는 없지만 젓갈과 젓국으로 재탄생한다. 동해안의 어민들은 김치를 담글 때 꽁치젓이 들어가야 맛이 있다고 한다. 새우젓이나 멸치젓 대신 말이다. 뒤돌아볼 줄 모르고 앞으로만 가는 꽁치의 몸부림이 우려낸 맛이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좋아하고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요리는 꽁치구이다. 비린내를 잡기 위해 매실에 담근 후 요리하면 살도 단단해져 좋다. 꽁치는 자주 뒤집으면 껍질이 벗겨지고 살도 부스러진다. 중불에 한 번 굽고 뒤집어 센불에 구워야 한다.
구룡포에서 먹은 음식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꽁치국이다. 꽁치국은 꽁치 외에 우거지를 꼭 준비해야 한다. 말린 무청 우거지를 삶아서 준비하면 좋지만 그렇지 않다면 배추를 삶아서 사용해도 괜찮다.
꽁치는 머리를 자르고 내장을 제거한 후 껍질을 벗기고 살을 칼로 다져서 준비를 해 둔다. 이때 살짝 얼려서 손질하면 좋다. 요즘에는 머리와 내장을 제거하고 뼈째 갈아서 사용하기도 한다. 우거지나 삶은 채소를 적당한 크기로 썰고 대파도 넣은 다음 물을 적당히 붓고 양념을 필요한 만큼 넣는다. 김장하고 남은 양념을 넣으면 좋다.
국물이 끓기 시작하면 다진 꽁치를 넣는다. 그리고 마늘을 다져서 넣으면 완성이다. 맛이 추어탕과 비슷하다 싶었는데, 포항에서는 ‘꽁치추어탕’이라 부르기도 한다.
생각보다 비린내가 나지 않지만 산초를 넣어서 먹는다. 막걸리 한 병을 비우기 전에 꽁치국이 바닥을 보였다. 인심 좋은 어머니가 덤으로 한 그릇을 더 주었다. 옛날에는 꽁치로 죽도 끓여 먹었다며 자랑을 덧붙였다. 김장철이다. 꽁치젓을 넣어 버무린 동해안 김치 맛, 그 맛이 궁금해진다.
글 사진 전남발전연구원 책임연구원 joonkim@jeri.re.kr
2014-11-2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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