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 문제로 증거인정 안 한 이례적 재판
2015년 동네 뒷산에 화학물질 연구소가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주민들이 결성한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서모(42)씨는 건설사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됐다가 지난 5월 무죄를 선고받았다. 작성 경위 등을 문제 삼아 법원이 검찰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은 드문 사례로 꼽힌다.서씨는 건설현장 인부들과 주민들 간 물리적 충돌이 빚어진 책임을 덮어쓰고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됐다. 건설사는 서씨와 함께 시위에 나선 주민 여러 명을 고소했지만, 검사는 비대위원장인 서씨에게 대표로 책임지라는 식으로 추궁했다고 서씨 측은 밝혔다. 서씨 측 변호인인 배영근 변호사가 법원에 제출한 의견서에 따르면 사건 주임검사는 서씨에게 “여기 관계돼 있는 사람들을 모두 처벌해 버리면 이게 과연 옳겠느냐”거나 “아무도 책임을 안 진다고 하면 수사는 뭐 하러 하겠느냐”며 서씨가 업무방해 행위를 주도한 것처럼 요구했다. 더구나 변호인도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황에서 홀로 받기 시작한 조사였기 때문에 서씨는 제대로 된 방어권 행사를 하지 못했다. 서씨 측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백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심리적 부담감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서씨 측이 이 같은 검찰 자백조서 작성 경위를 호소하자 재판부는 ‘임의성(자발적 자백)에 문제가 있다’며 해당 조서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검찰의 피의자신문조서는 ▲적법성 ▲실질적 진정성 ▲임의성 중 하나라도 문제가 생길 경우 증거로 인정되지 않는 소송법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임의성 없는 자백은 ‘고문·강압·협박 등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진술하거나, 변호인 참여권 등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 경우’에 해당한다”며 “수사기관이 피의자를 위협한 정황을 문제 삼은 드문 사례”라고 평가했다.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2018-10-23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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