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머리 앤처럼… “길 모퉁이를 돌면 좋은 것이 있을 거라 믿어요” [강동삼의 벅차오름]

빨간머리 앤처럼… “길 모퉁이를 돌면 좋은 것이 있을 거라 믿어요” [강동삼의 벅차오름]

강동삼 기자
강동삼 기자
입력 2025-01-17 23:11
수정 2025-01-18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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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길 1코스 종달리 마을에서 만난 그림 벽화. 제주 강동삼 기자
올레길 1코스 종달리 마을에서 만난 그림 벽화. 제주 강동삼 기자


# 길에는 언제든지 모퉁이가 있는 법이다“이제 길모퉁이에 이르렀어요. 그 길모퉁이를 돌면 뭐가 있을지 모르지만, 전 가장 좋은 것이 있을 거라고 믿을래요.”

어릴때부터 책보다 만화로 먼저 본 ‘빨간머리 앤’(캐나다 작가 루시 모드 몽고메리 소설)은 장학금을 받고 대학을 갈 예정이었지만 고아였던 자신을 데리고 와 키워준 매슈 아저씨와 마릴라 아주머니(남매) 곁을 떠나지 않기로 결정하죠. 섬에 남기로 한 거죠. 프린스 에드워드 섬을 떠나지 않기로…

“낭만을 완전히 버리지는 말아라. 조금 남겨둬도 좋지 않겠니”라며 말하던 매슈아저씨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마릴라 아주머니마저 시력이 점점 악화되는 상황에서 자신의 야망만을 위해 섬을 떠날 수 없었던거죠.

삶이란 정해져 있지 않고 늘 뜻하지 않게 흘러가는 법이죠. 살다보면 소중한 그 무엇을 위해 다른 소중한 꿈을 포기해야 할 때도 있죠. 인생은 그런거죠.

하지만 앤은 섬에서 최선을 다해 살다보면 틀림없이 그만한 대가가 돌아올거라 믿었죠. 저 길모퉁이를 돌면 더 좋은 것이 기다리는 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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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길 1코스의 시작점 성산 시흥리마을 초입에는 올레길 상징인 간세다리가 있다. 길 모퉁이너머로 말미오름이 보이기 시작한다. 제주 강동삼 기자
올레길 1코스의 시작점 성산 시흥리마을 초입에는 올레길 상징인 간세다리가 있다. 길 모퉁이너머로 말미오름이 보이기 시작한다.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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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마을에 위치해 말미오름. 말의 머리처럼 생겼다해서 두산봉, 말들을 풀어놓았다 해서 몰미오름이라 불리는 말미오름. 제주 강동삼 기자
땅끝마을에 위치해 말미오름. 말의 머리처럼 생겼다해서 두산봉, 말들을 풀어놓았다 해서 몰미오름이라 불리는 말미오름. 제주 강동삼 기자


#15.1㎞의 시작점 제주올레의 첫 마을이자 서귀포의 시작점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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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말미오름, 알오름&올레1코스
<39>말미오름, 알오름&올레1코스
올레길 첫 코스 앞에서 섰어요. 성산포 시흥초교 옆 좁은 올레길 초입에는 서귀포의 시작, 제주올레의 첫 마을 시흥리 마을 이야기가 담긴 표지판이 눈에 먼저 들어와요. 시흥리가 속한 당시 정의군의 채수강 군수가 맨처음 마을이란 뜻으로 시흥리라는 이름을 붙였다죠. 제주에 부임한 목사가 맨 처음 제주를 둘러볼 때면 시흥리에서 시작해 종달리에서 순찰을 마쳤대요. 제주올레 1코스가 시흥리에서 시작해 종달리를 거치는 걸 보니 그 목사가 다녔던 길인가봐요.

길 모퉁이 앞에 서 있어요. 좁은 시멘트 길 모퉁이를 돌면 정말 뭔가 더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대감에 설레게 돼요. 모퉁이를 돌았어요. 말미오름(두산봉)과 함께 무밭이 펼쳐져요. 넓고 평화로운 시골 들녘이었죠.

마치 ‘빨간머리 앤’에서 린드부인이 사는 분지에 이르러서 시냇물마저 얌전한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처럼 조용히 흐르듯, 이곳도 말미오름을 지나는 들녘이 너무 평온해 그 평화를 깨뜨리고 싶지 않은 분위기였죠. 이따금 만나는 펜션들도 조용했으니까요.

그리고 언덕에 다다랐을 때에서야 한숨이 새어나왔죠. 이렇게 외진 언덕에 제주올레 안내소가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했으니까요. 앞서 한 무리가 안내소 입구에서 사진을 찍더니 말미오름으로 향했어요. 그들이 나처럼 15.1㎞의 행군을 시작하는 올레꾼들인지는 알 수 없었죠. 아마도 오름 탐방객일것 같았어요.

비가 올 것만 같은 일요일 아침, 홀로 길을 떠나는 사람은 나 뿐이었죠. 어느날 “제 ‘첫, 사랑’은 빨간머리 앤이에요” 라며 말하던 지인이 떠올랐죠. 마치 그 이후로 사랑은 ‘때묻어버린 사랑’이라는 듯한 어투가 놀라워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죠. 세르게이 예세닌의 시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가여워하지 않는다’의 마지막 구절처럼 ‘한번 사랑했던 사람은 이제 사랑할 수 없다/한번 불타 버린 사람을 태우지는 못하는 것’이라고 단정짓는 듯 했죠.

그만큼 ‘첫, 사랑’은 순결하고 고결한가봐요. 아무도 그 사랑을 말릴 수 없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것을 알기에 말리는 사람도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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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1코스 시작점 언덕에 위치한 올레길안내소. 제주 강동삼 기자
올레1코스 시작점 언덕에 위치한 올레길안내소.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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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미오름 정사에서 바라보이는 성산포. 제주 강동삼 기자
말미오름 정사에서 바라보이는 성산포.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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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미오름 정상에 세워진 간세. 제주 강동삼 기자
말미오름 정상에 세워진 간세.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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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미오름 정상 전경. 제주 강동삼 기자
말미오름 정상 전경.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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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미오름 정상 솔밭에서 노닐고 있는 말 한쌍. 제주 강동삼 기자
말미오름 정상 솔밭에서 노닐고 있는 말 한쌍. 제주 강동삼 기자


# 제 첫, 사랑은 빨간머리 앤… 땅끝 말미오름에서 성산포를 바라보다그런 이상한 상념에 빠져서 말미오름을 오르다 보니 금세 오르막을 다 올라와버렸네요. 15분여 걸렸나요. 땅끝에 위치해 있어 말미오름이라고도 불리는 두산봉(斗山峰)은 표고 145.9m예요. 말의 머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두산봉이라고도 해요. 아래로는 성산포의 들판이 펼쳐지고 수채화같은 성산 일출봉이 펼쳐져요. 게으름뱅이 ‘간세다리’의 눈을 호강시키는 전망이었어요.

물론 말을 많이 놓아 먹이던 곳이라 해서 ‘몰미오름’이라 했듯, 정상 아래 말 한쌍이 사이좋게 풀을 뜯고 있어요. 탐방로까지 가끔 올라오는지 곳곳에 분비물들이 널려 있고요.

보통은 오름 분화구 안에서 밭을 경작하는 경우를 보기 힘든데 이곳 분화구에는 밭농사까지 짓는 모습이 눈에 띄어요. 솔숲을 지나 밭농사를 짓는 분화구를 돌아 올레길 표시따라 산길로 접어들었어요.

또다른 오름 알오름으로 올라가는 갈림길이 나와요. ‘촐밭(풀밭의 제주어)’의 풀들이 베어져 돌돌 감겨 있는 들판에 서니, 두팔을 벌리고 고개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포즈를 취하게 돼요. 저절로. 바람에 몸을 맡기는 자유인처럼…

새알을 닮았다 해서 알오름은 성산포와 한라산, 다랑쉬오름까지 한눈에 볼 수 있는 오름이래요. 모구리오름이라고도 한다네요. 모로 누운 어미개의 형체라 해서 모구악이라고 하는데 굼부리 안의 알오름은 새끼 강아지인 셈이에요. 표고 232m, 비고 70여m로 나지막한 야산이지만 이름만큼 모양새가 특이해요. 정상에서 동쪽 등허리를 따라 내려가다보니 먼저 지나간 무리들이 모여 마치 소풍나온 듯 앉아 쉬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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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미오름에서 보이는 우도(왼쪽)와 성산포. 제주 강동삼 기자
말미오름에서 보이는 우도(왼쪽)와 성산포.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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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미오름 지나 산길을 걷다가 만나는 촐밭 갈림길 오른쪽으로는 알오름으로 가는 길이다. 제주 강동삼 기자
말미오름 지나 산길을 걷다가 만나는 촐밭 갈림길 오른쪽으로는 알오름으로 가는 길이다.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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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오름 간세와 올레길 화살표. 제주 강동삼 기자
알오름 간세와 올레길 화살표.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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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미오름에서 본 것과 비슷한 알오름 정상에서 만나는 성산포와 우도. 제주 강동삼 기자
말미오름에서 본 것과 비슷한 알오름 정상에서 만나는 성산포와 우도.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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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오름으로 내려오는 등허리 풍경. 제주 강동삼 기자
알오름으로 내려오는 등허리 풍경.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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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오름에서 내려오다가 만난 당근밭. 제주 강동삼 기자
알오름에서 내려오다가 만난 당근밭.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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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달리마을 종달초등학교 뒷골목길. 제주 강동삼 기자
종달리마을 종달초등학교 뒷골목길. 제주 강동삼 기자


#종달여행…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첫사랑의 모습을 만나다어쨌든, 1코스의 난코스를 지나온 듯해 마음이 홀가분해졌어요. 무밭과 당근밭들을 지나다 보니 어느새 종달리 마을로 가는 대로변까지 도착했어요.

인근에서 허기를 달랠 겸 종달초등학교 골목길에 접어들었는데 ‘종달여행’이라는 건강한 한상차림 밥집이 소담스럽게 앉아 있네요. 가정집을 개조한 아담한 식당으로 삼청동 골목길에서 만나는 밥집과 닮았어요. 옥돔구이와 제육볶음이 나오는 상차림 또한 정갈해 호사스런 올레꾼으로 변했어요. 지나가는 나그네가 마치 대감집에서 대접받는 기분이었죠.

종달리 마을에 반했어요. 골목골목이 아기자기하고 예쁜 올레길이 이어지더라구요. 집집 벽들마다 형형색색 벽화그림이 소위 ‘갬성’을 자극했죠. 수국꽃, 해바라기꽃, 백합, 나팔꽃 등 아름다운 그림벽화들을 보며 걷는 재미가 쏠쏠해요. 옛 소금밭가는 길을 따라 걷다가는 진한 커피향에 빠져 커피 한잔을 테이크아웃해 야외벤치에서 잠시 쉼표, 를 찍어 봤어요.

오랜만에 느끼는 ‘소확행’이었어요.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첫사랑을 만난 기분이었죠. 변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크게 변하지 않고 옛 순수함이 묻어나는 미소가 그대로인 ‘첫, 사랑’.

분명 어른스럽게 새단장했지만, 꽃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거기 서 있었어요. 종달리마을이 그런 첫사랑 같은 마을이었어요. 그래서 소소한 행복을 느꼈어요. 빨간머리 앤이 매슈아저씨 초록지붕의 집을 떠나고 싶지 않았듯이 그곳을 오래도록 걷고 싶고 떠나고 싶지 않았어요. 밥집 이름처럼 ‘종달여행’이 그랬어요. 예전에도 와봤지만, 그땐 차로 지나쳤던 곳이에요. 걸으니까 보이는군요. 안 보이던 것들이, 시골스럽지만, 투박하지도 않고 소박한 돌담길 올레의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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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달리마을 올레길에서 만난 그림벽화와 팽나무, 그리고 염전밭가는 길. 제주 강동삼 기자
종달리마을 올레길에서 만난 그림벽화와 팽나무, 그리고 염전밭가는 길. 제주 강동삼 기자


#새떼들의 맘명지 종달해변… 옛 염전밭을 걷다제주도 최초의 염전 종달염전은 제주염전의 효시인 동시에 소금생산의 주산지였대요. 종달 천연염에서 생산한 소금은 조정에 진상은 물론 전라도 지역까지 보내졌을 정도로 품질이 뛰어났대요. 1900년대초 종달리마을 353가구 가운데 160명이 소금 생산에 종사했고 소금을 생산하는 가마도 46개나 있었다고 하네요. 소금하면 종달, 종달하면 소금이라고 할 정도였다나봐요. 지금은 염전지가 수답으로 바뀌었지만, 갈대밭을 지날 때마다 이곳이 바다의 염전밭이었음을 실감나게 돼요.

갈대밭 가운데 ‘소심한 책방’을 지나다보면 종달9경 중 7경인 철새 도래지 습지에서 새들이 인기척에 놀라 푸드드득~하며 흐린하늘 위로 날아가요. 새떼들이 어디서 망명왔는지 모르지만, 어디로 망명왔는지 깨달았죠. 종달해변…

올레길 1코스의 속살은 종달마을 안 올레길에서 만난 듯 해서 행복했어요. 지미봉을 스쳐 지나 종달리해변길을 따라 걷는 길도 멋진 풍광이어서 좋지만, 백미는 종달마을이었던 것 같아요.

종달리 해변을 걷다가 한치를 말리는 모습과 조우했어요. 차귀도 가는 길에서 보던 풍경도 달라 한치를 구워달라고 했어요. 마요네즈에 찍어 먹으며 바닷길을 걸었어요. 다음엔 가족과 걸어도 좋을 것 같았어요. 보석과 같은 반짝이는 푸른 바다 위로 철새들이 은빛 날개를 퍼득이며 날아올랐어요. 바닷가에서 떼지어 노는 철새들 너머로 우도가 아른거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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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달9경 중 7경 철새도래지 습지. 제주 강동삼 기자
종달9경 중 7경 철새도래지 습지.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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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달9경 중 7경 철새도래지 뒤편으로 지미봉이 보인다. 제주 강동삼 기자
종달9경 중 7경 철새도래지 뒤편으로 지미봉이 보인다.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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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달리 해변. 제주 강동삼 기자
종달리 해변.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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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치를 말리고 있는 종달해변의 오후. 제주 강동삼 기자
한치를 말리고 있는 종달해변의 오후.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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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일리카페 야외 전망대 포토존. 제주 강동삼 기자
헤일리카페 야외 전망대 포토존. 제주 강동삼 기자


#해일리, 이생진의 성산포, 그리고 조가비 비석 앞에 서다목화휴게소 근처에서 중간 스탬프를 찍고 걷기 시작할 때쯤 신호가 오기 시작했어요. 올레길을 몇번 걷다보니, 약 10㎞쯤 걸었을때가 가장 참기 힘든 것 같아요. 마의 구간인 것 같아요. 다리가 너무 아파오더군요. 포기하고 싶어지죠. 하지만 여기서 끝낼 수 없죠. 성산일출봉이 저기 보이는데, 그곳만 지나면 광치기해변 종점인데 멈출 수 없었죠. 오소포연대를 지나 오조해녀의집을 지나 성산항을 지났어요. 통증이 극에 달하기 시작하더군요. 성산항에서 성산일출봉가는 길은 처음이었어요. 생경한 길 모퉁이를 지나게 된거예요. 길 모퉁이를 지나면 뭔가 좋은 일이 벌어질 것 같아 희망이 다시 생기더군요. 빨간머리 앤처럼요.

해일리 호텔 겸 카페가 나를 반겼어요. 어린 아이가 성산일출봉 바다로 뛰어들것 만 같은 그네를 타고 있었죠. 사람들은 야외 쿠션소파에 앉아, 벤치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어요. 우리가 다 아는 그리운 바다 성산포 시집의 주인공 이생진의 시인의 거리였어요. 성산포에서는 설교를 바다가 하고 목사는 바다를 듣는다죠. 성산포에서는 사람보다 바다가 더 잘산다죠.

그 이생진 시비 거리 옆에는 2023년 9월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과 ‘우정의 길’ 협약 1주년을 맞아 이곳에 산티아고 순례길의 상징인 조가비 비석을 세웠어요. 물론 산티아고 순례길에는 제주올레의 길표식인 간세가 먼저 설치됐고요.

예수의 제자인 성 야고보를 기리기 위해 9세기부터 걷기 시작한 산티아고 순례길. 은퇴자들의 버킷리스트로 꼽는 곳이죠. 총 10개의 루트 중 순례자가 제일 많이 찾는 곳은 프랑스 길로, 산티아고 대성당으로 향하는 마지막 여정인 아르카(Arca)구간이 제주올레 1코스와 우정의 길로 맺어졌어요. 순례자들이 흐르는 시냇물에 몸을 씻는 전통이 있는데 순례자들이 쉬어가는 몬테 도 고소(Monte do Gozo) 언덕에 순례자 동상옆에 제주올레 간세가 세워졌대요. 다음에 꼭 가보고 싶어요. 이 조가비 표지석을 보니까 더 간절해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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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목마 타고 있는 아이가 성산포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제주 강동삼 기자
아빠 목마 타고 있는 아이가 성산포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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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일리카페에서 그네타는 아이(왼쪽)와 올레길 1코스 우정의 길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상징인 조가비 비석. 제주 강동삼 기자
헤일리카페에서 그네타는 아이(왼쪽)와 올레길 1코스 우정의 길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상징인 조가비 비석.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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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생진시인의 그리운 바다 성산포 시비. 제주 강동삼 기자
이생진시인의 그리운 바다 성산포 시비.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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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일리 카페 인근에서 바라본 성산일출봉. 제주 강동삼 기자
헤일리 카페 인근에서 바라본 성산일출봉. 제주 강동삼 기자


# 일상으로 돌아가는 꿈을 꾼다… 올레길에서 우리는 언제나 모퉁이를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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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 해녀의 집 앞에 있는 포토존. 제주 강동삼 기자
성산 해녀의 집 앞에 있는 포토존.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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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일출봉 동쪽 우뭇개해안쪽 바다. 제주 강동삼 기자
성산일출봉 동쪽 우뭇개해안쪽 바다.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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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일출봉 서쪽 해변 수마포 해변. 제주 강동삼 기자
성산일출봉 서쪽 해변 수마포 해변.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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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길 1코스 종점 광치기해안으로 가는 길. 제주 강동삼 기자
올레길 1코스 종점 광치기해안으로 가는 길.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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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성산읍지역 양민집단학살터 표지석이 있는 터진목에 세워진 조형물 ‘해원의 문’. 제주 강동삼 기자
제주4·3 성산읍지역 양민집단학살터 표지석이 있는 터진목에 세워진 조형물 ‘해원의 문’. 제주 강동삼 기자


오늘도 어김없이 성산일출봉 주차장은 만원이에요. 정국이 어수선해도 그래도 제주의 대표 관광지는 북적여서 마음이 살짝 놓였어요. 얼마나 다행이에요? 여기 마저 썰렁했다면, 아마 제주의 경제는 멈췄을거예요. 관광객이 없는 제주를 상상해봐요. 올레꾼이 없는 제주올레길을 상상해봐요.

정상적인 일상을 그리워해요. 예전처럼 평범하게 지내는 일상을 손꼽아 기다려요. 유일하게 이곳에서만 해가 뜬다고 부산떠는 성산포에서 간절한 소망을 기도했어요.

성산일출봉 서쪽바다 수마포 해변도 걸어야 보이는, 만나는 기분좋은 해변이에요. 걷지 않으면 모르는 길이에요. 성산일출봉 아래 작은 해변이 있다는 걸 아셨나요.

종점 근처에서는 4·3의 비극과도 만나 먹먹해졌어요. 제주4·3 성산읍지역 양민집단학살터 표지석이 있는 터진목이에요. 지금은 새로운 조형물이 세워졌어요. 해원의 문이죠. 한국 현대사의 비극인 4·3을 직시하고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감시자로서의 눈과 호소하는 눈물의 형태를 띠고 있어요. 저는 마치 어떤 약속의 증표같은 반지 같아 보여요. 그 둥근 문 너머로 성산일출봉이 보여요. 그리고 원 안에는 저 미치도록 아름답고 투명에 가까운 블루, 성산포바다를 바라보며 죽어간 4·3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요. 성산 터진목 4·3희생자 성산리 송기공 신수길 임영박 오조리 강두선 강승석… 이 학살터에서 희생된 214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요. 1948년 제주4·3사건 당시 성산읍을 비롯한 인근 구좌읍, 표선면, 심지어 남원읍 사람들까지 400여명이 학살된 곳이에요. 가슴이 먹먹해지면 머리를 숙여 묵념하시면 될 것 같아요.

마지막 광치기해변 모래사장을 걸을때 처음으로 올레길을 홀로 걷는 올레꾼과 조우했어요. 뚜벅뚜벅 걷는 폼이 터벅터벅 걷는 저보다는 생기 넘쳐요. 앞서 걷는 그를 따라 광치기해변 모래밭을 걷기 시작했어요. 스탬프 도장이 있는 그곳으로. 시간은 어느새 오후 4시가 다 되고 있었어요.

문주란이 자라는 모래 언덕 모퉁이에요. 그 모퉁이를 돌면 뭔가 좋은 것이 날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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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길 1코스 종점 광치기해변. 제주 강동삼 기자
올레길 1코스 종점 광치기해변.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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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길 1코스 완주 후 패스워드에 찍은 스탬프, 1코스 종점과 광치기해변. 제주 강동삼 기자
올레길 1코스 완주 후 패스워드에 찍은 스탬프, 1코스 종점과 광치기해변.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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