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화의 더 정치] 교육부, 정책 변화 없이 대학에 책임 전가
학령인구 감소로 미충원… 정책 대응 실패
2009년부터 등록금 동결 대학 적자 증가
대학들 위기 배경으로 정부 원죄론 꼽혀
대학 입학정원 대폭 축소 고통 분담해야
국가 재정 지원… 발전기금 등 수입원 발굴
사립대 공공성 높여 공영대학으로 전환
낡은 시스템 버리고 패러다임 전환하길
국회 교육위원회가 지난해 12월 8일 ‘국가교육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 공청회를 열었지만 국민의힘 소속 위원들은 일방적 회의진행을 문제 삼아 불참했다. 국가교육위 설치에 대해 교육계에서는 한국 교육패러다임이 전환될 계기라고 주장하지만, 일부는 옥상옥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서울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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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관리대상 전락… 실적 못 내면 ‘퇴출’
연초부터 대학 문제가 터져 나오더니 결국 국회 공청회까지 열렸다. 교육부가 해야 할 일을 국회가 대신한 셈인데 공청회에서 고등교육의 위기 상황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교육부에 대한 질책이 쏟아졌다. 이에 대한 교육부의 답변에 해당하는 대책이 “대학의 체계적 관리 및 혁신지원전략”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됐다. 대학은 교육부의 관료들이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전락했고 교육부의 관리체계 안에서 실적을 내지 못하는 대학은 폐교될 운명이 됐다.
사실 우리나라 대학에 문제가 많지만 교육부의 책임도 크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부가 아무런 정책 변화 없이 대학의 문제점만 거론하는 것은 책임을 대학에 전가하는 것이다. 최근 드러난 고등교육의 위기에서 원인을 살펴보자. 원인은 학생 부족, 재정 부족, 지방대학의 위기, 사립대학의 문제 등 네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학생 부족은 분명하게 드러나는 원인이다. 저출산으로 학령인구가 감소한 결과인데 올해 입시에서 처음으로 대규모 미충원이 발생하면서 미증유의 사건으로 부각됐다. 대학이 학생을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대학을 선택하는 상황이 됐다. 이 상황은 인구절벽의 대학대란으로 예고됐던 일이지만 교육부는 대응에 실패했다.
둘째, 재정 부족은 일부만 드러났는데 장기간의 대학 등록금 동결이 일차적인 원인이다. 교육부 정책으로 2009년부터 등록금이 동결되기 시작해서 최근에는 대학 입학금까지 폐지됐다. 이 시기에 공무원 급여가 복리로 43% 인상됐으니 대학의 지출도 증가했겠지만 등록금 수입이 줄어들면서 대학은 만성적인 재정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셋째, 대학의 양극화로 학생과 재정의 부족이 지방대학에 가중되면서 지방대학이 타격을 받고 있다. 특히 지방 사립대학의 어려움이 크다. 지방 사립대학은 수도권에 비해 모든 조건이 열악한데 재학생 중도이탈률이 증가하고 대규모 입시 미충원까지 겹치면서 큰 위기에 빠졌다.
넷째, 앞의 세 가지 원인에 사립대학의 취약성을 추가하면 위기의 본질이 드러난다. 우리나라 대학은 대부분이 사립대학인데 사립대학들이 등록금에 의존해 폐쇄적으로 운영되다가 등록금이 동결되고 학생이 줄어들면서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이 네 가지가 위기의 원인이다. 한 문장으로 종합하면 사립대학 중심의 대학체제와 대학의 양극화라는 구조 위에 부가된 최근의 등록금 동결과 학령인구 감소가 위기를 불러온 것이다. 이런 점에서 위기는 사립대학의 위기이자 지방대학의 위기이며, 특별히 지방 사립대학의 위기이다. 왜 이렇게 됐나?
위기의 배경에 정부의 정책 실패가 존재한다. 정부 원죄론인데 지금의 사립대학체제를 만든 것이 정부이고 최근의 위기도 정부 책임이다. 학생 부족과 재정 부족이 반드시 위기로 발전해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인데 교육부가 학령인구 감소에 대응하지 않고 등록금 동결의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아 문제가 악화됐다. 교육부의 정책 실패가 위기로 발전한 것이다.
등록금 동결 이후 상황을 보자. 한국교육개발원이 141개 사립대학을 대상으로 2012년부터 2018년까지의 운영 실태를 조사했다. 2012년에는 97개 대학이 흑자이고 44개 대학만 적자였는데 2018년에는 75%인 105개 대학이 적자이고 흑자 대학은 36개에 불과했다. 많은 대학이 적자로 돌아섰고 지방대학은 대부분 적자를 면치 못했다.
금액으로 보면 2012년에 대학 전체의 흑자는 7699억원, 대학당 평균 흑자는 55억원이었다. 그러나 2018년에는 급반전해서 총적자액이 2757억원, 대학당 평균 적자는 20억원을 기록했다. 적자가 계속 증가하고 있는 데다 2020년의 코로나 상황과 올해의 대규모 입시 미충원으로 2021년에는 사실상 거의 모든 대학이 적자 상태로 빠져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전국의 대학들이 재정 적자인데도 교육부가 관리만을 강조하는 이 상황이 고등교육의 비감한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위기의 원인을 네 가지로 지적했듯이 고등교육의 위기가 복합적인 만큼 해법도 단기 해법과 중장기 대안이 동시에 필요하다. 당장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해법이 필요하고, 지금까지 잘못돼 온 대학체제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긴 안목을 가지고 중장기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단기 해법은 학생과 재정의 부족 문제를 즉각 해결해 당장의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학령인구 감소를 돌이키기 어려우므로 고통 분담 차원에서 모든 대학의 입학정원을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학령인구 감소가 지방대학의 소멸로 이어지지 않도록 수도권 대학, 연구중심대학, 학부 대형 대학의 정원을 대폭 감축해야 한다. 입시에서 정원 외 입학을 폐지하고 편입학도 최소화해야 한다.
등록금 동결이 재정 적자의 원인인 상황에서 등록금 자율화를 허용하지 않는 한 재정 부족 문제는 일단 국가의 재정 지원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국회 공청회에서도 공감대를 확보한 것처럼 등록금 동결에 따른 재정 결손에 대해서는 우선적으로 국가 재정으로 충당하면서 발전기금을 포함한 다양한 수입원을 발굴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실적 단기 해법과 중장기 대안 마련해야
중장기적 대안의 핵심은 사립대학 중심의 대학체제를 건강한 체제로 바꾸는 것이다. 그렇다고 사립대학을 무작정 줄일 수 없고 학령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국공립대학을 신설할 수도 없으므로 사립대학의 성격을 바꾸어 공공성을 높이는 공영대학의 방책이 바람직하다. 공영대학은 법률상 사립대학이지만 국가의 지원을 통해서 국공립대학 수준의 공익성과 발전 가능성을 담보하는 특별한 사립대학으로 정의할 수 있는데, 공영대학을 확대하면 대학의 건강성을 회복할 수 있다.
아울러 이제는 대학무상교육을 준비할 때가 됐다. 과거에는 대학 진학이 선택이었고 일부 국민만 혜택을 받았지만, 지금은 고등학교 졸업자의 70% 이상이 대학에 진학하는 데다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대학에 갈 수 있는 보편교육이 됐다. 그리하여 대학이 법률상 의무교육은 아니지만, 의무교육에 준하는 전 국민 보편교육의 단계에 이르렀으므로 이에 부합하는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나라 고등교육이 일대 전환기에 이르렀다. 고등교육 전체가 위기에 직면했다는 점에서 상황적 전환기이고 등록금에 의존하는 사립대학체제에서 벗어나 공공성에 기반을 둔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대학체제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에서 구조적 전환기다. 사립대학 중심의 낡은 껍질을 깨고 공영대학과 대학 무상교육으로 새로운 미래상을 만들 때가 된 것이다. 더욱이 이러한 시점에서 사학비리나 교육비리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므로 사학비리 일휘소탕 혈염산하(私學非理 一揮掃蕩 血染山河)의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고등교육의 패러다임 전환에 대해서 정부와 국민이 함께 합의할 것이 있다. 해방 후 70년 동안 국가는 고등교육을 민간에 떠넘긴 채 방치했고, 사립대학이 늘어나면서 사학비리가 창궐했으며, 정부는 책무는 게을리한 채 통제만 했다. 그러나 사립대학 중심, 과도한 등록금 의존, 사학비리, 교육부의 관료적 통제로 대표되는 이 방식은 실패한 낡은 시스템이다. 국가가 적극적으로 고등교육을 진흥하면서 대학의 자율성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새로운 고등교육체제를 만들어야 하며, 그 체제를 국가교육위원회가 담당해야 한다.
상지대 총장
2021-05-25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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