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중림동 ‘성 요셉 아파트’
성 요셉 아파트. 뭔가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름이다. 가톨릭 성자의 이름이 붙은 아파트라니? 게다가 한국 최초의 서양식 성당으로 일컬어지는 약현 성당이 바로 옆에 있다니? 약현 성당은 명동 성당보다 6년 앞선 1892년에 세워졌다. 설계자도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의 코스트 신부로 명동 성당과 같다. 명동 성당은 사대문 안, 약현 성당은 사대문 밖과 그 너머의 경기도와 황해도 일부까지에 이르는 넓은 지역을 관할하는 등 역할의 분담이 있었다. 명동 성당의 주보성인이 성모 마리아였기 때문에 그 준비 과정에 해당하는 약현 성당은 마리아의 남편인 성 요셉을 주보성인으로 모셨다고 한다(*이상 약현 성당 홈페이지 참조). 그런데 그 중요한 주보성인의 이름이 바로 성당 옆 아파트에 붙여진 것이다. 대중적인 지명도는 낮지만 아파트 연구가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건물이다.고갯길 최정상에서 내려다본 성 요셉 아파트. 이 사진에서는 3층 건물 같지만 실제로는 총 7개 층이 있다.
건축가 황두진 제공
건축가 황두진 제공
예를 들어 이 연재에서 다룰 예정인 신문로의 피어선 아파트 또한 같은 맥락에서 지어진 건물이다. 다만 개신교인 장로교 교단과 관련됐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가톨릭과 개신교가 공통적으로 주상복합 아파트를 지었다는 점은 자못 흥미롭다. 이 두 건물은 지어진 연대도 비슷하다. 성 요셉 아파트는 1971년 6월 20일에, 피어선 아파트는 같은 해 11월 10일에 각각 사용 승인을 받았다.
중림시장에서 성 요셉 아파트(점선)로 올라가는 언덕길. 한림학사는 별도의 건물이다.
건축가 황두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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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셉 아파트의 답사는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 인근의 서소문 공원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 약현 성당 자체가 한국 가톨릭의 순교지인 이 서소문 처형장 터를 내려다보는 장소에 지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인 최초로 영세를 받은 이승훈의 집 또한 이 근처였다고 전한다. 약현(藥峴)이라는 이름은 ‘약초밭이 있던 고개’를 의미하며 지금의 중림로가 바로 약현이다. 이처럼 고개 옆 언덕 위에 지어진 약현 성당에서는 그 주변 일대가 잘 내려다보였을 것이다. 사실 이 서소문 처형장은 지난번 서소문 아파트 편에서 이야기한 욱천, 즉 만초천의 모래사장이었다. 지금은 복개됐으나 유난히 모래가 곱고 아름다웠다고 하는 바로 그 하천이다. 모래라서 처형된 사람의 피가 금방 스며들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만초천 위에 지어진 서소문 아파트도 여기서 경의중앙선 철길 하나만 건너면 바로 지척이다.
청파로로 들어서서 브라운스톤 북서쪽 코너에서 보면 주변의 고층 빌딩 사이로 뾰족탑, 그리고 그 앞에 길게 누워 있는 누런색의 건물이 보인다. 약현 성당과 성 요셉 아파트다. 약현 성당이 능선 위에 있다면 성 요셉 아파트는 그 바로 아래에 낮게 깔려 있다. 하지만 이 정도 높이의 건물로도 성당 북쪽으로의 경관은 거의 다 막힌다. 그 방향으로 서소문 공원도 일부 있기 때문에 애초에 이 자리에 성당을 지은 취지에 위배되는 배치다. 지금이야 워낙 고층 건물이 많아서 경관이 거의 다 막혀있지만 성 요셉 아파트가 건립된 1970년대 초만 해도 이 일대에 높은 건물은 거의 없었다. 당시 성 요셉 아파트의 건립은 약현 성당으로서는 매우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성 요셉 아파트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언덕을 올라본다. 청파로를 향해 우뚝 선 한림학사가 이 아파트의 일부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두 건물은 서로 떨어져 있다. 이 일대는 시장 지역이다. 한때 칠패(七牌)시장으로 불렸고, 지금의 이름은 중림시장이다. 마포에서 만리재를 넘어온 어물과 곡물을 파는 시장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조선 시대에는 종루, 즉 종로의 시전을 능가하는 큰 규모였으나 상권이 많이 축소된 지금도 아침이면 어물 시장이 열린다. 그 시장의 일부가 좁은 언덕길을 따라 오르는데 그것이 성 요셉 아파트의 저층부를 이룬다. 통인시장과 한 몸을 이룬 효자 아파트나 인왕시장에 인접한 원일 아파트를 연상케 한다. 그 시장의 소음과 혼잡으로부터 성당을 보호하기 위해 이 아파트를 지었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늦은 오후의 햇살이 비추는 약현 성당. 왼쪽 나무 뒤로 성 요셉 아파트가 보인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이런 장소가 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건축가 황두진 제공
건축가 황두진 제공
성당으로 들어가는 길과 성 요셉 아파트로 들어가는 길은 완전히 분리돼 있다. 아파트 옆 언덕길 어딘가에 성당으로 들어가는 부출입구가 있지 않을까 궁금해 직접 찾아도 보고 주민들에게도 물었는데 찾지 못했다. 약현 성당의 부출입구는 완전히 반대쪽인 중림로 쪽으로 나 있다. 즉 적어도 현재 상황으로 보면 약현 성당과 성 요셉 아파트는 인접해 있을 뿐 별다른 물리적 연결 고리 없이 분리돼 있다. 모르고 보면 경관이나 접근 등의 측면에서 성당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이 들어선 건물 같은데, 막상 건립 주체가 성당이었다니 좀 의아하다.
두 건물 사이의 긴장된 관계는 성 요셉 아파트 안에 들어가 보면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성 요셉 아파트의 복도는 약현 성당 쪽으로 나 있다. 이쪽이 남쪽이므로 결국 이 아파트는 북향이다. 즉 주거 가구는 약현 성당으로부터 완전히 등을 돌리고 있다. 남향 선호가 워낙 강해 마주 보는 중정형 아파트에서도 이에 대한 고민이 심각하다는 것을 이 연재에서 여러 번 이야기한 바 있다. 그런데 이 아파트에서는 그런 고뇌가 아예 읽히지 않는다. 아파트를 짓기는 짓되 시선은 성당 밖으로 돌리려는 의지가 있었던 것 같다. 복도에 창이 나 있지만 상당히 높아서 성당 쪽을 잘 볼 수 없게 해 놓은 것도 유사한 맥락으로 읽힌다. 하지만 그런 덕분에 사적 252호로 지정된 이 유서 깊은 장소가 갖는 안온하고 경건한 분위기가 잘 유지되고 있음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약현 성당 마당 한구석에 앉아 늦은 오후의 햇살이 성당 벽면에 드리우는 것을 보고 있으면 서울 시내 한 복판에 이런 장소가 있다는 것이 기적 같은 일로 느껴진다.
약현 성당이 세운 건물치고는 성당과의 관계가 좀 뜻밖이라 그렇지 사실 성 요셉 아파트는 지금의 관점으로 봐도 배울 것이 많은 건물이다. 일단 지형의 흐름에 철저하게 순응하고 있는 건물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있는 그대로의 고갯길을 따라 지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지형과 건물, 그리고 길 사이에 서로 떼려고 해도 뗄 수 없는 관계가 만들어졌다. 툭하면 대지를 평탄화해서 경사지를 계단으로 만들어 버리는 요즘의 태도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국토 대부분이 경사지인 한국에서 경사지를 최대로 이용하는 건물의 유형이 발달하지 않았음은 상당히 부끄러운 일이다. 이 오래된 아파트가 이 문제에 대해 상당히 선도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내부의 공간 구성 방식이다. 경사지를 따라 아래에서 올라가다 보면 건물이 한 층씩 한 층씩 줄어들게 된다. 그러다 보면 조형적으로나 동선적으로 혼란이 생길 수도 있는데 성 요셉 아파트는 이 문제를 비교적 간단하게 해결하고 있다. 즉 건물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고 그 중간과 양 끝에 계단실을 두어 편복도로 연결한 것이다. 건축물 관리대장에도 이 두 부분이 명확하게 나뉘어 있다. 그래서 개념적으로나 물리적으로 건물의 전체적인 윤곽이 단순하다. 다만 이런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 저층부의 각 부분에서 레벨을 미세하게 조절한 흔적들이 많이 보인다. 전체적으로 보면 가장 낮은 층을 기준으로 볼 때 가장 높은 층은 7층에 해당한다.
실제로 건물 안을 다녀보면 처음에는 미로 같지만 금방 구성의 논리를 알게 된다. 주어진 문제를 매우 간결하고 상식적으로 해결하고자 한 설계자의 생각이 읽히는 부분이다.
# 선형식 서소문 아파트와 닮은 듯 다른 매력
성 요셉 아파트 최대의 특징은 역시 가장 대표적인 선형식 아파트라는 점이다. 특히 이 유형에서 최대의 라이벌이라고나 할 서소문 아파트가 또한 지척이다. 이 두 아파트는 여러 모로 비교 대상이다. 일단 지어진 시기도 비슷하다. 서소문 아파트는 1971년 1월 23일에, 성 요셉 아파트는 1971년 6월 20일에 사용 승인을 받았으니 이 둘은 동갑이다. 게다가 마치 자로 잰 것처럼 두 건물의 길이도 115m 내외로 비슷하다. 공통점은 또 있다. 둘 다 곡선형 건물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중간에 두 군데가 꺾인 직선의 조합이다. 만약 완전히 곡선으로 지었으면 개념이나 조형면에서는 근사했겠지만 가구 배치, 콘크리트 타설 등에서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당시 기술로서는 이것이 최선이자 유일한 해결책이었을 것이다.
두 아파트의 차이점도 많다. 서소문 아파트가 만초천이라는 물길 위에 자리 잡은 것처럼 성 요셉 아파트도 물길 위에 지어진 것이라는 자료가 여기저기에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오류다. 물길에 대해 매우 자세한 조선 시대나 일제강점기의 지도 어디를 봐도 이 자리에 물길은 없었다. 성 요셉 아파트는 그냥 자연 지형 위에 지어진 건물일 뿐이다. 토지대장에도 종교용지로서 면적이 1790.8㎡에 달한다는 기록이 엄연히 나와 있다. 물길 위에 지은 건물이면 다르게 기술됐을 것이다. 또한 서소문 아파트가 계단실형인 데 반해서 성 요셉 아파트는 편복도식이다. 서소문 아파트는 거의 평지에 면하고 있지만 성 요셉 아파트는 경사지에 지어졌다. 한국의 대표적인 두 선형식 아파트가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 서로 저마다 다른 이야기와 건축적 가치를 보여 주고 있음은 매우 즐거운 일이다.
꼭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 화려하고 눈에 띄는 건물만이 우리에게 감동과 의미를 주는 것은 아니다. 이 두 아파트는 설계자가 누구인지도 알려져 있지 않다. 익명의 존재가 계획하고 구상한 건물들인 것이다. 다만 지어진 지 45년에 불과한 두 건물이 너무 낡은 상태로 있는 것은 안타깝다.
약현 성당이 1892년에 지어져 무려 124년이나 나이를 먹었고, 그 사이에 한국전쟁, 심지어 1998년에 취객의 방화로 인한 화마까지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안팎 모두 멀쩡하게 잘 남아 있는 것에 비하면 더욱 그렇다. 모쪼록 중년을 맞은 이 두 아파트가 앞으로도 그 자리에서 많은 사람들의 삶을 담는 그릇으로 건강하게 잘 남아 있기를 바랄 뿐이다.
2016-09-06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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