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혜리 선임기자의 미술관 건축기행] (16)스위스 바젤의 신개념 미술관들

[함혜리 선임기자의 미술관 건축기행] (16)스위스 바젤의 신개념 미술관들

입력 2014-11-26 00:00
수정 2014-11-26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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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도 수장고도 아닌… 느끼고 생각하는 공간

미술관·박물관의 도시로 불리는 스위스 바젤에서 예술과 건축을 테마로 여행을 하다 보면 독특한 기능과 외형을 지닌 기념비적인 미술관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두 곳을 꼽자면 샤울라거(Schaulager)와 비트라 캠퍼스다. ‘샤울라거’는 독일어로 ‘보다’를 뜻하는 ‘샤우언’(schauen)과 ‘창고’를 뜻하는 ‘라거’(lager)의 합성어다. 미술관의 이름에서 기능과 역할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보는 창고’로 직역되는 이곳은 ‘보여 주기 위한 쌓아 두기’를 실천하는 수장고형 미술관으로 일반 대중보다는 미술관을 연구하고 미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꼭 가 보고 싶은 미술관으로 꼽는다. 스위스에 본사를 둔 가구회사 비트라(Vitra)가 세운 비트라 캠퍼스는 프랑크 게리, 알바로 시자, 자하 하디드, 니컬러스 그림쇼, 안도 다다오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현대 건축가들의 작품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곳이다.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는 미술관 건축의 진화를 보여 주는 바젤의 신개념 미술관 두 곳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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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미술관의 개념에서 탈피해 ‘보는 수장고’를 구현한 바젤의 샤울라거. 두꺼운 벽면은 일정한 온도를 필요로 하는 수장고의 기능에 적합하다.
전통적인 미술관의 개념에서 탈피해 ‘보는 수장고’를 구현한 바젤의 샤울라거. 두꺼운 벽면은 일정한 온도를 필요로 하는 수장고의 기능에 적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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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라 캠퍼스에 설치된 클라에스 올덴부리와 그의 아내 코샤 밴 브루겐의 대형 조각품 ‘균형 잡힌 연장들’(1984). 뒤로 보이는 건물이 프랑크 게리가 설계한 디자인 미술관이다.
비트라 캠퍼스에 설치된 클라에스 올덴부리와 그의 아내 코샤 밴 브루겐의 대형 조각품 ‘균형 잡힌 연장들’(1984). 뒤로 보이는 건물이 프랑크 게리가 설계한 디자인 미술관이다.


개인 재단으로 설립 운영되는 미술관들이 그렇듯이 샤울라거 현대미술관도 예술을 사랑한 사람들이 작품을 꾸준히 사 모으고 보관하던 끝에 세워졌다. 남편 에마누엘 호프만과 아내 마야 호프만(훗날 마야 사셔)은 신혼 시절부터 미술품을 수집해 온 미술 애호가였다.

미술을 투자성 대상으로 여겼던 남들과 달리 이들은 “현재는 일반적으로 이해되지 못하지만, 미래를 내다보는 새로운 표현 방식을 구현하는 예술가들의 작품을 수집한다”는 철학을 고수했다. 남편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은 후 마야는 1933년 재단을 설립했다. 부부의 소장품은 1941년 바젤시와 맺은 장기 대여 기탁계약에 따라 바젤미술관과 현대미술관에서 전시되기도 했다.

콘셉트부터 독특한 샤울라거는 지속적으로 늘어난 에마누엘 호프만 재단의 방대한 예술작품 컬렉션들, 특히 20년 사이 수집한 미디어아트와 설치 등 신매체를 이용한 예술품들을 기존의 바젤미술관에 더이상 보관할 수 없어 고민하던 끝에 2003년 만들어졌다.

재단은 마야의 딸 베라 오에리를 거쳐 1998년부터 손녀 마야 오에리가 맡고 있다. 마야 오에리는 이른 나이에 죽은 아들 로렌츠를 위해 1998년 로렌츠 재단을 설립했으며 이 재단이 가족의 숙원인 현대예술을 위한 공간의 탄생을 수행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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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젤 출신 건축가인 헤어초크와 드 뫼롱의 개성이 드러나는 샤울라거 미술관.(샤울라거 제공)
바젤 출신 건축가인 헤어초크와 드 뫼롱의 개성이 드러나는 샤울라거 미술관.(샤울라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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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젤 출신 건축가인 헤어초크와 드 뫼롱의 개성이 드러나는 샤울라거 미술관 내부에 전시된 작품들.(샤울라거 제공)
바젤 출신 건축가인 헤어초크와 드 뫼롱의 개성이 드러나는 샤울라거 미술관 내부에 전시된 작품들.(샤울라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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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캠퍼스에서 건축투어에 참가한 관람객들이 가이드로부터 건축 콘셉트에 대해 듣고 있다.
디자인 캠퍼스에서 건축투어에 참가한 관람객들이 가이드로부터 건축 콘셉트에 대해 듣고 있다.


일반적으로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모든 소장품들을 전시실과 보관 창고로 분리한다. 전시 중인 작품은 전시실에 놓이고, 나머지는 해체되거나 포장해 보관용 박스에 담아 수장고에 보관된다. 수장고는 일급 보안구역으로 분류되며 일반인은 접근이 거의 불가능하고, 전문가들도 특별한 계기가 아니면 출입이 매우 제한적인 공간이다. 하지만 샤울라거는 소장 미술품을 과거 전통적인 방식으로 포장돼 있는 상태가 아니라 진열된 상태에서 보관하고, 이를 현대미술 전문가들이나 작품들을 연구자들이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20세기 후반부터 21세기까지 동시대 미술의 수집, 관리, 전시를 전문적으로 다루면서 기존의 전시 방식에서 과감하게 탈피한 것이다. ‘미술관도 아니고 수장고도 아닌, 예술을 다른 방식으로 보고 생각하는 장소’가 바로 샤울라거다.

샤울라거는 바젤 시내 중앙역에서 전철을 타고 약 10분 거리에 있는 뮌헨슈타인에 있다. 수장고형 미술관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한적하고 넓은 물류창고 지역에 들어서 있다. 바젤 출신의 건축가인 헤어초크와 드 뫼롱이 설계한 건물의 인상적인 외관은 보는 이를 압도한다. 거대한 물체 덩어리 같은 건물이 자그마한 창고를 품고 있는 듯한 모양이다.

자갈과 콘크리트를 섞어 울퉁불퉁한 흙담처럼 처리한 건물 외관부터 신선하다. 학예사인 안드레아스 블레틀러 박사는 “건물 터를 다질 때에 나온 돌과 흙을 주 재료로 사용했다. 건축 외양은 독특하지만 주변의 분위기와 색조 자체를 품고 있기 때문에 주변 경관과 충돌하지 않는다”면서 “육중한 콘크리트 벽은 내부 기온을 일정하게 조절할 수 있어서 수장고의 기능에 적합하게 지어졌다. 투박한 외관에 비해 내부는 기능적으로 매우 세심하게 설계돼 있다”고 설명했다. 한쪽 코너는 물결 모양의 틈을 두어 안과 밖의 소통을 상징하고 있다.

샤울라거의 가장 큰 특징은 작품 보관 방식에 있다. 블레틀러 박사는 “현대미술 작품들은 유별나게 크거나 입체적이고, 장소 특정적인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샤울라거는 기존의 전통적 미술관 전시실이나 모더니즘 식의 흰벽 전시실이 충족시킬 수 없는 현대미술을 위한 전문 전시공간을 제공한다. 작가별로 일정한 공간에 작품을 전시된 모습대로 거의 완벽하게 보관하고 있어 작가의 작품 의도를 단번에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예술작품 보관 장소는 3층 상위공간에 샤울라거의 총 유효공간(1만 6500㎡) 중 절반에 가까운 7250㎡를 차지한다. 전시의 형태로 보관되기 때문에 전시 셀이라고 명명돼 있는 셀들은 항온 항습이 완벽하게 조절되고 있으며 총 45개의 셀에 작가 150여명의 작품 650여점이 전시된 상태로 보관되고 있다고 블레틀러 박사는 전했다. 작품 규모나 설치상의 어려움 때문에 여느 미술관에서 수용하기 힘든 로버트 고버의 설치작품 ‘살아 있는 연못’(1995~1997), 카타리나 프리치의 ‘꼬리가 얽힌 쥐들’(1993) 같은 작품은 영구 설치돼 있다.

일반인들도 샤울라거에서 작품을 감상할 기회는 있다. 특별 기획전이 열릴 때다. 최하층과 지면층 3620㎡의 공간에서는 1년에 한 작가를 정해 4~6개월 기획전을 연다. 이 건물을 설계한 헤어초크와 드 뫼롱의 건축전(2004년), 로버트 고버 회고전(2007년), 매튜 바니 전(2010년)에 이어 올해에는 홍콩 출신으로 뉴욕을 거점으로 활약하는 폴 찬의 작품을 4월부터 10월까지 선보였다.

2015년에는 바젤시립미술관이 보수에 들어가면서 그곳에 장기 대여했던 에마누엘 호프만 재단 소장품 전시회가 계획돼 있다.

글 사진 lotus@seoul.co.kr
2014-11-2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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