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업’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이끈 이종복 한국서점조합연합회장
지난달 3일 서점업이 첫 번째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이후 정부의 결정을 두고 다양한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동네서점을 운영하는 사장님들은 ‘대형서점의 추가 진출을 막을 수 있게 됐다’고 환영하는 분위기인 반면, 소비자의 책 구매 방식이 온라인으로 넘어간 상황에서 큰 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대형서점들의 영업권을 침해하는 정책이라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동네서점이 살기 위해서는 규제를 통한 보호에 의존하지 말고 매력적인 공간이 되려는 자체적인 노력이 필수라는 의견도 나온다. 24일 서점업에 대한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을 이끈 한국서점조합연합회의 이종복 회장을 만나 적합업종 지정에 따른 효과와 동네서점 살리기를 위한 대책 등을 들어 봤다. 한길서적 대표인 이 회장은 25년 동안 서점을 경영해 왔다. 서점조합연합회 유통대책위원장을 맡았고 지난 5월 회장에 취임했다.이종복 한국서점조합연합회장이 24일 서울 구로구에 있는 연합회 사무실에서 1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의 의미와 동네서점 살리기 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동네서점들은 매출의 70% 이상이 학습지 매출이다. 그래서 다른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거론되는 콩나물, 두부처럼 우리도 특정 학습지·참고서 등 품목으로 가는 게 맞을 수도 있다. 다만 책이라는 종목으로 크게 지정이 된 것은 결국 단순히 서점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생계보다도 서점 생태계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교보문고, 영풍문고가 특정 지역 안에서만 경쟁하듯 매장을 늘려가는 상황에서 동네서점이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기업의 진출을 막을 필요가 있고, 그 방법으로 나온 것이 생계형 적합업종이다. 생계형 적합업종은 최소한의 도매 구조를 유지하고 동네서점들이 출판물의 전시장으로서 지역 문화 공간으로 역할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 다만 이것만으로는 동네서점이 특별히 좋아지지 않는다. 대기업 진출이 제한된 5년 안에 작은 서점들도 대형서점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동네서점을 왜 살려야 하냐는 근본적인 회의론도 있다.
“서점은 자본의 논리로만 보면 이해할 수 없다. 나조차도 주변 사람들에게 생계가 걱정이라면 서점을 접으라고 말한다. 동네서점들은 하루 13시간씩 363일을 일하는데, 그 시간에 최저임금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그런데 동네서점이 없어지면 책 전시장이 없어지는 것이고, 독서 저변이 다 무너질 수밖에 없다. 책을 단행본과 학습지로 나누면 단행본은 대개 충동 구매이고, 학습지는 목적 구매다. 다만 단행본 중에서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것은 상당수가 목적 구매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둘러보다가 마음에 드는 것을 꼭 찍어 온라인에서 산다는 거다. 대형서점 관계자들도 사석에서 지역에 책 쇼룸(Show Room)이 많아져야 매출이 늘어난다고 말한다. 이런 측면에서 동네서점 문제를 보면 좋겠다. 덧붙이자면 독서의 다양성 측면에서도 동네서점이 기여할 수 있다. 영화 산업과 마찬가지로 시장을 독점한 서점과 상영관이 보라는 것만 보면 100만 독자와 1000만 관객이 나올 수 있지만 다양성은 사라진다. 인터넷 서점의 추천도서, 광고 상단에 있는 책들을 보면 대개 몇몇 도서에 한정돼 있다.”
-동네서점의 위기는 어디에서 왔나.
“2003년도에 ‘출판 및 인쇄 진흥법’이 나오는데 도서정가제를 하면서도 인터넷에서 할인할 수 있게끔 했다. 국가 미래 먹거리라며 정보기술(IT)산업 육성 얘기가 나오던 시절인데 유독 인터넷에서는 10% 할인에 5000원 이내 경품까지 줄 수 있으니 소비자들이 모두 인터넷 구매로 몰렸다. 이때 위기가 시작됐다. 업계가 문제를 삼으니까 2007년에 18개월 이내 도서의 경우 10% 할인, 18개월 이상은 무제한 할인하도록 법을 고쳤는데 운동장이 기운 상태에서 공 굴려봐야 소용이 없는거 아닌가. 이미 서점 주인들은 온라인 판매자보다 폭리를 취한다고 항의를 받는 위치가 돼버렸다. 특정 산업을 살리는 것도 안 되지만, 특정 산업을 죽이는 법도 잘못된 것이라고 본다.”
-완전한 도서정가제가 필요하다고 보는 건가.
“2014년 모든 도서에 10% 이내로 직접 할인을 할 수 있게 법이 개정됐는데, 서점을 위해선 ‘일물일가’(一物一價)가 맞다. 1만원짜리 책을 8000원에 팔 수 있지만, 8000원으로 할인이 됐으면 모든 곳에서 그렇게 팔아야 한다는 얘기다. 대표적으로 독일에선 출판사가 자유롭게 재정가를 책정하는 정가고시시스템을 갖추고 정가제를 시행하고 있다. 출판물을 제작하는 사람들의 최소한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서도 정가제는 이어져야 한다. 독일뿐 아니라 프랑스, 네덜란드, 덴마크, 스페인, 일본 등 비영어권 국가에서도 도서정가제를 시행하고 있다.”
-또 다른 서점 살리기 방안이 있다면.
“학교나 도서관 등 공공기관에서 이뤄지는 도서 구입을 지역 서점을 통해 하는 방법이 있다. 과거 지역서점 활성화 조례가 몇몇 지방자치단체에서 만들어졌지만 활성화되지 못했다. 완전한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면 책을 동네서점에서 사든 대형서점에서 사든 똑같기 때문에 계약 당사자인 공공기관 입장에서도 부담이 없다. 전국에 있는 공공 도서구입 비용이 한 해 2500억~3000억원으로 추산되는데 이 예산이 지역으로 오면 서점을 지탱하는 힘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경북 영양에 가면 군 단위인데도 서점이 한 곳도 없다. 인구 5만명이 넘는 도시에서도 서점이 없어지는 추세인 것이다. 공공 예산이 동네서점으로 간다고 하면 누군가는 그곳에 서점을 할 수 있고, 주민들이 찾을 수 있는 문화 공간이 마련될 것으로 본다.”
-지역서점 인증제와 관계가 깊어 보이는데.
“맞다. 이른바 ‘유령서점’을 만든 뒤 공공 입찰에 참여하려는 사업자를 없애기 위해 지역서점이 맞는지, 아닌지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지역서점 공인인증제를 추진하려 한다. 매장 내 구성 상품 중 50% 이상이 책이고, 매출액·이익의 50% 이상이 책 판매를 통해 나올 경우 지역서점으로 인증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모두 방문매장에서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영업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곳을 걸러내려는 장치다. 현재 전국에 1000곳 정도가 지역서점으로 운영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공공 분야 외에 일반 소비자를 염두에 둔 대책은.
“물류·유통이 바뀌어야 한다. ‘채식주의자’가 맨부커상을 받았을 때 새벽에 발표를 본 독자들이 온라인 주문을 하다 보니 데이터를 가진 대형서점들은 즉각 주문에 들어가 물량을 확보했다. 그러나 지역서점들은 독자들의 반응을 파악하는 것이 늦어 결국 팔지를 못했다. 4쇄쯤 인쇄가 들어갔을 때야 동네서점에 채식주의자가 깔렸다. 대형서점보다 일주일가량 늦어진 셈이다. 동네서점도 소비자의 요구를 즉각 수용할 수 있도록 물류 혁신을 하려고 한다. 회장 취임 이후 공급자, 도매상, 총판들과 물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유통되는 모든 도서를 공급해 주고,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하도록 1일 2배송 체제를 갖추는 것 등이 핵심 내용이다. 서점 규모에 따른 공급 차별을 없애는 것도 중요하다.”
-생계형 적합업종에 대한 관심이 많은데 보완할 부분이 있을까.
“서점은 그래도 꾸려 나가시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현황 자료가 있는 편이다. 그러나 정말 영세한 업종을 보면 조직화도 덜 돼 있고, 생계형 적합업종을 신청하기까지 자료 수집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정부도 앞으로 추가 지정을 할 텐데 힘든 작업이 될 거라고 보는 이유다. 따라서 사업자들이 신청을 하기 전에 정부가 고민해서 보호해야 하는 업종이 있다고 판단되면 선제적으로 지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글 사진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2019-11-25 17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