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내년부터 ‘도덕’ 정규과목 채택
“역경 극복하지 못하는 건 노력부족 탓”교과서 상당수가 고정된 가치관 강요
일본 문부과학성의 검정을 통과한 한 출판사의 중학교 도덕 교과서.
내년 4월 신학기부터 일본의 중학교에 ‘도덕’ 수업이 정규 교과목으로 채택될 예정인 가운데 교육 내용과 방향성을 놓고 논란이 한창이다. 학교폭력 예방, 성소수자 인권 등 새로운 가치를 학생들에게 일깨우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국가주의’, ‘획일화’ 등 부작용의 위험성도 공존하기 때문이다.
16일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일본 문부과학성의 검정을 통과한 8개 출판사 교과서의 내용 중 상당수가 하나의 고정된 가치관을 강요하거나 사회적인 문제를 개인의 마음가짐이나 정신자세 탓으로 돌리는 식의 문제점을 드러내 교육 현장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당초 모범답안으로서의 도덕적 가치를 주입하기보다는 ‘사고와 토론’을 바탕으로 학생들의 도덕관념을 유도하겠다고 했지만, 세부 내용들을 보면 그 취지를 무색하게 만드는 대목이 적지 않은 탓이다.
마이니치는 한 검정 교과서에 실린 장애인의 역경 극복 사례를 예로 들었다. 15세 때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돼 휠체어에 의존하게 된 남성이 패럴림픽 육상경기에 출전해 메달을 딴 실화를 바탕으로 한 내용. 이에 대해 교육 전문가인 와타나베 마사유키 다이토문화대학 교수는 “스스로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일도 있는 법”이라면서 “이 얘기는 역경을 극복하지 못하는 것은 개인의 노력부족 탓이라는 ‘자기책임론’으로 연결되기 쉽다”고 말했다.
일본의 전설적 야구 스타 오사다하루의 사례도 국가주의 가치관의 주입 가능성이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 교과서에서는 그의 말이 그대로 실렸다. “아버지의 조국인 중국, 어머니의 조국인 일본. 조국이라는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나의 눈은 젖어들고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른다. 국기가 게양될 때에는 기립 정도는 해야 한다는 기분이 드는데, 그게 국가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한다.”
이에 대해 ‘위험한 도덕 교과서’의 저자인 전 문부과학성 관료 데라와키 겐은 “국기게양 때 일어서지 않는 사람은 나쁘다는 말처럼 들릴 수 있다”면서 “하나의 생각을 강요하는 듯한 얘기가 도덕 교과서에 적합한지 의문”이라고 했다.
이밖에 현직 총리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한 정당의 당수인 아베 신조 총리의 발언을 보편적인 내용을 담아야 하는 교과서에 게재한 점, 지진 등 재해가 발생했을 때 유독 일본에서만 타인에 대한 배려가 이뤄지는 것처럼 묘사한 점 등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2018-12-1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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