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력자살 이뤄지는 ‘블루하우스’ 24시
십자가가 상징처럼 자리한 취리히주 북화장장의 전경.
사진 취리히 김형우 기자 hw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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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7일 스위스 취리히주 쿠스나흐트의 한 주유소 1층에는 3평 남짓한 사무실이 쪽방처럼 딸려 있었다. 외국인 조력자살(안락사) 후 시신을 화장장까지 운반하는 민간 장례업체의 사무실이었다. 굳이 하는 일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듯 작은 간판 하나 걸려 있지 않았다. 사무실 옆에 주차된 운구 차량을 보고 겨우 찾아낼 수 있었다.
혹시 안락사로 생을 마감한 한국인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문전박대만 당했다. 신분만 밝혔을 뿐인데도 장의업체 직원은 질문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기자는 기자일 뿐, 우리는 기자를 믿지 않는다”며 퉁명스럽게 문을 걸어 잠갔다. 이미 여러 국가의 취재진이 이곳을 다녀간 것 같았다.
조력자살을 희망하는 노인과 그의 가족들이 지난 1월 8일 오전 스위스 취리히주 파피콘에 위치한 블루하우스로 들어가고 있다. 이 노인은 결국 해가 진 뒤 주검이 돼 블루하우스에서 나왔다.
취리히 김형우 기자 hw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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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숨진 한국인이 스위스에서 최초로 내디뎠던 그 길에서 고인들이 보았을 마지막 풍경과 마주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느낀 건 안락사를 그려낸 영화 ‘미 비포 유’처럼 모든 게 평화롭고 아름답지만은 않았다는 점이다. 삶과 죽음은 엄연한 현실이었고, 정답 없는 갈림길이었다.
지난 1월 7일 찾은 취리히주 북화장장의 유골 보관소.
취리히 김형우 기자 hw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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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하우스 앞에 도착하는 순간 차에서 내리지 못할 정도로 몸이 오싹했다. 기분이 참 묘했고 안 좋았다.”
8일에는 블루하우스 밖에서 안락사 전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오전 10시 30분쯤 프랑스 국적 번호판을 단 검은색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한 대와 미색 SUV 한 대가 연이어 도착했다. 각각 두 차량에서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가족들의 도움을 받아 내렸고, 휠체어를 타고 블루하우스로 들어갔다. 가족들이 오열하거나, 괴로워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미 이곳에 오기 전 마음의 준비를 마친 듯 덤덤한 모습이었다.
이날은 예상보다는 조금 늦은 오후 5시 30분쯤 경찰과 법의학자가 블루하우스로 들어갔다. 경찰이 각종 서류의 확인 등을 마치면 타살 의혹이 없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법의학자의 검시가 시작된다. 한 시간 뒤 경찰과 법의학자가 철수하자 곧이어 하얀색 운구 차량이 도착했다. 휠체어를 타고 블루하우스로 향했던 노인들은 주검이 돼 8시간 만에 관에 실려 나왔다. 프랑스 노인 두 명은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
안락사 후 시신은 모두 취리히주 북화장장(Krematorium Nordheim)으로 보내진다. 블루하우스와의 거리는 26.4㎞로 승용차로 30분 거리다. 취리히주가 운영하는 공립 화장장 3곳 중 한 곳으로 파피콘에서 사망한 이들의 시신은 일단 이곳으로 옮겨진 후 화장을 할지, 매장을 할지 결정된다. 안락사로 생을 마감한 한국인들도 이 화장장에서 한 줌의 재로 돌아갔을 가능성이 크다. 케빈이 친구의 마지막 모습을 본 곳도 이곳이다.
인상적이었던 건 국적에 상관없이 스위스에서 사망하면 현지 화장장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장례 과정은 우리나라에서처럼 큰돈이 필요하지 않다. 이 때문인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구분되는 모습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수백 명이 모여 고인의 마지막 길을 애도할 수 있는 대형 장례식장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유골함 비용도 들지 않는다. 그렇기에 세금을 내지 않는 외국인들이 자국에서 조력자살을 하는 것에 대해 반감을 품은 스위스 국민들도 꽤 있다.
화장장으로 시신이 옮겨지면 대략 3일 후 화장이 된다. 화장 전까지는 시신은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는 방에 모신다. 우리가 찾은 회장장에도 23개의 방이 마련돼 있었다. 케빈은 9번 방에서 고인과 작별의 시간을 가졌다.
화장장 내 장례 절차를 마치고 화장을 기다리는 관들의 모습. 북화장장으로 시신이 옮겨지면 보통 3일 이내에 장례 절차 이후 화장이 이뤄진다.
취리히 김형우 기자 hw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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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이곳에서 화장된 한국인의 기록을 찾을 수 있었다. 우리가 찾고자 했던 한국인 기록을 모두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케빈이 스위스까지 동행해 마지막 모습을 지켜봤던 박정호(가명)씨의 기록은 확인할 수 있었다. 디그니타스와 케빈을 제외한 제삼자를 통해 한국인의 안락사를 공식적으로 확인한 셈이다. 이 기록에는 고인의 이름과 생년월일, 가족 이름, 한국 주소 등이 적혀 있으며, 사망 장소로는 블루하우스가, 장례 주관자로 디그니타스가 기재돼 있었다.
같은 날 북화장장에서 확인한 한국인의 기록. 기록에는 안락사로 사망한 박정호(가명)씨의 이름과 주소 등 구체적 신상 명세가 적혀 있다.
취리히 김형우 기자 hw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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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리히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취리히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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