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백윤 기자의 독박육아<끝>] 만삭에도 빛나는 미모? 아이 엄마 맞아?… 왜 씁쓸할까요

[허백윤 기자의 독박육아<끝>] 만삭에도 빛나는 미모? 아이 엄마 맞아?… 왜 씁쓸할까요

허백윤 기자
허백윤 기자
입력 2015-11-20 17:56
수정 2015-11-21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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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후에도 여전한 미모…아이 엄마 맞아?”, “만삭에도 빛나는 미모.”

만삭이거나 출산을 하고 복귀한 여자 연예인들을 향한 반응은 대체로 이렇다. 주로 임신과 출산 후에도 날씬한 몸매와 아름다운 외모를 유지하고 있는 데 대한 찬사가 쏟아진다. 주먹만 한 얼굴에 배만 볼록 튀어나오고 팔다리는 가녀린 몸매, 출산 후 곧바로 돌아온 몸매 등이 핵심이다. 평범한 나로서는 꿈에서도 겨우 가져볼까 말까 한 외모와 몸매다. 하지만 꼭 따라붙는 “애 엄마 맞아?, 임신부 맞아?” 이런 말들이 왠지 불편하다.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고 나니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임산부들에게도 외모와 몸매의 잣대를 갖다 대고 있음을 실감했다. 누군가 임신을 했다고 하면 “그대로네”, “살이 좀 쪘네” 하며 몸이 어떻게 변했는지 먼저 이야기했다. 몸무게가 몇 킬로그램이나 쪘는지, 아이를 낳고 얼마만에 빠졌는지도 단골 질문이다. 물론 임신부터 육아까지 가장 눈에 띄는 변화가 바로 몸이다. 그러나 ‘임산부’와 ‘아줌마’의 몸에 대한 시선은 이중적이다. 그것을 경험하는 나의 감정도 복잡했다.

●임신했다면 “살이 쪘네”… 건강 염려는 뒷전

우선 임신부와 아줌마는 살이 찌고 몸이 ‘망가지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인식이 있다. 당연한 말이다. 뱃속에 아기를 품으며 몸무게가 조금도 안 늘어날 수는 없다. 임신부의 평균적인 체중 증가는 10~12㎏ 정도로 여겨진다. 나는 불과 2년 사이에 체중계 앞자리 숫자가 5에서 7로 올라갔다가 다시 5로 내려왔다. 임신 기간 열 달 동안 무려 몸무게가 20㎏ 불었다. 배를 비롯한 살덩이는 팽팽하게 부풀었다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축 늘어졌다. 임신소양증이라는 것에 시달려 쉴 새 없이 피부가 가려웠고, 열심히 긁어 댔던 상처가 새까맣게 색소 침착이 돼 버렸다. 정강이에 크게 남은 자국 때문에 치마를 거의 입지 않는다. 배를 지탱하기 위해 퍼졌던 허벅지와 엉덩이, 아기를 안고 달래며 단련된 굵은 팔뚝은 임신하기 전의 몸무게로 돌아갔더라도 예전에 입던 옷이 안 맞도록 내 몸을 바꿔 놓았다.

내 몸이 20㎏나 불어나는 동안 정작 걱정됐던 것은 과체중으로 태아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줄까봐, 임신성 당뇨 등으로 출산에 지장이 있을까봐 등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내가 얼만큼 몸무게가 늘었는지를 물어보면서도 건강에 대한 염려나 조언은 하지 않았다. 그냥 숫자에만 관심이 있는 듯했다.

●연예인들 ‘만삭 화보’ 배만 부풀게 그려놓은 듯

임신을 해서도 몸무게가 조금만 늘었거나 배만 나오고 크게 살쪄 보이지 않는 여성들에게는 놀라움 섞인 반응이 따라온다. 외적인 면을 주로 선보이는 연예인들의 경우 더욱 그렇다. 연예인들이 공개한 ‘만삭 화보’는 마치 포토샵을 이용해 배만 부풀게 그려 놓은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출산한 뒤에도 겨우 한두 달밖에 안 됐다면서 탄력 있고 완벽한 몸매를 뽐낸다. 뱃속에 인형을 집어넣었다가 그냥 쏙 빼 버린 것 같다. 애당초 내가 연예인 같은 얼굴과 몸매가 아니었으니 그걸 보며 스트레스를 받거나 비교를 할 처지는 아니지만, 그런 모습이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처럼 여겨질까 가끔 우려된다.

몸이 잔뜩 불은 임신부들의 몸에 대한 냉혹한 시선을 접했을 때 적잖이 당황했다. 일부 온라인상에서 아기를 품고 있는 몸을 두고 뚱뚱하다거나 미련해 보인다거나 심지어 (이유는 도저히 알 수 없지만) 더럽다는 말까지 적힌 것을 봤을 때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출산을 하고 난 뒤에 임신 이전의 몸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엄마들에게 자기 관리를 소홀히 한다거나 게으르다는 시선을 느끼고 정말 가혹하다고 생각했다. 평소 건강한 몸으로도 체중 5㎏를 줄이는 데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10~20㎏ 늘어난 몸을 다시 이전으로 돌이키려면 엄청난 시간이 필요하다. 적게 먹고 운동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들 하던데, 모유 수유를 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잘 챙겨 먹어야 하고 육아를 하면서 운동은 엄두도 낼 수 없다.

●잔뜩 불은 임산부들엔 “자기관리 소홀”

연예인들의 마네킹 같은 몸매는 오랜 시간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것을 임신과 출산, 육아에도 변함 없이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피눈물 나는 노력과 엄청난 돈과 시간을 들였을지 짐작이 간다. 아무리 그게 직업이라지만 때로는 안쓰럽게까지 느껴진다. 물론 나도 아이 엄마가 된 연예인들의 화보를 보며 아름답다, 부럽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도 그냥 평범하게 아이를 키우며 점점 붙어 가는 살을 어쩌지 못하고 있는 나와 수많은 엄마들의 몸이 더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또 한 가지. 출산 후 연예인들의 근황을 적은 기사에 꼭 “아이 엄마 맞아?”라는 꼬리표가 달리는 것은 왠지 씁쓸하다. 엄마가 됐어도 나는 여전히 외모를 가꾸기 위해 노력한다. 나의 만족을 위해서다. 때마다 미용실에 가서 머리도 하고 화장품을 사서 열심히 찍어 바르기도 한다. 내가 아이를 낳았지만 ‘나’로서 존재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 살은 좀 쪘지만 2년 만에 내가 다른 사람처럼 얼굴이 변해 버리는 것도 아니고, 아이 엄마는 무조건 못나고 꾀죄죄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집에 있을 때에는 목이 늘어난 티셔츠와 무릎 튀어난 치마레깅스를 입고 흘러내리는 머리를 대충 묶어 엉망이긴 하지만, 그래도 사회생활을 할 때는 나도 깔끔하고 단정하게 꾸민다. 예전부터 그래 왔다. 아직도 덜 빠진 살을 조금이라도 빼기 위해 회사 점심시간을 반납하고 운동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화장을 짙게 하거나 짧은 치마를 입고 출근한 여성들에게 이따금씩 “애 엄마가 이렇게 해도 되냐”는 질문이 오기도 한다. 아이와 함께가 아니라 온전히 ‘나’로서 사회생활을 하는데도 말이다. 나는 주말에 살짝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아이와 함께 외출했다가 “애기 엄마가 무슨 이런 옷을 입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심지어 임신을 했을 때에는 호르몬의 영향이었는지 오히려 얼굴에서 윤이 날 정도로 피부가 더 좋아졌는데 “무슨 임신부 피부가 이렇게 좋냐”고도 들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엄마’는 대체 어떤 모습일까 생각하게 만든다. 엄마가 예쁘게 꾸미고 다니는 것에도 어색한 반응이 따라오고 그렇다고 ‘퍼져 있는’ 모습을 보이면 비판적이다. 딱히 임신부나 ‘애 엄마’라서 달리 볼 이유는 별로 없다고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예쁘게 꾸미면 어색해하고, 퍼져 있으면 비판

여전히 나도 거울 속 내 모습에 쿨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사랑스러운 아기를 얻은 대가이자 영광의 흔적이라고 다독여 보지만 한숨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다만 그것은 내 몸에 대한 불만일 뿐이다. 누군가에게 나의 몸을 평가받고 싶지는 않다. 여성의 외모가 중요한 평가의 잣대가 돼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것이 유독 임신부와 엄마들에게 더 가혹한 것인지 의문이다. 그저 한 생명을 잉태하고 기르는 소중한 몸 그 자체로 봐 주는 시선은 왜 갖기 어려운 것인지 안타깝다.

baikyoon@seoul.co.kr
2015-11-21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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